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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재개방 먼저, 핵 협상은 나중에… 이란, '2단계 분리안' 미국에 전달

이란 지도부 내부 균열 속 협상 교착… 파키스탄 통해 우회 제안 승부수
트럼프 "해군 봉쇄 유지" 맞불… 핵 포기 전 봉쇄 해제 시 레버리지 소멸 딜레마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 사진= 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 사진= 연합뉴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옥죄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핵 협상보다 먼저 해결하자는 이란의 새 제안이 미국에 전달됐지만, 워싱턴은 수용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대해 쥐고 있는 핵심 협상 압박 수단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걸림돌이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는 27일(현지시각) 미국 정부 관리 1명과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 2명을 인용해, 이란이 파키스탄 중재단을 통해 미국에 이 같은 내용의 협상 제안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핵 협상 후순위로 밀고 해협 먼저 열자… 이란의 우회 전략


이란의 새 제안은 두 단계로 구성된다. 먼저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고 미국의 해상 봉쇄를 해제한 뒤, 핵 협상은 그 이후 별도로 진행하자는 내용이다. 현행 휴전을 장기 연장하거나 영구적 종전 합의로 전환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 제안의 배경에는 이란 지도부 내부의 균열이 있다.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는 지난 주말 파키스탄·이집트·터키·카타르 중재단에 미국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이란 지도부 안에서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미국은 이란에 최소 10년간 우라늄 농축 중단과 농축 우라늄의 국외 반출을 요구하고 있다.

아라그치는 27일 오만 무스카트를 방문해 술탄 하이삼 빈 타리크와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논의한 뒤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가 두 번째 협상을 이어갔다. 이어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만날 예정이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쟁 이전 하루 평균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 제품이 통과하던 곳으로,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통로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22일(현지시각)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하루 1300만 배럴의 원유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는 역사상 가장 큰 에너지 안보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1973년과 1979년 오일 쇼크를 합친 규모(하루 1000만 배럴 차질)를 웃도는 수준이다.

트럼프 "해군 봉쇄 계속" 시사… 백악관은 신중 모드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란 원유 수출을 옥죄는 해군 봉쇄를 앞으로 몇 주간 지속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방대한 양의 원유가 이 통로를 통해 흐르는데, 어떤 이유로든 이 선이 막혀 운반이 안 된다면 그 선은 내부에서 폭발한다. 그들은 그런 상태가 사흘이면 한계에 달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협상 경위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악시오스에 "이란의 태도가 바뀌지 않아 특사 방문을 취소했다"며 "18시간 비행을 보낼 이유가 없다. 전화로도 충분하다. 이란이 원한다면 먼저 연락하면 된다"고 밝혔다.

당초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가 이슬라마바드를 방문해 아라그치와 직접 만날 예정이었으나, 이란 측이 끝까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무산됐다.

백악관은 이란의 제안을 받았으나 수용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백악관 대변인 올리비아 웨일스는 악시오스에 "이는 민감한 외교 논의로, 미국은 언론을 통해 협상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밝혔듯이 미국이 패를 쥐고 있으며, 이란의 핵무장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미국 국민 우선의 합의만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이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국가안보·외교팀과 상황실 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미국 정부 관리 3명이 전했다. 이 자리에서는 협상 교착 상태와 향후 대응 방향이 중점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봉쇄 해제 먼저냐 핵 포기 먼저냐'… 딜레마에 빠진 워싱턴


이란 제안의 구조적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데 있다. 악시오스의 보도에 따르면, 해협 재개방과 봉쇄 해제가 실현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농축 우라늄 폐기와 핵 활동 중단을 요구할 압박 수단이 사실상 사라진다.

이란이 극심한 경제 압박에서 벗어나는 순간, 핵 문제를 끝없이 뒤로 미루는 전략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 3월 25일 파키스탄을 통해 이란에 15개 항 제안을 전달했다. 여기에는 핵 프로그램 종료, 탄도미사일 제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무장 단체 지원 중단, 제재 완화 등이 일괄 패키지로 묶여 있었다.

이란은 이를 거부하고 맞제안을 내놓으면서 협상은 장기 교착 국면으로 흘렀다.

IEA는 공급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 3월 비상 비축유 4억 배럴(약 59조 1240억 원) 방출을 결정했지만, 비롤 사무총장은 "비축유 방출은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뿐, 진짜 해결책은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여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란과 미국이 모두 선박 통항을 제한하는 '이중 봉쇄' 상태가 지속되는 한, 협상 교착의 대가는 고스란히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치르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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