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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떠난 슈퍼리치 보유재산 218조원…런던 흔들

2년간 이탈자 재산, 英 잔류 억만장자보다 많아…논돔 폐지·추가 증세 우려에 탈출 행렬
영국 런던의 금융지구 전경.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영국 런던의 금융지구 전경. 사진=로이터

최근 2년 동안 영국을 떠나거나 영국과의 관계를 크게 줄인 초부유층의 보유재산이 1600억달러(약 218조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부유층을 끌어모아 온 런던이 세제 개편과 추가 증세 우려 속에 거액 자산가들을 잃으면서 금융허브로서의 경쟁력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를 분석한 결과 최근 2년 사이 영국과의 관계를 약화하거나 완전히 끊은 부호들의 전체 재산이 1600억달러에 달했다고 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금액은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포함된 인물 가운데 여전히 영국을 주거지로 두고 있는 부호들의 전체 재산보다도 많다.

다만 1600억달러가 그대로 영국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국을 떠났거나 관계를 축소한 억만장자와 일부 부호 가문의 전체 순자산을 합산한 수치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들이 내던 세금과 소비, 투자까지 함께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 파장이 작지 않다.

◇논돔 혜택 폐지 전후 이탈 가속

영국은 전통적으로 세계 부유층을 끌어들이는 데 강점을 보여왔다.

UBS에 따르면 영국의 달러 기준 백만장자는 240만명 이상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그러나 지난 2024년 이후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세제 변화가 이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이른바 ‘논돔(non-dom)’ 제도의 폐지다. 논돔은 영국에 거주하지만 법적인 영구 거주지를 외국에 둔 사람을 의미한다. 기존 제도에서는 이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과 자산을 일정 조건 아래 최대 15년 동안 영국 과세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었다.

이 제도의 폐지는 전 보수당 정부가 계획했고 노동당 정부가 집권 뒤 시행했다. 노동당 정부는 이를 대체해 적용 기간이 더 짧은 새로운 세제 혜택도 도입했다.

그러나 상속자산과 사모시장 투자자들의 수익에 대한 과세도 강화되고 추가 세제 개편 가능성까지 계속 제기되면서 부유층의 불안이 커졌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이탈자 가운데 절반은 지난해 4월 대규모 세제 개편이 시행되기 직전 몇 주 사이 영국을 떠나는 절차를 마무리했다. 주요 목적지는 모나코, 스위스, 아랍에미리트(UAE) 등이었다.

영국을 떠난 인물 가운데는 오랫동안 런던 억만장자 사회의 대표적 인물로 꼽혀온 철강재벌 락슈미 미탈도 포함됐다.

◇영국 토박이 부호까지 떠나나

그동안 영국을 떠난 부호들은 상당수가 외국 출신이었다.

영국과 비교적 최근 인연을 맺었거나 거주·사업 관계가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인물들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금융인들의 이탈 움직임도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헤지펀드 매니저 크리스 로코스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로코스는 영국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개인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최근 그리스로 거주지를 옮겼다.

영국 자산관리업계에서는 로코스 사례가 영국과 평생에 걸친 관계를 가진 자국 출신 부호들의 이탈로 확산할지 주목하고 있다.

부유층 거주·시민권 자문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에도 영국인의 해외 이전 관련 문의가 높은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런던의 패밀리오피스 전문 인력업체 공동창업자인 마크 서머스는 “이탈은 끝나지 않았다”며 이번 달 예정된 영국 예산안을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에 부유층들이 해외 이전 방안과 비상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英 소득세 27% 상위 1%가 부담

초부유층 이탈이 주목되는 이유는 이들이 영국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영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7%에 달한다.

이들이 영국을 떠나면 세금뿐 아니라 고급주택, 외식, 소비, 투자에 투입하는 자금도 함께 줄어든다.

실제로 런던에서는 고급주택 판매가 감소하고 있다.

메이페어 등 부유층 소비에 의존하는 고급 외식업체들도 노동당 정부의 세제 인상을 최근 매출 감소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했다.

런던 중심부 고급주택 매수자들은 영국 투자에 따른 위험을 반영해 매도 호가보다 낮은 가격을 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현지 부동산업계는 전했다.

부호의 해외 이전 뒤 영국 내 사업 규모가 축소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의류 브랜드 잭앤존스를 거느린 기업 창업자 트로엘스 홀크 포울센은 지난해 모국인 덴마크로 돌아간 뒤 영국 투자회사의 자금을 줄이고 있다.

이 회사는 런던의 부동산 사업을 매각했으며 올해 5700만파운드(약 1028억원)의 배당을 선언했다. 최근 10년 사이 가장 큰 규모다.

◇정부도 다시 부유층 유치 고민

영국 노동당 정부도 부유층 이탈이 런던의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민간 자산관리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고액 자산가들이 영국에서 얼마나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비공개 조사를 실시했다.

정부 내부에서는 500만파운드(약 90억원)를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거주권을 제공하는 새로운 투자자 비자 도입 가능성도 거론됐다.

논돔 제도를 대체해 도입한 현행 4년짜리 우대 세제를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런던의 국제 금융 중심지 지위가 단기간에 무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브렉시트 당시에도 런던 금융산업이 급격히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랐지만 실제 충격은 예상보다 제한적이었다.

런던은 금융, 법률, 자산관리, 문화와 교육 등 부유층이 선호하는 다양한 기반을 갖추고 있어 다른 도시가 이를 단기간에 대체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벨기에에서 영국으로 올해 이주한 사모펀드 투자자 라자 메쿠아르는 런던에는 정치 문제를 넘어서는 다양한 매력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부유세라는 말은 언제나 매우 싫어하는 단어”라며 영국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세제 방향을 둘러싼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영국의 초부유층 이탈이 단순히 몇몇 억만장자의 주소지가 바뀌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런던의 세수와 소비, 투자, 금융허브로서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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