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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위험사회의 탈출구를 찾아서

글·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기사입력 : 2018-04-1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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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요즘 미세먼지가 유난했다. 이러다 방독면을 쓰고 출근해야 되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우리가 언제는 물을 사서 마실 줄 알았느냔 말이다. 기업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고 청정기 매출이 호황이다. 현대자동차는 '달리면서 미세먼지까지 걸러내는 궁극의 친환경 차'인 미래형 자동차 NEXO를 시장에 내놓았다. 코웨이의 공기청정기는 '시대의 고민에 코웨이가 청정으로 답하다'라는 헤드라인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독일의 사회과학자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 새로운 근대를 향하여'에서 기후나 원전 등의 문제로 위협받는 ‘위험사회’가 현대사회의 특징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얼마 전 원전문제로 소모전을 치른데다 툭하면 대형사고로 홍역을 앓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감안하면 ‘위험사회로서의 한국사회’를 진단해보는 것은 오히려 시급해 보인다.

꽃의 계절이지만 4월 16일은 세월호 4주기다. 우리는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며 미증유의 무력감을 경험했다. 그 날 학생들은 ‘기다리라’는 방송을 반복해서 들었다. 기다리라고 말해놓고 먼저 탈출한 것은 선장이었다.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구조대를 보낼 지휘탑은 그 시간 부재했다. 지금 세월호 사건을 통해 위험사회를 대비할 방안을 찾기엔 적절치 않아 보인다. 가려지고 남겨진 진실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다만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든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리더쉽과 이를 효율적으로 실행할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엔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1949년 8월 5일 미국 몬태나 주에서 일어난 맨 굴치(Mann Gulch) 협곡 화재 사고를 살펴보자. 이 사고는 산불을 진압하려던 소방대원들 방향으로 바람이 불면서 16명의 대원 중 13명이 화재로 사망한 사고다. 9년 경력의 최고의 화재진압전문가이자 팀의 대장인 와그너 닷지는 자신이 만든 안전한 공간으로 ‘뛰어들라’고 외쳤지만 희생자들은 듣지 않았다. 세월호의 학생들과는 반대로 그들은 리더의 말을 무시했다. 도대체 왜 그들은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희생되었던 걸까? 다시 돌아가 보자. 산불은 맹렬한 속도로 닷지와 대원들을 덮쳐왔다. 그때 닷지는 호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불을 붙여 자기 주위의 풀숲에 던졌다. 평소의 훈련대로 불 속에서 불을 내어 불이 붙지 않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불길은 주위를 태워나갔고 닷지는 장비를 버리고 그 공간으로 뛰어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아뿔싸! 이미 그들은 바람으로 속도가 붙은 불길을 등지고 산등성이 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공포가 그들을 덮친 것이다. 당황한 그들은 바람이 발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닷지는 침착하게 젖은 천으로 얼굴을 감싼 채 불길의 한복판에서 엎드려 기다렸다. 불길은 닷지를 건너 뛰어가는 희생자들을 맹렬한 속도로 집어삼켰다. 소방대장 와그너 닷지는 오랜 경험으로 불꽃이 가장 밝게 타오르는 순간 모든 상황을 파악했고 평소의 훈련대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반복된 실전 경험은 머릿속의 지식을 습관화된 행동 패턴으로 바꿔 놓는다. 밥상에 앉으면 지체없이 숟가락을 드는 것처럼 말이다. 패턴화된 습관 속에서 지식을 체득한 자만이 일촉즉발의 재난 속에서 탈출구를 찾는다. ‘명량’이든 ‘남한산성’이든 전쟁영화의 하이라이트를 기억해보라. 백척간두의 위험에 빠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자는 각 세운 전투복이나 반짝이는 계급장을 뽐내는 자가 아니었다. 불화살이 떨어지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냉정하게 물살의 흐름이나 바람의 방향을 읽어 반격의 시간과 완급을 조절하는 실전의 고수들이였다. 또 다시 터질 재난을 위해 실전으로 다져진 현장의 전문가를 양성하라.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위험사회의 탈출구는 그야말로 ‘숙달된 조교’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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