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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사 진단]잭슨홀 미팅 '트럼프 vs 제롬 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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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경제학 박사
잭슨 홀(Jackson Hole)은 미국의 유명한 휴양지다. 로키산맥의 지류인 티턴 산맥과 그로스벤터 산맥 사이에 있다. 만년설이 뒤덮인 티턴산을 배경으로 거대한 잭슨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여기서 ‘홀(Hole)’은 큰 산골짜기를 뜻한다. 덫을 놓아 사냥하는 사람들이나 산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잭슨홀의 평균 해발고도는 2100m다. 지리산이나 한라산보다도 높다. 행정지명상으로는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 티턴 카운티에 속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왼쪽)이 지난해 잭슨홀 심포지엄에 참석해 티프 맥클렘 당시 캐나다은행 총재, 앤드루 베일리 잉글랜드은행 총재 대화하고 있다. 사진=캔자스시티연방준비은행이미지 확대보기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왼쪽)이 지난해 잭슨홀 심포지엄에 참석해 티프 맥클렘 당시 캐나다은행 총재, 앤드루 베일리 잉글랜드은행 총재 대화하고 있다. 사진=캔자스시티연방준비은행

이 잭슨홀에서는 1982년부터 해마다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금융정책을 논의하는 ‘잭슨홀 미팅’이 열린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문과도 같은 선언이 나온다.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지혜에 빗대어 잭슨홀 미팅을 아예 ‘티턴산의 계시’라고도 한다. 이 회의는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주관한다. 캔자스시티 여름철 통화정책 회의를 시작한 것은 1978년부터다. 미국 전역의 연준 고위 관계자들이 여름휴가철을 이용해 한자리에 모여 통화정책을 조율해 보고자 하는 취지였다.

미국의 지역 연방은행이 주최하는 자그마한 회의가 일약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82년부터다. 당시 미국은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놓여있었다. 연준은 스태그플레이션과의 전쟁으로 영일이 없었다. 그 유명한 폴 볼커가 연준 의장이었다. 볼커 의장은 1979년 10월 6일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4%포인트 올리는 충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그날은 모두 쉬고 있던 토요일이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예정에 없었다. 볼커는 휴일 밤에 임시 FOMC를 전격 소집해 11%이던 기준금리를 15%로 올린 것이다. 연준 100여 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슈퍼 자이언트 금리 인상 순간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 불렀다.

이 조치로 미국의 경기는 급속히 냉각됐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계층은 농민들이었다. 당시 미국의 농민들은 기계화의 물결을 타고 엄청난 빚을 내 농기구를 마련하고 있었다.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갚아야 할 빚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빚더미에 앉게 된 미국 농민들이 대거 트랙터를 몰고 미국 수도 워싱턴DC로 상경했다. 이들은 도심 한복판을 행진하고 연준 건물을 봉쇄하며 볼커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사상 초유의 고금리 직격탄을 맞고 소속 회사가 문을 닫자 앙심을 품은 한 남자는 연준 건물에 무기를 들고 난입하는 소동을 벌였다. 신변에 위험을 느낀 볼커는 이때부터 권총을 휴대하고 다녔다. 연준 의장이 FOMC 회의를 할 때도 권총을 들고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볼커는 1981년 기준금리를 21.5%까지 올렸다. 연준 역사상 전무후무한 고금리다. 고금리는 이후 3년이나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2년 캔자스시티 연방은행이 해마다 주관해오던 여름철 통화정책 회의가 소집됐다. 시위대들이 회의 현장에 난입할 것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다. 테러 협박도 이어졌다. 볼커의 신변 안전이 우려됐다. 주최 측은 고심 끝에 회의 장소를 시위대나 테러분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깊고 높은 산악 한복판 움푹 꺼진 골짜기로 옮기기에 이른다. 그래서 등장한 곳이 로키산맥 티턴산의 잭슨홀이다. 그 모습이 마치 구멍 같다고 해 잭슨이라는 도시 이름에 홀이 더해져 잭슨홀로 불린다. 여기서 말하는 홀은 큰 산골짜기를 뜻한다. 덫 사냥꾼이나 산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다. 미국 독립전쟁 직후 이 골짜기를 처음 발견한 데이비드 잭슨이라는 탐험가 겸 모피 무역상의 이름을 따 잭슨홀이라고 부른다. 이 잭슨홀은 골짜기의 길이가 무려 89㎞에 이른다. 고도는 평균 해발 2100m다. 최저점의 높이는 1940m다. 우리나라의 설악산이나 한라산 정상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잭슨홀 미팅의 역사에는 스태그플레이션과 싸우던 연준 관계자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후 잭슨홀 미팅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통화정책 회의로 명성을 날렸다. 기준금리 인하와 양적완화(QE) 또는 금리인상과 양적축소(QT) 등 연준의 주요 통화금융정책 방향이 이 회의에서 결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사진=로이터

잭슨홀 미팅에서 하이라이트는 연준 의장의 기조연설이다. 잭슨홀 미팅에서 나오는 연준 의장의 메시지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이다. 미국의 통화정책은 달러 환율과 뉴욕증시 등 금융시장에 큰 변동성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의 경제계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2005년에는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장이 미국 경제의 거품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이 발언 이후 2년 후인 2007년 실제로 세계 금융위기가 도래해 주목을 받았다. 2010년에는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책으로 양적완화 확대와 제로금리 정책을 제안했다. 2022년에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고강도 금리인상을 계속하겠다는 발언을 해 국내외 증시와 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23년에는 파월 연준 의장이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서 미국 기준금리 인상 여부에 대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발언하면서 뉴욕증시가 크게 올랐다.

잭슨홀 미팅 참석자 수는 150명 안팎이다. 숫자는 적지만 참석자 모두가 초중량급 인사들이다. 미국 연준은 물론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 등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인다. 거물 경제학자들도 초대를 받는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글로벌 경제 상황에 대해 진단하고 금리정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 그 논의를 토대로 글로벌 통화정책의 정책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요즘 세계 경제는 트럼프 관세 폭탄으로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혼돈이 이어지고 있다. 신규 일자리가 한꺼번에 무려 25만 명이나 감소하는 고용 충격 중에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 와중에 CPI와 PCE 물가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경기침체와 인플레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의 경고도 나오고 있다. 올해 잭슨홀 미팅은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열린다. 주제는 노동시장 구조전환 속 거시경제 정책 방향이다. 영어 원제목은 'Labor Markets in Transition: Demographics, Productivity, and Macroeconomic Policy'이다. 미국 노동부 고용보고서 수정 충격 속에 그 원인 진단과 함께 효과적인 통화관리와 금리정책 방안이 집중 논의된다. 단기적으로는 9월에 금리인하를 할지에 대한 컨센서스도 모색하게 된다. 트럼프와 금리인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제롬 파월의 입장 표명도 관심사다. 권총까지 차고 다니는 결기로 마침내 스태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폴 볼커의 신화가 그립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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