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오라클이 촉발한 인공지능(AI) 거품 우려가 12일(현지시각)에도 주식 시장에 부담을 줬다.
전날 장 마감 뒤 브로드컴의 실적 발표까지 더해지면서 AI 관련주들의 약세가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오라클, 브로드컴 실적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AI 거품 붕괴의 전조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씨티그룹이 충고했듯 AI가 거품이라고 해도 거품은 단기간에 꺼지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강화될 것이어서 쉽사리 발을 빼서는 안 된다는 충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금은 거품의 어느 단계인가
배런스는 12일 분석 기사에서 현재 투자자들이 해서는 안 될 질문이 “우리가 지금 투기적 거품 상황인가?”라는 것이라면서 대신 “그 과정의 어디 쯤에 있고, 거품이 터지기 전 어떤 전조가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거품’에 대한 오해는 붕괴 시기로 거품이 형성되면 곧바로 터질 것이라는 오해를 부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역사로 증명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거시 경제학의 아버지인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시장은 당신이 (파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랫동안 비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거품은 사건이 아닌 경로
역사상 가장 비합리적인 거품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이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던 네덜란드에서 돌연변이 튤립이 사치품, 부의 상징이 되자 투자 여력이 있는 중산층이 두터운 네덜란드에 튤립 투자 광풍이 불었다. 이 광풍은 3년 가까이 이어졌고, 붕괴 직전 마지막 3개월 동안 튤립 구근 가격은 미친 듯이 폭등했다.
또 다른 거품인 영국 철도 투자 거품은 약 4년을 지속했고, 미국의 닷컴 거품은 1996년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한 지 4년이 지난 2000년까지도 꺼지지 않았다.
거품 막바지가 최고 수익
극도의 고위험 고수익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린스펀의 1996년 연설부터 2000년 초 붕괴까지 닷컴 거품 기간 나스닥 지수는 288% 폭등했고, 붕괴 직전인 1999년에는 한 해에 86% 폭등했다.
거품 기간 앞다퉈 상장되기는 했지만 적자를 면하지 못하던 상당수 인터넷 기업들은 붕괴 뒤 대부분 파산했다.
AI 붐을 주도하는 엔비디아처럼 당시 닷컴 붐을 주도했던 네트워크 장비 업체 시스코는 거품이 꺼지자 이후 2년 반 동안 주가가 89% 빠졌다.
그러나 시스코는 길게 보면 크게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다.
지난 10일 시스코는 2000년이후 처음으로 사상 최고 주가 기록을 세우며 마감했다. 거품 붕괴 25년이 지난 뒤 마침내 반등에 성공한 셈이다.
숨겨진 거품
투자자들이 AI 트레이드에 우려하기 시작한 것은 오라클의 현금 부족이 발단이 됐다. 오라클은 지난 12개월 동안 130억 달러의 잉여현금 손실을 기록했고, 지난 분기에는 100억 달러 손실로 인해 180억 달러를 차입해야 했다.
오라클만의 문제가 아니다.
AI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아직은 이런 투자가 순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돈이 넘쳐나던 빅테크들도 회사채 발행으로 구멍을 메울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드러난 거품만이 아닌, ‘사모시장(Private Markets)’에서 조용히 커지는 거품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2000년 닷컴 거품은 공모시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났지만 지금은 사모시장에서 거품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AI, 또 이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에너지 스타트업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지난해부터 이들 기업에 3620억 달러가 유입됐다.
내년에 스페이스X, 오픈AI가 상장되고, 이들이 각각 1조 달러 이상의 가치로 공모시장에 진입하면 사모시장의 거품이 공모시장으로 확산되면서 거품이 가중될 수 있다.
종말은 아니다
그러나 거품이 붕괴한다고 파국으로 치닫는 것만은 아니다.
닷컴 거품 붕괴에도 불구하고 그 광풍에 힘입어 웹 기반 세계가 구축된 것처럼 이번 AI 붐은 관련 인프라와 네트워크라는 유산을 남기면서 다음 혁신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AI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과 이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세계 경제를 다음 단계로 도약시키면서 주식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보탬이 될 전망이다.
시스코의 경우 거품 붕괴로 단기간에 주가가 급락했다고는 하지만 1996년 그린스펀 발언 시점에 주식을 산 투자자라면 지금까지 연평균 10.3% 수익률을 기록하며 스탠더드 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투자한 것보다 더 높은 수익을 얻었을 것이다.
김미혜 글로벌이코노믹 해외통신원 LONGVIEW@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