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김대호 진단] 뉴욕증시 금리인하 전쟁... 트럼프 vs 제롬 파월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경제학 박사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경제학 박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미국의 중앙은행이다. 연준은 기준금리와 적정 통화량 수위를 결정하는 곳이다. 미국 연방은행법은 금리에 관한 모든 권한을 연준에 부여하고 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연준의 금리 결정에 개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다. 적어도 금융에 관한 한 연준이 최고의 권력기관이다. 연준을 이끌고 있는 연준 의장이 뉴욕증시에서 금융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유다.
미국의 선조들이 중앙은행에 강력한 독립성을 부여한 데에는 나름 사연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권력은 그 속성상 통화량을 늘리고 싶어 한다. 돈이 있어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돈을 많이 풀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지지율도 올라간다. 적당한 유동성은 국가 경제에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문제는 그 정도다. 통화량이 지나치게 많이 늘어나면 물가 폭등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통화량 증가와 물가 폭탄 사이에는 일정한 타임 래그가 있다. 돈을 풀었을 때 그 늘어난 통화량이 물가를 흔들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당장에는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물가가 오르더라도 누구 때문인지 책임 소재를 따지기가 애매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정치권력은 일단 돈을 풀고 싶어 한다. 인류 역사상 숱한 경제 공황은 대부분 방만한 유동성 살포에서 야기된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중앙은행 제도는 이 같은 정치권력의 방만한 통화증발 욕구를 미리 견제한다는 차원에서 고안된 것이다.

최근 들어 미국 연준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을 향해 연일 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연준 의장을 향해 강한 압박을 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겨냥해 “미스터 투 레이트(Mr. Too Late)"라고 몰아세웠다. '금리인하에 너무 늦은 남자'라는 뜻이다. 당장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미국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의 해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달 2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현재 보수 공사 중인 연준 건물을 둘러보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달 2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현재 보수 공사 중인 연준 건물을 둘러보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연준 의장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대통령이 지명하면 의회 상원의 인준을 거쳐 임명된다. 미국 연방은행법은 그러나 연준 의장의 해임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것인 만큼 대통령이 해임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법조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연준 의장은 이미 의회 인준을 받았고 또 법으로 임기가 보장돼 있는 만큼 임명권자라고 해도 도중에 자를 수가 없다는 해석이 만만치 않다. 연방은행법은 연준을 직제상 대통령 산하가 아닌 독립기구로 분류하고 있다. 연준의 업무 보고도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을 일방적으로 해임하면 법적 분쟁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준 의장 해임은 말처럼 쉽지 않다. 다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아예 파월 흠집내기에 나섰다. 망신을 줘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 이사회가 이 완전한 얼간이(moron)를 왜 무시해버리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또 “파월 그 멍청이(numbskull)가 금리를 1∼2%로 줄인다면 미국은 연간 1조 달러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파월을 아예 얼간이와 멍청이로 비하한 것이다. 연준 의장을 향한 트럼프의 압박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파월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연준의 독립성이 보장된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트럼프의 공세를 이겨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연준 의장이 욕을 먹는 수난의 역사는 뿌리가 꽤 깊다. 연준의 기본 목표는 통화가치의 안정이다. 물가와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내야 하지만 둘이 다른 방향으로 튈 때 연준 입장에서는 물가부터 잡아야 하는 것이 설립의 기본 정신이다. 인기 없는 돈줄을 죄어야 하는 숙명 탓에 연준은 출범할 때부터 적이 많았다.

1979년 수만 명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워싱턴의 연준 본부로 쳐들어온 일이 있었다.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빚더미에 앉게 된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워싱턴으로 상경했다. 이들은 도시 한복판을 행진한 후 연준 건물을 봉쇄했다. 당시 의장이던 폴 볼커에게 금리를 다시 내리지 않으면 살해하겠다는 공개 협박까지 나왔다. 볼커는 이 같은 압박에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총을 구입해 허리에 차고 다니면서 맞섰다.

미국 연준의 의장들이 숱한 압박 속에서도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었던 데에는 시장의 역할이 컸다. 권력이나 특정 경제주체들로부터 협박당할 때마다 뉴욕증시를 주축으로 한 미국의 금융시장은 연준을 옹호했다. 이번 트럼프와 파월의 금리인하 전쟁에서도 시장은 파월 편이었다. 파월이라는 한 개인을 옹호한 것이라기보다는 중앙은행인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내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연준 의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가운데 월가의 대형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이 파월의 호위무사로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의 축출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가운데 이들이 연준의 독립성 수호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와 브라이언 모이니핸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CEO, 제인 프레이저 시티그룹 CEO는 이날 한목소리로 중앙은행인 연준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솔로몬 CEO는 CNBC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우리에게 놀랍도록 잘 기여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연준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며, 우리가 보존하기 위해 싸워야 할 뭔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레이저 CEO는 성명을 내고 "독립성이 연준의 신뢰를 이끈다"면서 "독립성은 우리 자본시장의 효율성과 미국의 경쟁력에 핵심적"이라고 밝혔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서 "연준을 갖고 장난치는 것은 역효과를 낳을 수 있으며,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 CEO 4명이 관장하는 자산 규모는 12조 달러가 넘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지명자였던 제롬 파월이 연단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지명자였던 제롬 파월이 연단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그동안 미국 금융계는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는 것은 최대한 삼가 왔다. 이번에는 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월가에는 연준의 독립성에 대한 간섭이 글로벌 자본 흐름에 막대한 파문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트럼프의 과도한 압박이 미국 국채와 달러화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금리가 인하되면 당장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파월의 보호에 금융계가 나서는 것은 중앙은행의 중립성과 독립성 보장이 금융 안정을 유지하는 데 다른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인식에 공감대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리인하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트럼프와 파월의 전쟁에는 중앙은행 독립성의 운명이 걸려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