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이 인텔 매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두 회사가 합병해도 미국의 반도체 산업이 회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미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반도체 제조 공장인 팹은 거대한 시설로 공장 건설에 몇 년이 걸리고, 수십억 달러가 투자돼야 한다.
퀄컴이 인텔을 인수해도 인텔에 내재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퀄컴은 인텔의 반도체 생산 부문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반도체 디자인 분야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인텔은 크게 2가지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하나는 PC용 반도체 디자인과 데이터 센터 서버 운영이고, 또 하나는 디자인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이다. 인텔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도체 디자인과 생산을 통합해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이 모델에 한계가 왔다.
인텔은 지난 16일 적자 상태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사업 구조 조정안을 발표했다. 2021년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한 지 3년 만에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 부진의 영향으로 지난 2분기 16억 달러(약 2조1300억 원) 대규모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부를 완전히 분리해 독립 자회사로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인텔이 10년 이상 손 놓고 있었던 기술 혁신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고, 퀄컴이 인텔을 인수해도 이런 상황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했다.
미국에는 엔비디아, 퀄컴, AMD와 같은 반도체 기업이 있으나 실제로 이들 업체가 반도체를 만드는 게 아니라 대만 TSMC 등이 만든다. 애플을 비롯한 빅테크는 TSMC에 필요한 반도체를 주문해 생산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거나 대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대참사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엔비디아는 필요한 GPU를 확보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도체가 힘이고, 반도체를 해외에 의존하면 그 나라는 전략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인텔은 PC 중앙처리장치(CPU) 중심으로 반도체 업종의 제왕으로 군림했으나 이제 경쟁 업체에 밀리고 있다. 모바일 칩 분야는 암(Arm)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인공지능(AI) 칩의 기본이 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엔비디아가 압도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인텔의 핵심 사업인 CPU 부문도 경쟁사인 AMD에 추격을 당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오는 2030년 전까지 미국이 글로벌 첨단 반도체 생산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패권국’으로 재도약하는 비전을 제시했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 법에 따라 인텔에 85억 달러 보조금을 지급하고 110억 달러의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도 인텔이 2025년까지 대만 TSMC를 제치고,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오는 2027년부터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를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칩 생산 센터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반도체를 개발한 국가지만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0%가량에 불과하다. 미국은 특히 중국의 위협을 받는 대만이 핵심 반도체 생산 국가인 점 등을 고려해 미국 내에서 반도체 생산을 대폭 늘리려 한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약 68조 원)를 직접 지원하고, 세제 혜택 등을 통해 모두 2800억 달러(약 368조 원)를 지원하는 내용의 ‘반도체 지원 및 과학 법’을 제정했다. 초당적으로 미 의회를 통과한 이 법에 따르면 약 390억 달러가 미국 내에서 반도체 생산 시설을 신설, 확장, 현대화하는 기업에 제공된다. 나머지 110억 달러는 반도체 연구, 개발 지원비로 사용된다. 방위 산업 관련 반도체업체에는 20억 달러가 지원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