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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병목, GPU 넘어 HDD로…도시바 증산에도 공급난 장기화

씨게이트 물량 대부분 2028년까지 배정·WD 고객은 2031년 공급 확보 요구…델 “부족 5년 넘을 수도”
웨스턴디지털의 HDD 제품. 사진=웨스턴디지털이미지 확대보기
웨스턴디지털의 HDD 제품. 사진=웨스턴디지털

일본 도시바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HDD 업황의 공급과잉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 업계 주문 상황을 보면 공급 부족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5일(이하 현지시각) 투자전문매체 인사이더몽키에 따르면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씨게이트의 니어라인 HDD 물량 대부분이 2028년까지 이미 배정됐고 웨스턴디지털(WD) 고객들은 2030년과 2031년 공급까지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AI 인프라의 병목이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데이터 저장장치로 확대되면서 HDD 물량을 수년 앞서 선점하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바의 증설 계획이 알려진 뒤 도시바와 함께 세계 HDD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씨게이트와 WD 주가는 약 10% 급락했다. 지난 2일 씨게이트는 10.21%, WD는 10.22% 하락했다.

씨게이트와 WD는 도시바와 함께 세계 HDD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업체들이다.

AI 데이터센터 수요로 형성된 HDD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세가 도시바의 증산으로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다.

◇2028년 물량 이미 찼다…2031년 HDD까지 확보전

트렌드포스가 전한 HDD 업체들의 주문 상황은 공급 부족의 정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씨게이트는 데이터센터가 회사 전체 엑사바이트 출하량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존 장기공급계약을 기준으로 니어라인 HDD 대부분이 2028년까지 이미 배정된 상태라고 밝혔다.

일부 고객들은 오는 2029년 이후 물량까지 계획하고 있다.

WD의 주문 가시성은 더 길다.

크리스 세네셀 WD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기준 대부분의 2027년 공급 물량이 장기공급계약에 포함됐으며 일부 2028년과 소량의 2029년 물량까지 계약됐다고 밝혔다. WD 고객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2030년과 2031년 공급까지 확보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D는 향후 5년 동안 엑사바이트 기준 HDD 수요가 연평균 25%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HDD를 필요할 때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수년 뒤 필요한 저장용량을 미리 확보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델 “에이전틱 AI 확산하면 부족 5년 넘을 수도”

수요를 끌어올리는 핵심은 AI가 학습에서 추론과 에이전틱 AI로 확대되면서 발생하는 데이터의 급증이다.

트렌드포스는 델 테크놀로지스의 제프 클라크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최근 에이전틱 AI 워크로드가 빠르게 증가하면 일부 핵심 부품의 공급 부족이 5년 이상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클라크 COO는 특히 메모리와 HDD 공급을 우려 대상으로 꼽았다.

앞서 트렌드포스는 지난해 9월에도 AI 추론 확대와 HDD 업체들의 제한적인 증설로 니어라인 HDD 공급이 빠듯해지면서 납기가 몇 주에서 52주 이상으로 늘었다고 분석했다.

AI 데이터센터가 HDD 산업의 주문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GPU 다음 병목은 ‘저장’…컴퓨팅보다 높은 응답

AI 인프라 투자에서 지금까지 시장의 관심은 GPU와 HBM에 집중됐다.

그러나 최근 기업 조사에서는 저장장치가 또 다른 병목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났다.

스토리지 전문매체 스토리지리뷰는 씨게이트와 WD가 각각 실시한 AI 스토리지 조사를 비교해 기업들이 AI로 인해 보관해야 할 데이터가 빠르게 늘고 있으며 저장장치가 AI 인프라 계획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씨게이트 조사에서는 AI 도입 과정의 주요 과제로 데이터 품질과 준비가 53%로 가장 높았고 스토리지 인프라가 43%로 뒤를 이었다.

컴퓨팅 가용성은 27%, 전력 제약은 24%였다.

스토리지 문제가 컴퓨팅 자원보다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이다.

WD가 시장조사업체 IDC에 의뢰한 조사에서도 94.7%가 지난 12개월 동안 AI와 생성형 AI 도입으로 저장 데이터가 늘었다고 답했다.

74.3%는 AI 때문에 데이터를 이전보다 더 오래 보관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75.9%는 과거 저장했던 저빈도 데이터를 다시 불러오는 양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AI 추론과 검색증강생성(RAG)에서 과거 데이터가 다시 연산 자원으로 사용되면서 한 번 저장한 데이터를 장기간 보관하고 다시 불러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도시바 2배 증산에 주가 급락…영향은 빨라도 2028년 이후

도시바의 증산 계획은 이런 상황에서 시장을 흔들었다.

도시바는 2027회계연도까지 AI 데이터센터용 HDD 생산능력을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세계 HDD 시장은 씨게이트, WD, 도시바 등 3개사가 사실상 과점하고 있다.

도시바가 공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리면 씨게이트와 WD가 누려온 공급 부족과 가격 결정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다.

배런스는 “지난 2일 도시바의 증산 발표 이후 씨게이트와 WD 주가가 급락했지만 월가에서는 도시바의 증설이 HDD 수급 구조를 당장 바꾸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도시바는 여전히 3위 업체이고 증설 계획이 실제 생산량 증가로 이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씨게이트와 WD가 대형 데이터센터 고객들과 체결한 장기공급계약도 단기간의 가격 경쟁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투자·금융 전문 매체 배런스가 인용한 분석에서는 도시바 증설이 두 선두 업체의 가격과 시장점유율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점이 빨라도 2028년 이후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AI가 되살린 HDD…‘공급과잉’보다 먼저 닥친 물량 확보전

HDD는 한동안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에 밀려 성장성이 떨어지는 저장장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GPU가 처리한 방대한 데이터를 모두 고가의 SSD에 장기간 저장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실시간 처리가 필요한 데이터에는 SSD를 사용하고 대규모 원천 데이터와 로그, 과거 기록 등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HDD를 활용하는 계층형 저장 구조가 확대되고 있다.

스토리지 전문매체 스토리지리뷰는 AI가 기업 데이터의 보관 기간을 늘리고 과거 저장 데이터를 다시 활용하도록 만들면서 HDD와 SSD를 포함한 저장 인프라의 중요성이 함께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시바의 증산 발표는 HDD 시장에 경쟁 심화라는 변수를 던졌다.

그러나 트렌드포스가 전한 주문 상황과 업계 장기계약을 감안하면 당장의 문제는 공급과잉보다 수년 뒤 물량까지 미리 확보해야 할 정도로 길어진 공급 부족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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