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팅하우스와 손잡고 ‘AP1000’ 부활 시동…日 자본 800조 인프라 펀드 활용
정부가 수익 20% 공유하는 ‘민관 합작’ 모델…“AI 패권 위한 에너지 지배 전략”
‘보그틀 원전’ 비용 악몽 딛고 표준화 공정 승부수…관련주 희비 교차
정부가 수익 20% 공유하는 ‘민관 합작’ 모델…“AI 패권 위한 에너지 지배 전략”
‘보그틀 원전’ 비용 악몽 딛고 표준화 공정 승부수…관련주 희비 교차
이미지 확대보기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4일(현지시각) 미국 정부가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 및 그 모기업인 브룩필드 자산운용, 카메코와 협력해 대형 원자로 ‘AP1000’ 건설을 대대적으로 추진한다고 보도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수십 년간 정체했던 미국 원전 산업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AI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확보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지배(Energy Dominance)’ 구상이 구체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AI 시대의 전력난, ‘대형 원전’으로 정면 돌파
WSJ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이번 계획을 통해 4개 부지에 총 8기의 AP1000 원자로를 건설할 예정이다. AP1000은 1기당 약 1100메가와트(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중소도시 하나를 통째로 밝히거나 거대 기술 기업의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24시간 가동하기에 충분한 용량이다.
댄 섬너 웨스팅하우스 임시 최고경영자(CEO)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원자로 건설은 미국이 AI 경쟁에서 승리하고 에너지 패권을 쥐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며 “우리는 기술력을 갖췄고, 이것이 미국을 위한 해법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전력 시장의 관심은 건설 기간이 짧고 비용이 저렴한 소형모듈원전(SMR)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전력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다시금 대용량 기저부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대형 원전이 주목받는 상황이다.
휴 윈 섹터앤소버린 리서치 분석가는 “전력 수요 증가세가 완만할 때는 소형 원자로가 합리적이었지만, 지금처럼 수요가 폭발하는 상황에서는 대형 원자로가 더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일본 자본 활용한 ‘민관 이익 공유’ 모델
이번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방식은 미·일 동맹을 활용한 창의적 구조를 띤다. 미국은 일본과의 무역 협정을 통해 확보한 인프라 투자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일본은 미국의 핵심 인프라에 최대 5500억 달러(약 811조 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와이어트 하틀리 브룩필드 리뉴어블 파트너스 공동 대표는 “이번 구조는 미국 국민이 웨스팅하우스의 수익을 공유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계약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웨스팅하우스의 이익이 175억 달러(약 25조 원)를 넘어서면 그 초과분의 20%를 가져가게 된다. 향후 웨스팅하우스가 상장할 경우 정부가 주주로서 참여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는 단순한 보조금 지급을 넘어 정부가 산업 육성의 파트너로서 직접 위험과 수익을 공유하는 모델이다. 댄 섬너 CEO는 “미국 정부가 ‘세컨드 무버(Second Mover)’로서 시장에 참여한다는 것은 제조사와 공급망에 강력한 신호를 주는 것”이라며 “이는 향후 원전 건설 비용을 낮추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그틀의 악몽’ 재현 막을까… 관건은 비용 절감
가장 큰 걸림돌은 막대한 건설 비용과 공기 지연이다. 조지아주에 건설된 보그틀(Vogtle) 원전 3·4호기는 당초 140억 달러(약 20조 원)로 예상됐던 건설비가 300억 달러(약 44조 원)를 넘어서며 ‘비용의 늪’에 빠진 바 있다. 완공 시점도 계획보다 7년이나 늦어졌다.
웨스팅하우스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원자로 1기당 ‘오버나이트 코스트(금융 비용을 제외한 순수 건설비)’를 100억 달러(약 14조 원)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설계 변경 없이 동일한 모델을 반복해서 짓는 ‘표준화’와 ‘단순화’ 전략을 내세웠다.
그랜트 아이작 카메코 사장은 “AP1000은 이미 기술, 라이선스, 연료 공급 측면에서 검증을 마쳤다”며 “남은 과제는 프로젝트 관리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목표는 단순화와 표준화를 통해 똑같은 작업을 반복 수행함으로써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계에서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야코포 부온지오르노 MIT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800억 달러라는 규모는 원전 산업을 가속하기에 적절한 수준”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부지, 참여 기업, 인력 확보 방안 등 세부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선언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주 주가 ‘들썩’… 대형 원전 vs SMR 희비 교차
이번 대형 원전 부활 소식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뉴욕증시와 토론토증시에서는 웨스팅하우스의 지분을 보유한 우라늄 기업 카메코(Cameco, CCJ)와 자산운용사 브룩필드(Brookfield, BN/BEP)의 주가가 대형 수주 기대감을 반영하며 강세를 보였다. 특히 카메코는 우라늄 장기 수요처 확보라는 호재가 겹치며 투자 심리가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최근 급등했던 뉴스케일파워(NuScale, SMR)와 오클로(Oklo, OKLO) 등 소형모듈원전(SMR) 관련주는 단기적인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정책 무게중심이 당장 전력 공급이 가능한 대형 원전으로 이동함에 따라, 상용화까지 시간이 필요한 SMR에 대한 차익 실현 매물이 출회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증시에서도 두산에너빌리티 등 원전 주기기 제작 업체들이 미국의 원전 생태계 복원에 따른 낙수 효과를 기대하며 주목받고 있다. 월가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번 베팅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을 넘어선 AI 패권 전략"이라며 "전력 인프라 관련 기업들의 장기적인 수혜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