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신(新) 안보 전략' 시험대... 현대중공업·KAI 앞세워 중국 회색지대 전술 맞대응
"1996년 미스치프 암초의 교훈 잊지 말라"... 필리핀, 한국에 대중국 억제력 공유 강력 요청
"1996년 미스치프 암초의 교훈 잊지 말라"... 필리핀, 한국에 대중국 억제력 공유 강력 요청
이미지 확대보기필리핀 유력 영자지 마닐라타임스는 7일(현지시간) 안보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한국이 필리핀 내 방위산업 기반을 획기적으로 확장해 마닐라의 대중국 억제력을 직접 지원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수빅만은 K-방산 허브"... 美 해군 정비까지 맡는다
보도에 따르면 레나토 데 카스트로 데라살대 교수는 최근 열린 지역 안보 포럼에서 "한국 방산기업들은 이미 필리핀에 강력한 입지를 구축했다"며 특히 수빅만에서 진행 중인 현대중공업의 사업 확장에 주목했다.
데 카스트로 교수는 "현대중공업은 필리핀 해군을 위한 함정을 건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의 조약 동맹국으로서 미 해군 자산에 대한 지원(MRO·유지보수정비)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빅만은 과거 미 해군 기지가 있던 전략 요충지로, 최근 중국 견제를 위해 다시금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는 곳이다.
그는 이어 "필리핀은 한국이 자국뿐만 아니라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까지 아우르는 방위산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한국 방산이 단순한 무기 수출을 넘어, 현지 생산과 정비 거점을 확보함으로써 동남아 전체를 잇는 안보 허브로 도약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번 발언은 지오폴리티컬 인사이트, 고려대 아세안센터, 스트랫베이스 ADR 연구소, 필리핀국립대 한국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한 포럼에서 나왔다. 참석자들은 한국의 방산 기술과 필리핀의 지정학적 위치가 결합할 때 중국의 해상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 번 속으면 실수, 두 번은 바보"... 中 회색지대 전술 경고
전문가들은 중국이 남중국해 분쟁 수역에서 공격적인 확장을 지속함에 따라 서울과 마닐라 간 해양 안보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진단했다.
데 카스트로 교수는 1996년 중국이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있는 팡가니반 암초(미스치프 암초)를 점거했을 당시를 언급하며 한국 측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당시 중국은 이곳을 단순히 '어부들의 쉼터'라고 주장했지만, 지금은 거대한 군사 기지로 변모했다"며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 잘못이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Salami slicing)'에 또다시 당해서는 안 되며, 한국 역시 동중국해 등에서 유사한 위협에 직면한 만큼 중국의 전략을 직시하고 솔직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은 더 이상 경제적 파트너에 머물지 않고,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의 안보 균형을 맞추는 '중견국(Middle Power)'으로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중 패권 경쟁 심화로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외교·국방 참여가 동남아의 전략적 자율성을 지키는 데 기여한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의 선택은? ... FA-50·잠수함 협력 '주목'
필리핀 군 현대화 사업은 이미 한국산 무기체계가 주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호위함과 초계함,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경공격기는 필리핀 해·공군의 핵심 전력이다. 필리핀은 이를 바탕으로 배타적경제수역(EEZ) 전체를 방어하는 '포괄적 군도 방어 개념'을 구체화하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권 교체 이후 정책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트랫베이스 연구소를 겸직하고 있는 데 카스트로 교수는 "이재명 정부가 기존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구체화할지가 지역 안보 지형을 가를 변수"라며 "특히 서울이 추진 중인 핵추진 잠수함 개발 여부는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 국가들의 비상한 관심사"라고 짚었다.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실리 중심의 외교·안보 정책이 강조되면서 동남아 시장 접근법도 더욱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며 "수빅만 거점화는 MRO 시장 선점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인근 국가로의 수출 확대를 위한 최적의 카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