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요즘 대학가와 번화가에는 카페만큼이나 타로와 사주를 보는 곳이 많다. 과거에는 점(占)집에 들어갈 때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지만, 이제 타로는 친구나 연인과 함께 즐기는 문화가 되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에게 연애운이나 취업운을 묻고 자신의 사주를 해석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낯설지 않다. 현진건의 표현을 빌리면 오늘날은 ‘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 ‘타로 권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듯하다.
물론 점은 오늘날 갑자기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인류는 기록된 역사가 시작된 이래 다양한 방법으로 점을 쳐왔다. 별의 움직임을 살피고, 동물의 뼈와 내장을 관찰했으며, 꿈과 자연현상을 해석하고 제비를 뽑아 신의 뜻과 미래를 알아내려 했다. 방법은 달랐지만 그 밑에 놓인 마음은 같았다. 앞날을 알 수 없다는 불안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동물도 다가올 위험을 감지하고 먹이를 저장하며 가까운 미래에 대비한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먼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내일의 실패뿐 아니라 몇십 년 뒤의 노후와 죽음까지 생각하고, 자신뿐 아니라 자녀가 살아갈 세상도 염려한다.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은 인간에게 계획하고 준비할 힘을 주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미리 고통받게 만들기도 했다. 인간은 미래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발전했고, 바로 그 능력 때문에 불안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를 그냥 기다리지 않고 미리 알고 싶어 했다. 예전에도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고,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읽었고, 오늘날에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사주나 타로를 찾는다. 그렇다고 그 내용대로 삶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모두 굳게 믿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고 “잘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잠시나마 안심하고 싶은 것이다. 점은 미래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수단이라기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달래기 위해 인간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심리적 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요즘 청년들이 타로를 찾는 현상을 단순히 미신적 성향이나 나약함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타로가 유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미래가 불확실하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취업·결혼·주거·인간관계 어느 것 하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만큼 보상받는다는 믿음도 약해졌다. 선택은 해야 하지만 어떤 선택이 옳은지 확신하기 어렵다. 이럴 때 타로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타로의 장점은 문턱이 낮다는 것이다. 상담센터를 찾아가는 데에는 “내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부담이 따르지만 타로집은 놀이처럼 들어갈 수 있다. 상담을 받으려면 예약하고 기다려야 하지만 타로는 대개 즉시 이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타로 상담자는 먼저 “무엇이 궁금하세요?”라고 묻는다. 청년들은 카드를 사이에 두고 취업에 대한 두려움, 연인과의 갈등, 결혼에 대한 망설임을 자연스럽게 말한다. 카드가 얼마나 정확한가와 별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
타로 카드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투사적 매개가 되기도 한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이별을 떠올리고, 다른 사람은 새로운 출발을 떠올린다. 카드에 대한 반응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두려움과 욕구가 드러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타로가 가진 모든 기능을 미신이라고 일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불안하고 미래가 암담해도 우리의 삶은 몇 장의 카드에 맡길 만큼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삶에는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관계, 현실적 조건과 개인의 선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타로가 자기 마음을 살펴보는 계기를 넘어 미래를 예언하고 결정을 대신하는 권위가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올해는 이동운이 없다고 했다”, “그 사람과는 인연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선택의 책임을 카드에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불안을 줄이기 위해 찾았지만 나중에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점괘를 확인해야 안심하는 의존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타로보다 인공지능이 전통적인 상담의 더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언제든 이용할 수 있고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며, 아무리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싫증을 내지 않는다. 감정을 정리해 주고 우울과 불안의 원인을 설명하며, 대화법과 이완훈련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때로는 바쁜 상담자보다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답한다.
인공지능 상담의 장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일상적인 정서적 지지와 심리교육, 감정일지 작성, 생각 정리, 의사소통 연습 등은 인공지능이 상당 부분 담당할 수 있다. 전문상담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도움을 제공하고, 상담을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첫 번째 통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사용자가 입력한 말 안에서만 그 사람을 이해한다. 말하지 않은 사실과 숨겨진 위험까지 모두 알아차릴 수는 없다. 표정의 미묘한 변화와 길어진 침묵, 몸의 긴장, 말과 감정 사이의 불일치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럴듯하지만 틀린 해석을 자신 있게 제시할 수도 있다. 특히 자살과 자해, 학대, 중독, 심각한 우울과 외상처럼 위험성이 높은 문제에서는 잘못된 판단이 치명적일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정서적 의존,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타로와 인공지능, 전문상담의 차이는 같은 질문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면 분명해진다. 한 청년이 “올해 취업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타로는 “하반기에 좋은 기회가 들어온다”고 말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취업 준비 방법과 불안을 줄이는 요령을 정리해줄 수 있다. 그러나 상담자는 “취업이 되지 않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취업이 늦어지는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부모가 기대하는 일과 자신이 원하는 일은 얼마나 일치합니까?”라고 묻는다.
전문상담은 미래를 맞히거나 정답을 대신 내려주는 일이 아니다. 내담자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가면서 불확실성을 견디고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타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답하려 한다면 상담은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탐색한다.
미래를 생각하는 능력은 불안의 원인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만들어가는 힘이기도 하다. 불안을 이기는 근본적인 길은 미래를 미리 알아내는 데 있지 않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불확실한 삶을 견딜 힘을 발견하는 데 있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없던 힘을 새로 넣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불안과 상처에 가려진 자신의 힘을 발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 힘은 원래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좋은 상담을 받은 사람은 “상담자가 내 미래를 알려주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나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상담자가 대신 결정해 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타로나 인공지능이 쉽게 대신할 수 없는 상담의 가치다.
그러나 상담만 강조해서도 안 된다. 청년들이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마음이 약해서만이 아니다. 안정된 일자리를 얻기 어렵고, 집을 마련하거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평범한 삶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런 사회적 고통을 개인의 불안이나 자신감 부족으로만 설명한다면 상담도 불합리한 현실에 개인을 적응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마음이 현실을 견뎌야 하지만 현실도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술 권하는 사회가 술 취한 개인만을 비난해서 달라질 수 없었듯이, 타로에 기대는 청년만 나무라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잘 맞히는 사회가 아니라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사회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정직하게 노력하면 최소한의 삶을 꾸릴 수 있으며, 불안할 때 판단받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젊은이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점괘보다 언제든지 자신의 불안을 표현하고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관계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노력하면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사회다. 이제 우리는 “왜 젊은이들이 타로를 찾는가”라고 묻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왜 젊은이들이 타로에 기대지 않고는 미래를 견디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을 타로에 물으며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