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방산 제국을 흔드는 기술 혁신의 바람
AI·드론·데이터...미래 전장의 판도를 바꾸다
AI·드론·데이터...미래 전장의 판도를 바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변화가 불가피한 흐름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현대전은 인공지능(AI), 드론, 전자전 등 첨단 기술의 우위가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기존 방위 산업체들은 이러한 급변하는 요구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틈새를 파고든 것이 바로 안두릴 인더스트리스(Anduril Industries)나 스케일 AI(Scale AI)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 기업들이다.
미 국방부(펜타곤) 역시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성과는 군용 드론 개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과거 신형 시스템 개발에 10년 이상 소요되던 것과 달리,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은 단 몇 달 만에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펜타곤 산하 국방혁신부(Defense Innovation Unit) 사무실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막대한 자금력까지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안두릴 인더스트리스(Anduril Industries)의 기업 가치는 현재 280억 달러(약 40조 4292억 원)에 달하며, 이는 일부 전통적인 방위 산업체들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펜타곤은 이러한 새로운 협력자들에게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스케일 AI(Scale AI)는 2억4900만 달러(약 3595억 원) 규모의 기본 계약을 체결했으며, 스카이디오(Skydio)는 1억 달러(약 1444억 원) 상당의 정찰 드론을 미군에 공급할 예정이다. 특히 안두릴은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220억 달러(약 31조7746억 원) 규모의 전투 안경용 데이터 화면 프로젝트를 인수하는 데 성공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 안두릴, 게임 체인저로 등장
안두릴의 성공 사례는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21세에 가상현실(VR) 기업 오큘러스(Oculus)를 페이스북에 20억 달러(약 2조8886억 원)에 매각한 팔머 러키(Palmer Luckey)는 24세에 안두릴을 설립했다. 회사 이름 '안두릴'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왕의 마법 검에서 따왔다. 이는 군사 기술을 스마트폰처럼 쉽고 간편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안두릴의 핵심 기술은 래티스(Lattice) 소프트웨어다. 이 소프트웨어는 각종 센서, 드론, 감시 장치를 하나의 디지털 신경망처럼 연결하여 통합적인 정보 공유 및 제어 시스템을 구축한다. 특히 안두릴의 '고스트(Ghost)' 드론은 상당 부분 자율적으로 비행하며, 복잡한 작전 환경에서도 인간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임무 수행 능력을 입증했다.
◇ 스케일 AI, 데이터 혁신 주도
2022년, 펜타곤은 스케일 AI를 2억4900만 달러(약 3595억 원) 규모의 공식 데이터 파트너로 선정하며 기술력을 인정했다. 스케일 AI는 이미지 인식 시스템 훈련은 물론, 챗봇부터 이미지 생성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AI 모델 개발 및 테스트를 수행하고 있다.
◇ 오미라 시스템즈, 통신망 생존성 높여
우크라이나 전쟁은 군사 통신 시스템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오미라 시스템즈(Omira Systems)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이 스타트업은 적의 전파 방해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무선 통신 시스템을 개발했다.
오미라의 기술은 이미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은 오미라의 '스마트' 무전기를 사용하며, 특정 주파수가 방해를 받으면 자동으로 채널을 변경하고, 통신망이 마비될 경우 새로운 경로를 스스로 탐색하여 연결을 유지한다.
◇ 프라이모디얼 랩스, 음성 명령 시대를 열다
"좌표 X로 비행." – "알겠습니다, 임무 시작." 프라이모디얼 랩스(Primordial Labs)는 이러한 미래형 군사 통신 시스템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2021년부터 개발된 AI '아누라(Anura)'는 인간의 음성 명령을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명령어로 실시간 번역하는 기술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은 방위 산업의 거물인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의 투자 유치를 이끌어냈다. 2023년 록히드 마틴은 프라이모디얼 랩스에 투자했으며, 미 육군과의 테스트 결과, 음성으로 드론을 제어할 수 있을 때 현장 부대의 작전 속도와 정확성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스카이디오, 자율 비행 드론으로 혁신
두 명의 전직 구글 개발자인 애덤 브라이(Adam Bry)와 에이브러햄 바크라흐(Abraham Bachrach)는 2014년, 스스로 장애물을 회피하는 드론을 개발하겠다는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스카이디오(Skydio)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영화 제작자와 사진작가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스카이디오의 드론 기술은 곧 미 국방부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2022년, 미군은 스카이디오의 RQ-28A를 보병 부대의 표준 정찰 드론으로 채택하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5년에 걸쳐 약 1억 달러(약 1444억 원) 규모의 이 계약은 스카이디오 드론의 뛰어난 성능과 실용성을 입증한다. 배낭에 들어갈 만큼 작고, 2분 이내에 이륙 준비가 완료되며, 30분 동안 비행이 가능하다. 또한, 첨단 기술 덕분에 목표물을 자동으로 추적하고 장애물을 스스로 피해 비행하는 능력까지 갖췄다.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의 혁신은 현대 전장의 모습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중동의 미군 기지에서는 과거 폭발물을 탑재한 소형 드론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지만, 안두릴의 드론 방어 시스템 도입 후 단 몇 초 만에 적 드론을 격추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래티스 소프트웨어로 제어되는 감시탑 네트워크와 레이저, 요격 드론의 유기적인 연동은 기존 방공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이 시스템은 유럽과 아시아의 다른 미군 기지에도 추가로 배치되어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정보 수집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아프리카에서 진행된 대테러 작전 당시, 엄청난 양의 드론 영상 분석에 어려움을 겪던 미군은 스케일 AI의 이미지 인식 시스템을 활용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수천 장의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훈련된 이 시스템은 분석가들이 놓쳤던 위장 차량의 움직임까지 정확하게 포착해내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다. 또한 스케일 AI의 또 다른 시스템은 현장 보고서와 무선 통신 내용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지휘관들에게 정확한 상황 보고서를 제공함으로써 신속한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격전지에서의 안정적인 통신 확보는 현대전의 필수 조건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러시아군의 강력한 전파 방해로 인해 통신망이 마비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오미라 시스템즈(Omira Systems)의 적응형 통신 장비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동으로 주파수를 변경하고, 민간 통신망까지 활용하는 오미라의 기술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통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미라 기술을 사용한 부대는 다른 부대에 비해 통신 장애 발생률이 80% 낮았다"는 사실은 그 효과를 명확히 입증한다.
