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영국 파운드화, 스위스 프랑 등 주요 통화 대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일본 정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초완화적 통화정책 유지로 엔화 약세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정부의 시장 개입 효과도 미미한 상황이다.
20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이날 158엔까지 치솟으며 약세를 이어갔다. BOJ가 지난주 금융정책회의에서 최소 7월까지 국채 매입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더욱 벌어진 것이 엔화 약세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4월 29일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돌파했을 때처럼 일본 정부가 추가 개입에 나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BOJ는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9조7000억 엔(약 85조 원) 규모의 엔화 매수 개입을 단행했지만, 엔화 약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엔화는 일본 정부의 개입 가능성이 낮은 다른 통화에 대해서는 더욱 약세를 보이고 있다. 19일 엔/스위스 프랑 환율은 178엔으로 1982년 이후 최저치를, 엔/파운드 환율은 201엔으로 1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엔/뉴질랜드 달러, 엔/호주 달러 환율도 각각 17년, 11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엔/유로 환율은 일본 정부의 개입 이후 잠시 반등했지만, 다시 약세로 돌아서 169엔까지 상승했다. 엔화 약세는 신흥국 통화에도 영향을 미쳐 엔/랜드 환율은 2년 만에 최저치인 8랜드를 기록했고, 엔/위안, 엔/바트 환율도 연중 최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금리로 엔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BOJ의 완화적 통화정책 유지로 엔 캐리 트레이드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11월 미국 대선 등 정치적 리스크가 엔화 약세 추세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당분간 엔화 약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