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쉽게 해소되지 않으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조기 금리인하 가능성이 낮아진 점도 달러의 매력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가뜩이나 미국과의 금리 격차로 고전해온 일본 엔화 가치는 3월 일본은행(BOJ)이 17년 만에 단기 금리인상에 나섰음에도 최근 3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원화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달러가 G10(주요 10개국) 통화에 대해 전방위적인 상승세인데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가 2%포인트로 사상 최대치인 점 등을 반영하며 원화 가치는 올해 달러 대비 7% 절하됐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자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외환수급 악화 우려도 커졌다. 4월 외국인 주식 배당금 역송금 등 계절적인 달러 수요도 원화 약세에 일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10월 한때 100엔당 850원까지 하락했던 엔·원 재정환율은 최근 880~900원으로 반등하는 등 엔화에 대한 원화의 상대적 강세도 꺾였다.
1400원과 155엔…주요 저항선 넘을까
지난주 달러당 원화 환율이 1400원을 잠시 돌파하고 달러·엔 환율은 155엔에 육박하자 한국과 미국 및 일본 재무장관들이 공동성명을 통해 원화와 엔화의 급격한 절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급한 불’은 일단 껐다.
이후에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급격한 환율 변동에 대해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당국의 ‘구두 개입’이 이어지며 1400원이 단기 저항선으로 자리 잡았다.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도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며 원화 환율은 당분간 1300원대 중후반의 움직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 20일 퇴임한 조윤제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기자간담회에서 “경상수지 흑자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외환보유고나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펀더멘털이 나쁘지 않다”면서 “(환율 변동의) 가장 큰 원인은 달러화 강세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다만 조 전 위원도 지적했듯 최근 원화 약세의 가장 큰 원인이 글로벌 달러 강세에 있는 만큼 원화 약세 기조가 꺾였다고 보기엔 아직 무리가 있다.
엔화도 달러당 155엔의 저항선이 지켜지고 있지만, 약세 추세가 쉽게 꺾일 분위기는 아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23일 "근원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향해 상승할 경우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엔화 가치 방어에 안간힘을 썼다. 그렇지만 시장에서는 오는 10월경에나 일본의 후속 금리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주 투자자 메모에서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주요 선진국과의 금리 격차에 주목하며 "기본 전망은 미국 달러 강세의 장기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달러·엔 환율의 6개월 전망치를 종전의 150엔에서 155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엔화 약세가 단기간에 끝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