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인크래프트'와 더불어 이른바 '3대 원조 메타버스'로 꼽히는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가 크리에이터 기반 메타버스 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보다 직접적으로 경쟁할 전망이다.
포트나이트 개발사 에픽게임즈는 최근 '개방형 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이란 비전 아래 게임 내 이용자 창작 서비스 '포크리'와 사측의 3D 개발 엔진 '언리얼 엔진'을 연동하는 '언리얼 에디터 포 포트나이트(UEFN)'의 베타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와 더불어 포트나이트 전체 수익의 40%를 UEFN 크리에이터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크리에이터 경제 2.0'도 함께 발표했다.
에픽게임즈는 UEFN을 위해 파트너사들의 에셋 마켓 플레이스를 통합은 '팹(FAB)', 보다 쉽게 익힐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 '벌스(Verse)' 등을 제공한다. 또 클라우드 서버를 바탕으로 포트나이트와 언리얼 엔진 개발을 실시간으로 연결, 손쉬운 게임 테스트와 더불어 원격 협업까지 손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UEFN에 대한 일반 대중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포트나이트' 공식 유튜브에 공개된 베타 테스트 개시 안내 영상은 3주만에 1000만 조회수를 돌파했다.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게임 시장 전체의 판도가 바뀔 것", "앞으로의 변화가 정말 기대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국내에서도 UEFN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에픽 게임즈가 UEFN을 발표한 직후 자사 게임 노트북 '오디세이' 시리즈를 홍보하기 위한 포트나이트 월드 '오디세이 유니버스'를 공개했다. 한 국내 게임 개발자는 "인디 개발자들 사이에서 이미 UEFN 프로젝트 팀이 여럿 꾸려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전문지 배런스는 "메타 플랫폼스가 주춤하는 메타버스 시장에서 에픽 게임즈는 XR(확장현실) 시장 진출을 앞둔 애플과 더불어 최후의 승자에 가까워졌다"고 보도했다. 게임 전문지 폴리곤은 "UEFN을 통해 에픽게임즈가 보다 직접적으로 로블록스와의 경쟁에 나섰다"고 평했다.
로블록스가 UEFN의 직접적 경쟁 상대로 꼽히는 이유는 현금 환전이 가능한 게임머니 '로벅스'를 기반으로 한 이용자 창작 게임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UEFN의 출시 소식에 로블록스는 직접적 대응에 나서진 않고 있다.
실제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의 주가 추이를 보면 UEFN이 발표된 3월 20일부터 최근까지 주가에 유의미한 변동이 일어나진 않았다. 일반 투자자들은 UEFN의 출시를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반응이 미지근한 이유는 이용자 수 면에서 포트나이트가 로블록스에 비해 '도전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로블록스 측은 올 2월 연간 실적을 발표하며 지난해 게임의 평균 일일활성이용자(DAU)가 5880만명이었다고 밝혔다.
박성철 에픽게임즈 코리아 대표는 최근 간담회에서 포트나이트의 이용자가 5억명이며 약 40%가 포크리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가 말한 5억명은 누적 가입자 수다. 에픽게임즈는 비상장사로 관련 자료를 정례적으로 공개하고 있진 않으며, 애플과의 소송전이 진행되던 2020년 8월 공개한 포트나이트의 DAU는 2500만명으로 로블록스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국내 시장에 한정해 보면 적은 이용자 저변 또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앱 통계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로블록스는 올 2월 기준 모바일 환경에서만 172만명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MAU)를 기록했다. 반면 포트나이트의 경우 개발자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은 언리얼 엔진보다도 저변이 좁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에픽게임즈는 저변 확대를 위한 키워드로 앞서 언급한 프로그래밍 언어 '벌스'를 이후 오픈소스로 공개할 것을 약속하는 등 개방성을 내세웠다. 또 UEFN을 자체 마켓플레이스 에픽게임즈 스토어(EGS)와 연동할 때 12% 매출 수수료 정책을 유지한다면, 로벅스 현금 환금 수수료로 구매가 대비 65%를 거둬가고 있는 로블록스에 비해 강력한 차별화가 가능할 전망이다.
로블록스 기반 게임 퍼블리셔사 게임팸의 조 페렌츠 대표는 "로블록스 내 한 게임의 평균 플레이 시간은 불과 25분"이라며 "이러한 이용자 특징을 무시한 게임들은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술과 이용자 저변 특성 상 휘발성이 강한 캐주얼 게임에 특화돼있으며 '대작 게임'이 탄생하기 힘든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간담회에서 UEFN의 국내 인지도에 관해 묻자 박성철 대표는 해외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선례로 제시했다. 그는 "국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유행한 후 국내로 역수출되는 양상을 보였다"며 "한국의 재능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글로벌 히트작을 선보이면, 자연히 UEFN도 저변이 넓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도 게임 기반 크리에이터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적지 않다. 2000년대 이전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부터 이용자 창작 콘텐츠 '유즈맵 세팅'이 활발하게 이용됐다. 네이버의 '제페토'나 크래프톤과 합작 개발 중인 '미글루',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월드', 넷마블의 '그랜드크로스: 메타월드' 등 이러한 생태계를 노리는 '메타버스 서비스'들도 적지 않다.
IT매체 더 버지는 '펍지: 배틀그라운드'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원류 게임으로 꼽히는 '도타(DOTA)' 등이 게임 기반 2차 창작물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점을 들어 "기업이 아닌 다수의 일반 개발자들이 개발한 콘텐츠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이 업계의 필수요소였다"고 평했다.
이어 "로블록스는 그 특성상 대다수 개발자들에게 지속 가능한, 장기적 성공을 담보하기 어려운 플랫폼인 반면 포트나이트는 아직 기회를 갖고 있다"며 "에픽게임즈가 로블록스나 스팀, 나아가 앱 스토어를 운영하는 빅테크들과도 경쟁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