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0만 파운드 투입에도 개인 정보 논란에 백지화 가능성
베일리 총재 “민간은행 혁신 성공하면 새 화폐 도입 설득 어려워”
베일리 총재 “민간은행 혁신 성공하면 새 화폐 도입 설득 어려워”

앤드류 베일리 영국은행 총재는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상업은행이 결제혁신에 성공한다면 브리트코인(디지털 파운드) 필요성에 대한 설득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영국은행이 중앙 주도의 CBDC 대신, 민간 은행권이 이끄는 결제 시스템 혁신에 힘을 싣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영국은행은 2021년부터 디지털 파운드 연구개발에 2400만 파운드(약 421억 원)를 투입했다. 그러나 최근 진행된 공개 협의에는 무려 5만 건이 넘는 의견이 쇄도했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개인정보 침해와 정부 감시에 대한 우려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베일리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시스템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신용공급 기반을 흔들 수 있다”며 CBDC보다는 기존 은행 예금을 토큰화하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 미국·한국도 잇따른 CBDC 정책 후퇴…유럽만 독자 추진
영국은행의 정책 선회는 세계적으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대한 열기가 식고 있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준비제도(연준·Federal Reserve)의 CBDC 발행 준비 작업을 금지했고, 의회도 ‘반(反) CBDC 감시국가법(Anti-CBDC Surveillance State Act)’을 통과시켰다.
한국은행 역시 지난 6월 26일, CBDC 2차 실험을 잠정 중단한다고 실험 참여 은행들에 공식 통보했다. 한국은행은 “CBDC, 스테이블코인, 예금토큰이 함께 적용될 수 있는 방향이 명확하지 않아,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가 마무리될 때까지 시범사업 연기를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1차 테스트에 참여한 7개 은행도 약 350억 원을 투입했지만, 추가 비용 부담은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 자료에 따르면, 세계 130여 개국이 CBDC 도입을 검토 중이나 실제 발행까지 이른 국가는 바하마, 자메이카, 나이지리아 등 3곳뿐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25년 7월 기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약 2500억 달러(약 346조 원)에 달한다. 미국 재무부 차입자문위원회(Treasury Borrowing Advisory Committee)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2028년 2조 달러(약 2769조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일리 총재는 “잘 설계된 향상된 디지털 화폐가 꼭 중앙은행만의 몫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공적 감시 없이 규제받지 않는 디지털 화폐 확산은 금융 신뢰를 해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영국은행은 2026년까지 은행의 암호화폐 투자를 총 투자액의 1%로 제한하는 국제결제은행 바젤위원회 규정을 국내 도입할 계획이다.
이번 정책 변화에 대해 금융업계에서는 “기존 결제 혁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화폐 대신 민간 주도의 결제 시스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