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들 남북전쟁은 노예제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고 있다. 노예제를 둘러싼 남북 간 갈등도 물론 전쟁의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바로 관세를 둘러싼 의견 대립, 즉 관세전쟁이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미국은 1776년에 독립선언을 했다. 영국과 수년 동안 독립전쟁을 벌인 끝에 1783년 마침내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우는 데 성공한다. 미국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했다고는 하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프랑스 등 외세의 도움 덕분이다. 자력으로는 영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당시 영국은 미국의 독립전쟁 직전 영국이 7년 전쟁을 수행하느라 프랑스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면전을 벌일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작전상 후퇴를 했고 그 와중에 미국이 어부지리로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은 미국과의 독립전쟁 이후 프랑스 나폴레옹과 맞붙었다. 1807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유럽 대부분을 굴복시키고 섬나라로 유일하게 남아 저항하던 영국에 대해 대륙 봉쇄령을 발효했다. 이에 대해 영국은 우월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프랑스 연안 곳곳을 해상 봉쇄하고 나섰다. 영국 해군은 프랑스의 모든 항구도시 연안에서 무수한 전열함(戰列艦)으로 봉쇄선을 치고 초계활동을 벌였다. 영국은 프랑스와 교역하는 모든 선박에 대해 강제 검열을 개시했다.
영국은 검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랑스와 교역하는 모든 상선에 관세를 때렸다. 관세 납부나 검열을 거부하면 가차 없이 발포해 나포했다. 미국 배도 물론 공격 대상이었다. 미국은 영어를 썼던 터라 영국 탈영병들이 가장 숨기 좋은 곳이었다. 미국 상선은 더욱 집중적인 수색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멀쩡한 미국인들이 강제로 영국 해군에 징집당하는 황당한 경우도 일어났다. 미국 정부는 분노했다. 미국과 영국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영국의 미국인에 대한 강제 징집은 '프레스 갱(press gang)'이라고 불릴 정도로 악명 높았다.
오늘날 캐나다 땅은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 식민지의 공식 명칭은 영국령 북아메리카(British North America·BNA). 영국의 미국인 강제 징집에 화가 난 당시 미국의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영국 식민지와 전쟁을 선언하게 된다. 영국령 북아메리카는 그때까지 미국 서부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골칫거리였다. 미국의 매디슨 대통령은 강제 징집을 문제 삼아 아예 캐나다 땅을 먹겠다고 나섰다. 그 시절 영국은 대부분의 전력을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에 집중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 신경 쓰기가 어려웠다. 영국령 캐나다였던 토론토 일대가 미국에 함락당했다. 뒤늦게 반격에 나선 영국은 미국으로 쳐들어가 워싱턴DC를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다. 미국 대통령 집무실이었던 백악관도 불탔다. 전후 불탄 외벽을 가리기 위해 흰색 페인트를 칠하면서 '백악관'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독립 이후 미국의 수도가 외국 군대에게 점령당한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미국은 백악관과 미국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여러 관청이 불타는 수모를 겪었다. 매디슨 미국 대통령의 아내 돌리 매디슨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와 기밀 서류를 안고 영국 육군이 백악관에 도달하기 직전에 급히 탈출했다.
영국군은 수도를 점령했으니 전쟁도 끝나겠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미국은 각 주들이 거의 독립적인 국가 수준이었고 수도가 점령당해도 자기 고장만 안전하면 괜찮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패배감도 느끼지 않았고 워싱턴D.C.를 수복하기 위한 마땅한 반격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전쟁이 길어졌다. 미국과 영국은 전쟁이 점점 더 길어지자 그냥 없던 걸로 하자는 내용의 겐트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캐나다 측에선 미국의 선제 공격을 받고도 결국 땅을 지켜냈으니 이를 본인들이 승리한 전쟁으로 여긴다. 미국의 수도를 잠시나마 점령하고 또 백악관을 불태웠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캐나다 애국주의 '국뽕'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로 회자된다.
영·미 전쟁 이후 미국 연방은 영국의 경제 공세를 차단한다면서 영국산 수입품에 고(高)관세를 부과했다. 영국의 백악관 침공에 대한 보복이었다. 미국의 국력을 키워 영국에 보복하자는 차원에서 도입한 관세다. 이 관세가 미국의 남과 북을 갈라놓는 독약이 되고 만다. 미국의 관세 자충수인 셈이다. 제조업이 급속도로 일어나고 있던 미국 북부에서는 관세 장벽이 경제 활성화에 큰 플러스가 됐다. 영국산 제조 물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미국 제조업의 판매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문제는 농업에만 의존하고 있던 남부 지역이었다. 미국의 관세 폭탄으로 영국에서 들여오는 농기계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또 영국의 관세 보복으로 남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면화의 영국 수출이 급속도로 감소했다. 이로 인한 남북 간 갈등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1857년 경제 불황으로 연방정부의 고관세를 의회가 다시 통과시키자 남부 주들은 연방에서 탈퇴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북부 출신인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예 문제까지 건드리자 남부의 '뚜껑'이 열린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해체는 노예 문제보다 훨씬 앞선 관세 갈등에서 시작된 것이다.
관세는 세계 대공황을 야기하기도 했다. 1930년 미국 후버 대통령은 불황 조짐을 보이자 미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관세 폭탄을 터뜨린다. 2만 개 이상의 수입품에 평균 4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이른바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발동한 것이다. 여기에 유럽 국가들은 보복 관세로 대응했다. 결국 세계 무역량이 급감했다. 대공황의 골이 깊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의 기폭제가 된 대공황 때의 관세 전쟁은 지금도 미국 최대의 실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집권하게 된 것도 관세 전쟁으로 전 세계적인 대결 구도가 확산된 데 따른 결과였다.
트럼프가 또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메이저 언론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장 어리석은 대통령의 관세 전쟁"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트럼프를 난타했다. WSJ의 저주 때문인지는 몰라도 뉴욕증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뉴욕 증시뿐 아니라 달러환율·국채금리·국제유가 그리고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가상 암호화폐도 요동치고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 는 말이 있다. 트럼프의 미래가 자못 궁금하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