특수 작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기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 특수부대는 야간 작전에서 프라이모디얼 랩스(Primordial Labs)의 아누라(Anura) 시스템을 활용하여 건물 내부를 신속하게 정찰하고 부상병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음성 명령만으로 드론을 제어하고 실시간 영상을 확인할 수 있어 작전 요원들은 복잡한 장비 조작에 대한 부담 없이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군수 지원 분야에서도 기술 혁신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공군 기지에서는 스카이디오 드론이 전투기의 손상 여부를 자동으로 점검하고, 스케일 AI의 분석 소프트웨어는 미세한 균열까지 정확하게 감지하여 잠재적인 고장을 예측한다. 육군 창고에서는 안두릴의 감시 네트워크가 차량과 보안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야간 경보 발생 시에는 로봇이 먼저 현장을 확인하여 오인 경보로 인한 불필요한 인력 낭비를 줄인다. 오미라의 전파 방해 방지 통신 시스템은 보급 부대의 안정적인 연결을 보장하여 작전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2024년 대규모 군사 훈련 결과, 이러한 기술들을 활용한 전투 여단은 작전 가능 차량 수를 15% 늘리고 보급 임무 수행 시간을 20% 단축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 유럽, 혁신 경쟁에 뛰어들어
미국 기술 기업들의 성공은 유럽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억 유로(약 1576억 원) 규모의 국방 기금을 조성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DIANA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과 다국적 군사 기술 투자 펀드를 설립했다. 각국 국방부는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기술 개발 위험을 공유하고 있다. 맥킨지(McKinsey)의 조사에 따르면, 유럽의 방위 기술 투자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이전 3년에 비해 500%나 증가했다.
유럽의 혁신을 이끄는 대표적인 기업은 뮌헨에 위치한 스타트업 헬싱(Helsing)이다. 이 회사는 군용 센서용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우크라이나에서의 성공적인 테스트를 통해 기업 가치 10억 유로(약 1조5763억 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4년 말, 헬싱은 집단 공격 전술에 특화되어 개발되었으며 전자 방해 공격에 대한 저항력을 갖춘 HX-2 공격 드론을 공개했다입니다. 이 시스템은 대량 생산을 통해 기존 미사일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될 예정이다. 헬싱의 창업자들은 HX-2 드론을 특히 NATO 동부 전선에 대한 "침략 방어막"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스타트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유럽 방위 산업 분야에서 이루어진 1억 유로(약 1576억 원) 이상 규모의 대규모 투자 유치 사례의 거의 절반이 미국 자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4년 공동 조달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을 발표하며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고 나섰다. 미국의 '국방혁신부(Defense Innovation Unit)' 시스템과 유사하게, 유럽에서도 스타트업이 EU 차원의 계약을 통해 여러 국가 시장에 동시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 요동치는 방산 시장
펜타곤은 방위 산업의 혁신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파트너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기존의 조달 프로세스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 몇 년이 걸리던 조달 과정이 이제는 몇 달 안에 완료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협력 관계도 활발하게 형성되고 있다. 2024년 말, 안두릴과 팔란티어는 스케일 AI, 스페이스X, 오픈AI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대규모 군사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자율 무기 시스템의 통제 주체, AI 기반 군사 기술의 신뢰성, 그리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윤리적 기준 등 중요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아직 명확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실리콘밸리의 기술 스타트업들이 가져온 변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방위 산업체들에게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요구하며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기존 방위 산업체들 역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자체 혁신 부서를 신설하고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