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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트림프 환율 폭탄과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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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림프 환율 폭탄과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오랫동안 자유시장경제의 중심으로 글로벌 무역 질서를 관장해왔던 세계무역기구(WTO)도 트럼프의 관세 폭탄 앞에서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트럼프의 말이 곧 법이다. 어느 누구도 트럼프에게 감히 대들지 못한다.
트럼프가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힘은 달러에서 나온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는 미국 달러를 유일한 국제 결제 통화로 사용해왔다. 미국 달러로 교역을 하고 또 금융거래를 해왔다. 달러가 부족한 나라는 국가 부도를 맞았다. 한국도 1997년 달러가 고갈되면서 디폴트 상황에 빠져 단군 이래 최악의 경제난을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지구촌의 모든 나라는 목숨을 걸고 달러를 모은다. 그것이 바로 외환보유액이다. 미국 달러 외에 금도 외환보유액으로 인정해 주지만 그 양이 워낙 적고 보유해도 이자가 전혀 없다는 점 때문에 한계가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완벽한 외환보유액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달러와 미국 국채뿐이다. 미국 국채는 달러 표시로 그 지급을 미국 재무부가 보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달러와 마찬가지다.
지구촌의 모든 국가는 달러를 한 푼이라도 더 벌어들이기 위해 목숨을 건다. 달러는 국력이자 곧 생명이다. 이 귀하고 소중한 달러를 자기 마음대로 발행하는 나라가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미국이다. 겉으로만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막강한 군사력에서 나오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물론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러나 그 군사력의 원천이 바로 달러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오늘날 미국의 궁극적인 파워는 달러 패권에서 연유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부상한 것은 1944년부터다. 2차 대전에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던 연합국 측은 전후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를 모색하기 위해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턴우즈에서 모였다. 바로 이 자리에서 미국 달러를 세계의 유일한 기축통화로 공인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때 만들어졌다.
달러 기축통화 지정에는 반대가 많았다. 달러만 기축통화로 할 경우 미국의 영향력이 너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분출된 것이다. 미국과 가장 친한 동맹국이었던 영국이 앞장서 달러 기축통화에 반대했다. 영국이 제안한 것은 IMF를 중심으로 전 세계가 공동 출자해 새로운 국제통화를 만들어 내자는 것이었다. 그 새로운 통화가 바로 방코르였다. 영국 국적의 경제학자 케인스의 아이디어였다.
케인스의 방코르 구상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이 힘을 앞세워 달러 기축통화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국력을 많이 소진했던 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요구를 물리치기 힘들었다. 전후 복구를 마셜플랜과 같은 미국의 원조에 대부분 의존해야 했던 당시의 절박한 상황에서 끝까지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방코르 대신 달러가 기축통화로 최종 결정됐다는 소식에 대성통곡했다. 달러 기축통화 채택은 통화 시스템을 넘어 미국이 모든 분야에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는 결정적 기폭제가 됐다.
브레턴우즈 회의에서도 미국의 권력 과대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금 태환 제도다. 달러화를 IMF의 기축통화로 하되 그 대신 미국은 자신이 발행한 달러를 언제든지 금으로 바꿔줘야 한다는 단서를 단 것이다. 미국이 달러를 무제한 발행해 글로벌 금융질서를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하는 나름의 견제 장치였다. 금 태환의 교환비율은 금 1온스당 미국 돈 35달러였다. 미국은 당시 전 세계의 금 가운데 75%를 점유하고 있었다. 금 태환 제도는 2차 대전 직후 한동안 미국의 달러 무제한 발행을 제어하는 나름의 역할을 했다.
문제는 베트남전쟁이었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엄청난 전쟁 비용을 물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돈을 마구 찍어냈다. 금 보유량이 일정 수준 제한된 상태에서 달러 발행액을 크게 늘리면서 1960년대 말부터는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줄 능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베트남전쟁과 과도한 복지 예산으로 미국의 달러 발행량이 급증하자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금 보유고가 바닥날 위기에 처하자 닉슨 대통령은 금 태환 정지를 선언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닉슨의 금 태환 정지 선언이다. 언제 어디서든 달러와 금을 교환해 주겠다는 브레턴우즈 약속을 정면으로 깬 것이다. 금 태환은 미국 달러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어준 브레턴우즈 체제의 전제 조건이다. 이 조건을 미국이 깨면서 달러의 기축통화를 보장한 브레턴우즈 체제도 무너지고 만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닉슨 쇼크(충격)라고 부른다.
닉슨 쇼크의 파장은 엄청났다. 미국 달러가 폭락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 폭탄이 터졌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도 닉슨의 금 태환 정지와 그에 따른 달러 폭락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달러에 대한 신뢰도는 폭락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도 크게 흔들렸다. 미국은 이 위기를 사우디 카드로 돌파한다. 금과의 연결고리가 끊긴 달러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사우디와 밀약을 맺은 것이다. 미국이 사우디 왕실의 안보를 완벽하게 보장하는 대신, 모든 석유 거래는 오직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했다. 이 밀약 때문에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석유를 사려면 반드시 달러를 보유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금태환제 파괴 이후 달러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늘어난 이유다. 오늘날 미국의 달러 패권은 압도적 군사력과 촘촘한 금융 네트워크(SWIFT) 그리고 뉴욕증시 자본 축적으로 유지해 나가고 있다. 달러의 역사는 '금의 대역'(1944)에서 '석유의 동반자'(1974)를 거쳐 지금은 '대체 불가능한 신용'(2026)으로 진화했다. 미국은 이 기축통화 지위를 통해 화폐를 찍어내는 것만으로 스스로 부를 창출하면서 다른 나라에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금 태환 약속을 깨고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경제학에서도 신비의 마술로 통한다.

이 기축통화제도에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트리핀의 딜레마다.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는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이 갈파한 이론이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달러화를 풀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해 달러화의 신뢰도가 하락하고, 또 미국이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면 국제 무역과 자본 거래 감소로 인해 세계경제가 위축되어 미국이 경상수지의 흑자와 적자 중 어느 방향도 경제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기축통화국이 겪게 되는 국제수지 불균형과 화폐 신용도 사이의 모순된 상황을 의미한다. 기축통화 유지를 위해 달러를 많이 풀어야 하지만, 많이 풀면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트리핀의 딜레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달러 패권을 더 강하게 유지하면서 그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적자를 힘으로 만회해 보자는 전략이다. 트리핀의 딜레마를 관세로 뛰어넘겠다는 놀라운, 아니 무서운 구상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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