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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광대나물-어릿광대의 신나는 춤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기사입력 : 2018-12-2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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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가 지났다. 박노해 시인은 동짓날을 일러 ‘차가운 어둠에 얼어붙은 태양이/ 활기를 되찾아 봄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했다. 이제 동지도 지났으니 낮은 조금씩 길어지고 태양은 활기를 되찾아 봄을 향하여 힘차게 걸음을 옮길 것이다.

봄볕이 따사로운 날, 들로 나서는 발걸음은 언제나 설렌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바뀌어가는 산 빛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곳곳에 피어 있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한시도 우리의 눈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게 꽃에 홀려 봄볕 속을 걷다보면 팍팍하던 세상살이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마치 다른 세상에 초대받아 온 것 같은 착각이 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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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나물

일부러 꽃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문밖만 나서면 쉽게 어여쁜 꽃을 만날 수 있는 것이 봄이 주는 가장 큰 축복이다. 그렇게 만나지는 수많은 꽃 중에 광대나물 꽃이 있다. 이름에 ‘광대’가 들어 있어서인지 어린 시절, 시골 장마당에서 보았던 얼굴에 온통 하얀 분칠을 하고 커다랗고 새빨간 입술을 그린 어릿광대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생각나게 하며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논둑이나 밭둑, 숲 가장자리나 볕 바른 길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이다. 말 그대로 도시만 벗어나면 지천으로 나는 풀이지만 의외로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너무 흔해서 소홀히 여긴 것도 있지만 우리가 그만큼 자연과 격리된 삶을 살아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광대나물은 이름처럼 어릿광대처럼 우스꽝스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꿀풀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로 줄기를 둘러싸고 꽃을 받치고 있는 잎이 어릿광대가 입은 옷의 목둘레 장식과 닮아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키는 30㎝ 정도로 자라고 4~5월에 홍자색의 예쁜 꽃을 피운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두 개의 마주난 잎이 줄기를 완전히 감싸고 있어 마치 꽃을 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데 맵고 쓴맛이 있어 살짝 데친 후 우려내고 조물조물 무쳐 먹거나 된장국을 끓여도 풍미가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북한에서는 ‘코딱지나물’이라고 한다니 사람들의 상상력의 폭은 정말 가늠할 수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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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나물

하지만 광대나물의 잎에서 꽃으로 시선을 옮기면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이른 봄부터 길쭉한 꽃분홍색의 꽃이 피는데 자세히 보면 사랑스럽고 귀엽기 그지없다. 꽃 모양이 입술을 닮은 순형화(脣形花)인데 마치 봄노래를 부르는 것만 같다. 입술을 벌리고 있는 광대나물 꽃의 모양은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꿀벌의 방문을 용이하게 하려는 배려이다. 윗입술보다 큰 아랫입술은 꿀벌의 안전한 착륙점이다. 그렇게 꽃을 찾아온 꿀벌은 꽃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원하는 꿀을 얻고 광대나물의 꽃가루받이를 도와준다. 상생을 통한 윈윈전략인 셈이다. 자연은 이처럼 일방적이지 않다,

이렇게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꽃이지만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겐 제거해야 할 귀찮은 잡초인 것도 사실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에게 수없이 뽑히면서도 여전히 무성해질 수 있는 것은 한 번 떨어진 씨앗이 땅속에서 5년 이상 때를 기다리는 끈질긴 생명력 덕분이다. 광대나물의 씨앗에는 제비꽃이나 애기똥풀에 함유된 엘라이오좀(Elaisome)이란 방향제가 있다. 이 향기를 좋아하는 개미들이 종자를 물고 가게 만들어 여기저기 퍼뜨림으로써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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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나물

농부들에겐 농사에 지장을 주는 잡초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광대나물 꽃은 잠시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즐거워지니 이것만으로도 존재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봄 들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꽃, 광대나물의 꽃말은 '그리운 봄'이다. 천지간에 생기가 넘쳐나는 봄날에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광대나물 꽃이 핀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롱거리는 아지랑이 속으로 봄이 사라지기 전에 광대나물 그 어여쁜 꽃을 꼭 한 번 만나보시라.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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