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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국가 부채시계와 트럼프 상호관세 폭탄

김대호 박사/사진 =SBS  BIZ 출연 방송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사진 =SBS BIZ 출연 방송
미국 뉴욕 맨해튼의 중심 타임스스퀘어에서 한 블록 떨어진 42번 거리와 43번 거리 사이 6번가 한복판 원 브라이언트 공원의 서쪽 편에 아주 큰 초대형 시계가 설치돼 있다. 시침과 분침이 움직이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일반적인 시계는 아니다. 시곗바늘은 없고 아라비아 숫자들만 빠른 속도로 돌아간다. 미국의 국가 부채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장치다. 이른바 국가부채시계(National Debt Clock)다. 이 시계에는 미국의 총 국가 부채와 미국의 각 가정과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빚의 규모 등이 올라와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먼저 설치된 부채시계다.
이 시계는 미국의 부동산 업자인 시모어 더스트가 늘어나는 국가 채무에 대한 경각심을 일러주기 위해 1989년 2월 20일 사비를 들여 만들었다. 그때 미국의 국가 부채는 2.7조 달러였다. 11x26 피트(3.4m x 7.9m) 크기의 이 원조 부채시계의 제작비는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던 무려 10만 달러였다. 디스플레이의 전구 305개를 유지하는 데 월당 500달러의 유지비용이 들었다. 미국 뉴욕의 빌보드 회사인 아트크래프트 스트라우스가 더스트의 주문에 따라 시계 제작을 맡았다.

더스트는 1995년 5월 사망하기 일주일 전까지 모뎀을 통해 부채 통계를 조정했다. 그의 사망 이후에는 아들 더글러스가 더스트클럽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시계를 관리했다. 1995년 11월 15일 부채시계가 갑자기 멈추었다. 미국 정부 폐쇄의 영향으로 시계는 4조9855억6707만1200달러에서 한동안 동결됐던 것이다. 1998년에는 국가 부채 수치가 5조5000억 달러를 넘어서자 시계가 고장 났다. 그 원인은 "수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 이후 미국 부채시계는 내부에 새로운 컴퓨터를 설치한 전자식으로 바뀐다.

2000년 초에는 한때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기도 했다. 부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부채 감축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9월 30일 미국의 총 국가 부채가 10조 달러를 넘어섰다. 국가부채시계의 디스플레이 공간이 부족해졌다. 궁여지책으로 가장 왼쪽 공간에 있는 달러 기호 대신 숫자 "1"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부채시계에서 달러 기호 $가 사라진 이유다. 이 시계는 국가 부채에 관한 2006년 다큐멘터리 'Maxed Out'에 등장했다. 이 영화에서 더스트 가족들이 직접 출연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시모어 더스트가 거금을 들여 시계를 만든 것은 국가 부채에 경각심을 높여 그 규모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나름의 충정에서였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그러나 더스트의 소망과 달리 자꾸 늘어만 갔다. 2025년 3월 현재 미국의 국가 부채는 36조 달러를 넘어섰다. 국가 부채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0% 이상이다. 여기에 해마다 정부가 세수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면서 부채는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과거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발행했던 국채가 6개월마다 7조 달러씩 돌아온다. 저금리 시절 1% 남짓 또는 그 이하에 빌린 ‘과거 빚’을, 4% 중·후반대의 ‘새 빚’으로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칫 잘못하면 미국이 부채에 눌려 국가 부도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위기다.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연방정부 지출 삭감에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트럼프는 일론 머스크를 내세워 부채 감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백악관 부설 정부효율부(DOGE)를 이끄는 머스크는 2026년 회계연도에 연방 지출을 1조 달러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연방 지출은 6조7520억 달러였다. 여기서 1조 달러를 덜어내려면 엄청난 충격이 불가피하다. 메디케어(노령층 의료지원)와 국민연금제도인 사회보장(Social Security) 같은 프로그램까지 손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달성하기 어려운 미국의 연방 지출 규모는 GDP의 23.4%(2024년 기준)에 이르고 있다. 미국 연방 지출에서 1조 달러 감축은 곧 GDP의 약 3.5%를 잘라내는 것이다. 한꺼번에 GDP의 약 3.5%를 잘라내는 것은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이다. 정부 예산 삭감과 긴축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영국 마거릿 대처 전 총리다. 대처의 예산 삭감은 연간 GDP의 1% 수준이었다. 지금의 트럼프 긴축은 1980년대 대처 전 총리의 3.5배 수준이다. 대처 전 총리의 긴축 정책 이후 영국은 경기 침체에 들어섰다.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GDP의 약 3.5%를 잘라낸다면 미국 경제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가 등장하자마자 뉴욕증시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엄청난 규모의 정부 지출 삭감이 몰고 올 태풍의 공포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발 경기 침체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재정 총책임자인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뉴욕증시 폭락이나 경기 침체 우려에 개의치 않고 긴축의 고삐를 죄어 나가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는 "지금 미국 경제는 정부 지출에 중독됐다"며 "이른바 디톡스, 즉 해독 기간(detox period)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가 디톡스다. 디톡스는 독을 빼내는 해독 작업이다. 디톡스 과정에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디톡스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트럼프 정부가 의도적으로 뉴욕증시와 비트코인 시세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부채 감축에 결연한 자세다.

트럼프 행정부의 긴축은 연방정부 일자리 감축에서 이미 시작됐다. 행정부 출범 7주일 만에 10만 개를 줄이는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까지 연방정부 일자리 50만 개가 없어질 것이다. 머스크는 사회보장연금에도 메스를 대고 있다. 올해 연방 지출이 1조 달러 감소하면 매 분기 GDP가 10%씩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있는 상태다.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업률은 연말께 5.7%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부채 축소를 위해 포트녹스의 금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도 있다. 미국 재무부가 가지고 있는 금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으로 미국의 막대한 부채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 공식 재무제표에 따르면 미국은 약 2억6160만 트로이온스(8200톤)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많다. 금 보유량의 장부상 가치는 온스당 42.22달러(6만1000원)로 평가된다. 1973년 미국 의회가 정한 후 약 50년간 불변이다. 총 평가액은 110억 달러(약 15조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금 가격이 온스당 약 2920달러라는 것을 고려하면 미국이 보유한 금의 실제 시장 가치는 약 7650억 달러(약 1103조원)가 되는 셈이다. 단순 회계 평가를 통해서 단숨에 미국 재정을 보완할 수 있다. 그래도 국가 부채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포트녹스의 금은 달러 기축통화와 연결돼 있어 함부로 손대기도 어렵다.

트럼프가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 관세 폭탄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사실은 국가 부채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런 만큼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집요할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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