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정권 시절 그 유명한 8·3 긴급경제조치, 즉 사채 동결 대통령 긴급명령 때 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정식 명칭은 투자금융회사였다. 투금사 또는 단기금융회사로 불리기도 했으나 시장에서는 이른바 단자회사(短資會社)로 통칭됐다. 명동 사채시장의 사채업자들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서 자금 거래를 금융당국이 관리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단자회사 중 가장 먼저 출범한 곳이 한국투자금융이다. 이 한국투자금융이 1994년 하나은행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 금융의 4대 메이저 은행 중 하나인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이후 한양투자금융의 후신인 보람은행과 충청은행 그리고 한국외환은행 등을 차례로 인수해 오늘날 매머드 하나은행으로 성장해왔다.
하나은행의 뿌리인 한국투자금융의 설립자는 한국 장기신용은행의 전신인 한국개발금융㈜과 국제금융공사 그리고 재무부였다. 그중에서도 장기신용은행이 최대주주였다. 장기신용은행은 지금은 사라진 금융기관이다. 기업의 설립·시설 확장 등에 필요한 자금을 장기간 지원하는 업무를 주로 수행했다. 한국산업은행과 유사한 점이 있었으나 순수한 민간 은행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1982년 영국령 홍콩에 해외 사무소를 처음 설치했다. 1987년 4월 장은경제연구소를 세웠다. 그해 장은신용카드를 각각 설립해 비자카드 취급을 시작했다. 자회사인 한국투자금융이 분리될 때 한국투자증권과 범한투자자문 주식을 인수했다. 1992년 홍콩 현지법인 한국장은유한공사, 1994년 장은렌탈, 1995년 장은할부금융, 1997년 장은선물 등을 각각 세우며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인플레 속 기업의 장기 자금 수요 폭발로 한때 잘나가던 장기은행은 IMF 사태 때 기업 등이 연쇄 파산하면서 덩달아 흔들렸다. 결국 1999년 국민은행으로 흡수합병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장기은행의 본사는 여의도에 있었다. 어느 날 이 여의도에 시골 촌부가 찾아와 사람의 간을 빌려달라고 떼를 쓰는 촌극이 빚어졌다. 어머니가 간경화로 쓰러져 있다면서 은행이 보관하고 있는 건강한 간을 대출해 달라는 것이었다. 장기은행이 간이나 쓸개 등 사람의 장기를 빌려주는 곳으로 오인한,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까마득한 옛날의 에피소드다.
그 장기가 요즈음 뉴욕증시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금리 인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국채 금리가 오히려 급등하면서 장기 금융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뉴욕증시에 따르면 30년물 국채 금리는 한국 시간 9월 3일 현재 연율 4.977%까지 상승했다. 연준의 기준금리가 4.5%인 점을 감안할 때 비정상으로 높은 수준이다. 제롬 파월은 9월 FOMC에서 미국의 기준금리를 인하할 뜻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의 최고 상한치는 연준이 빅컷을 하면 4.0%로, 또 베이식 컷을 하면 4.25%로 떨어지게 된다. 기준금리의 이런 하향 추세를 감안할 때 뉴욕증시에서 지금 야기되고 있는 장기국채 금리 급등세는 정상을 벗어난 "이상한 발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추세 속에 장기국채 금리가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정부가 조만간 국채 발행 물량을 대폭 늘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은 10월 1일부터 2026년 회계연도를 시작한다. 이 예산의 법적 근거인 이른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OBBBA법'에 따르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더 늘어나는 것으로 돼있다. 그 적자를 메꾸기 위해서는 국채 발행 물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발행 물량이 늘면 국채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단기국채 금리는 대출기간 구조가 유사한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 영향을 받아 하향 안정화될 수 있다. 국채 매수 큰손으로 부상한 스테이블코인도 지니어스법 규정상 단기국채를 주로 사도록 돼있다. 단기국채 금리는 그 덕에 그런대로 안정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장기국채 금리는 그러나 인플레 기조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로 좀체 내려가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트럼프의 상호관세 폭탄이 미국 연방 고등법원에서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까지 위법 판결을 내리면 미국 정부는 상호관세라는 이름으로 걷어왔던 관세를 환급해 주어야 한다. 관세 수입으로 재정적자를 해소하려고 했던 트럼프의 전략에 중대한 차질이 올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가 겹치면서 장기국채 금리가 치솟았던 것이다. 장기국채 금리의 상승은 뉴욕증시 나스닥과 다우지수에 악재다.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가상 암호화폐에도 부담이 된다.
미국의 고등법원 격인 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행정명령의 근거로 삼은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에 대해 “대통령에게 수입을 규제할 권한만 부여할 뿐 행정명령으로 관세를 부과할 권한까지 주지는 않는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IEEPA가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해 여러 조치를 취할 중대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지만 이들 가운데 어떤 조치도 관세 등을 부과할 권한을 명시하지는 않는다”면서 “의회가 IEEPA를 제정하면서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한을 주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IEEPA에 근거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가 법적 권한을 벗어난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1심 격인 국제무역법원도 5월 28일 “관세를 부과할 배타적 권한은 의회에 있다”며 상호관세를 철회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이 판결이 나오면서 뉴욕증시에서 국채금리·금값 등이 이상 발작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연준이 9월 FOMC를 기점으로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란 기대에 단기물 금리는 내리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재정 우려와 인플레 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장기국채 금리가 오르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연준 이사진을 충성파로 갈아치우려 드는 등 연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행보도 장기국채 금리를 흔드는 요인이다. 트럼프의 연준 압박이 결국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도를 낮춰 미국 국채 매도, 달러 약세를 자극할 수 있다.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될 경우 가장 핵심적인 우려는 인플레이션의 고삐가 풀린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가 재정 불확실성을 반영하면서 국채 금리를 강하게 밀어 올리고 있다. 장기물 국채 금리가 튀면서 주식투자 심리도 냉각됐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모든 금리가 바로 하향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국채 금리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장기국채 금리를 잘 살펴봐야 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