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고용시장 동향이 향후 경제 진로와 통화정책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상황에서 기업들의 ‘조용한 빅 해고(big silent layoff)’가 진행 중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기업들이 드러내 놓고 눈에 띄는 감원을 하는 대신에 직원들에게 조용히 불이익을 줌으로써 퇴사를 유도하고, 이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지 않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이용 확대 등에 따른 화이트칼라 일자리뿐 아니라 시간제 근로자의 고용이 줄어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각) “미국 실업률이 6월에 4.1%에서 7월에 4.3%로 올라간 것은 실직자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구직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저조한 신규 일자리 창출과 임금 상승 둔화가 단순히 노동시장의 재균형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하강을 예고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가 넘쳐났다가 최근에는 일부 기업들이 시간제 근로자를 줄이고 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시간제 근로자 네트워크인 잡케이스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이 약 1년 전부터 시간제 근로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AI 도입 등으로 수익성을 올리기보다는 고용 감소에 따른 비용 절감에 나섰다. 기업들이 이처럼 자연 감원과 고용 축소를 통한 ‘조용한 빅 해고’를 하고 있다고 WSJ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조용한 해고 또는 조용한 감원은 직접적인 해고 대신 간접적으로 해고하는 방식이다. 기업이 직원에게 장기간 봉급 인상을 거부하거나 승진 기회를 박탈하는 식으로 조용히 불이익을 주면서 스스로 직장을 떠나도록 하는 게 그 대표적인 방식이다.
미국에서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 직장인 사이에서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가 주목을 받았다. 이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일만 하는 것을 뜻한다. 기업도 이에 맞서 드러내 놓고 직원을 해고하기보다 이들이 자연스럽게 직장을 떠나도록 유도하는 ‘조용한 해고’를 단행했다. 이때 일부 기업이 신규로 정직원을 채용하기보다 기존 근로자의 업무를 변경하는 ‘조용한 고용’을 하거나 정규직 대신에 시간제 계약직 직원을 뽑았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미국 파트타임 근무자 수는 2290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020년 4월 파트타임 근무자 수가 1240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가량 증가했다. 2020년 2월 2220만 명이었던 파트타임 근무자 수는 같은 해 4월 1240만 명으로 급락한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고, 지난해 9월에 종전 최고 기록이었던 2220만 명을 넘어섰다. 기업들이 근무 방식을 유연하게 바꾼 덕분에 여성, 특히 아이를 둔 여성이 혜택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팬데믹 당시 노동력 부족을 경험했던 기업들은 근무 조건을 탄력적으로 바꾸며 시간제 고용을 늘렸다. 이제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고물가·고금리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이 시간제 근로자까지 고용을 줄이고 있다.
미국과 글로벌 금융시장은 미국의 고용지표에 따라 요동치고 있다. 지난 2일 나온 미국의 7월 실업률은 약 3년 만에 가장 높은 4.3%를 기록했고,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도 시장 전망에 못 미치는 11만4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뉴욕을 비롯한 글로벌 주요 증시의 주가지수가 이때 급락했다가 개선된 고용지표가 나오자 다시 반등했다. 지난 7월 28일∼8월 3일까지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23만3000건으로 한 주 전보다 1만7000건 감소하면서 시장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