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가 계절을 잊었다. 출시는 앞당기고 디자인은 계절 구분이 사라졌다. 이제는 계절 따라, 유행 따라가 아닌 제 몸에 꼭 맞는 상품을 언제나 찾을 수 있게 됐다.
옷은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패션 브랜드들은 계절의 변화에 맞춰 제품을 출시하고 판매해 왔다. 계절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의 신상품을 출시하고, 이월 상품을 할인하는 시즌오프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전통'이 깨지는 추세다.
최근 패션 업계의 가장 큰 특징은 시즌 컬렉션 출시 시기가 최소 2주에서 한 달가량 앞당겨진 점이다. 통상 가을·겨울(F·W) 시즌 의류는 8월 말에서 9월 초에 출시된다. 그러나 올해는 출시 시기가 앞당겨져 7월 말부터 8월 초에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을 선보이는 브랜드가 늘어났다.
유아동 전문기업 제로투세븐의 패션 브랜드 알로앤루·알퐁소는 7월 말 가을·겨울 컬렉션을 출시했다. 봄·여름 시즌에 여름 의류 판매 시기가 2주 이상 빨라지는 등 소비자들이 의류를 사는 시기가 더욱 앞당겨진 것을 고려한 것이다. 특히 유아동 의류업계는 실내복 수요가 여전히 커, 실내복부터 이너 웨어, 니트 웨어 등을 발 빠르게 선보였다.
여성복에서는 홈쇼핑 패션 브랜드도 CJ오쇼핑은 11일부터 재킷과 코트 등을 판매했으며, 롯데홈쇼핑도 15일부터 가을·겨울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제로투세븐 관계자는 "이번 시즌에는 가을·겨울 신제품을 앞당겨 출시하는 패션 브랜드들이 늘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관심도 증가하는 추세다"면서 "브랜드는 시장을 선점하고 고객의 반응을 미리 확인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은 여름 시즌과는 다른 분위기의 패션으로 기분을 전환하는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아예 계절 구분을 없앤 브랜드도 눈길을 끈다. 사계절 구분 없이 입을 수 있는 '시즌리스' 디자인으로 지속 가능 패션을 추구하기도 한다. 몇 번 입고 버리는 패스트 패션이 환경오염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오자 슬로우 패션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 구찌는 기존 신제품 출시 시스템을 버리고 시즌리스 패션 방식으로 신제품을 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프리폴(초가을), 봄·여름, 가을·겨울, 리조트 룩 등 매년 계절에 맞춰 5번에 걸쳐 발표했던 신제품 출시 방식을 앞으로는 2번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구찌의 시즌리스 출시 발표는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생존법을 고민하는 패션업계에 큰 방향을 불러왔다. 구찌는 명품 패션업계에서도 세대를 아우르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이 '텐먼스(10MONTH)'를 론칭하며 시즌리스 콘셉트에 반응했다. 브랜드 이름인 텐먼스는 유행을 타는 옷이 아니라, 10개월 동안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계절을 타는 옷은 조금씩 때에 맞춰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패스트 패션에 질린 소비자는 텐먼스의 철학에 반응했다. 론칭 일주일 만에 두 달 치 물량을 모두 판매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텐먼스 관계자는 "브랜드 기획 당시 한 시즌 입고 버리는 옷이 아닌 오래 입어도 질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옷을 만들자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러한 철학이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기본에 충실한 제품을 개발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