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거대 조선사에 밀린 일본의 승부수… 2035년 생산량 2배 목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조선 재건’ 요구와 맞물려 지정학적 안보 협력 강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조선 재건’ 요구와 맞물려 지정학적 안보 협력 강화
이미지 확대보기한국과 중국 조선사들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에 밀려 고사 위기에 처했던 일본 조선업은, 최근 인공지능(AI) 및 반도체와 나란히 ‘경제 안보 전략 부문’으로 지정되며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됐다.
5일(현지시각) 아사히 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민관 합계 1조 엔(약 9조48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대규모 기금 조성을 본격화하고 있다.
◇ "벌거벗은 채 거인과 싸우는 격"... 절박함이 낳은 1조 엔 기금
일본 조선업계는 그동안 자국 정부의 지원 부족을 호소하며 한·중 양국의 국가적 금융 지원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라고 강조해 왔다.
1990년대까지 세계 1위였던 일본의 점유율은 현재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반면 중국 조선사들은 2024년 전 세계 주문량의 70% 이상을 싹쓸이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일본은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을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 섬나라다. 닛폰 유센(NYK Line) 등 해운 대기업들은 "중국이 일본의 선박 건조 주문을 거부할 경우 일본 경제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며 자국 내 조선 기반 유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본 내각은 지난해 말 조선업을 경제 안보 부문으로 격상하고, 3,500억 엔 규모의 국가 지원 기금을 승인했다. 여기에 민간 투자를 더해 총 1조 엔 이상의 자금을 투입, 2035년까지 국내 생산량을 현재의 두 배로 늘린다는 구상이다.
◇ ‘트럼프 리스크’가 기회로… 미국과의 조선 동맹 강화
미국은 상업용 조선 능력이 쇠퇴하면서 해군 함정 건조 및 수리 지연이라는 심각한 안보 문제에 직면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파트너들에게 관세 위협을 가하는 동시에, 조선 분야에서의 긴밀한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자민당 내 경제 안보 실무자들은 미국의 요구를 일본 조선업 재건의 발판으로 삼았다. 일본 정치권은 일본의 조선 산업이 반도체처럼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공유하며 ‘1조 엔 기금’ 명문화를 밀어붙였다.
일본은 단순한 선박 건조를 넘어, 미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MRO) 허브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미·일 동맹을 공고히 하고 자국 조선소의 일감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 만병통치약 아닌 ‘생존의 시작’… 효율적 투자 과제
대규모 자금 투입이 결정됐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여전히 신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본 조선소 임원들은 "1조 엔 규모의 지원도 중국과 한국이 자국 기업에 제공하는 천문학적인 재정 지원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특정 선박 카테고리에 집중하는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서는 숙련된 노동력 확보와 자동화 기술 도입이 시급하다. 일본 정부와 업계는 지난해 12월, 구체적인 투자 일정과 기술 개발 단계를 명시한 '민관 공동 로드맵'을 발표하며 실행력을 높이고 있다.
◇ 한국 조선 업계에 주는 시사점
일본의 조선 부활 정책은 한국 조선사들에게 강력한 경쟁자의 귀환인 동시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나 암모니아 추진선 등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의 기술 협력 기회가 될 수 있다.
미 해군 함정 MRO 시장을 두고 한국(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등)과 일본 조선사 간의 수주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 내 거점 확보와 기술 보안 역량이 승부처가 될 것이다.
일본의 ‘조선 안보’ 논리는 향후 글로벌 무역 질서에서 선박 건조 능력이 국가 경쟁력의 척도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도 조선업을 단순 제조업을 넘어 국가 안보 자산으로 관리하는 정책적 고도화가 필요해 보인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