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씨티·모건스탠리 600억달러 신디케이션 착수…브로드컴 보증 없는 180억달러가 투자심리 가늠
이미지 확대보기AI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확보를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빌리는 가운데 지금까지 논의 단계에 머물던 사상 최대 규모의 칩 금융이 본격적인 대출 신디케이션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특히 전체 600억달러 가운데 브로드컴의 신용 지원이 없는 180억달러(약 24조6000억원) 규모 후순위 부채는 투자자들이 앤스로픽 자체의 신용위험을 얼마나 받아들일지를 시험하는 지표가 될 전망이다.
6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모건스탠리는 앤스로픽이 구글 반도체를 임차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약정한 600억달러 규모 대출 가운데 일부를 다른 은행들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세 은행은 이번 거래의 공동 주간사로 이미 자금 제공을 약정한 상태다.
FT는 이번 거래가 “지금까지 이뤄진 반도체 금융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
◇600억달러 중 420억달러엔 브로드컴 지원
FT에 따르면 전체 금융 패키지는 위험도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420억달러(약 57조3000억원) 규모의 선순위 담보대출에는 브로드컴의 신용 지원이 붙는다.
브로드컴은 전체 위험을 떠안는 것이 아니라 일부 부채를 보증하는 방식으로 앤스로픽의 조달비용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브로드컴의 신용등급은 ‘A-’로 투자등급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420억달러 규모 선순위 대출은 향후 사모시장뿐 아니라 투자등급 채권시장 등 더 넓은 투자자층에 판매될 가능성도 있다고 FT는 전했다.
이번 자금은 앤스로픽이 내년 중 공급받을 반도체 주문에 사용된다.
앤스로픽은 칩을 직접 소유하기보다 임차해 사용하고 실제 칩이 인도된 뒤 리스료 지급을 시작한다.
브로드컴은 구글과 함께 텐서처리장치(TPU)를 개발하고 있다. 구글과 브로드컴은 엔비디아가 지배하고 있는 AI 연산용 반도체 시장에서 대안을 확대하고 있다.
◇나머지 180억달러는 ‘앤스로픽 신용’으로 승부
시장 참가자들이 더 주목하는 부분은 나머지 180억달러다.
이 후순위 부채에는 브로드컴의 보증이 없다.
대출기관들이 앤스로픽의 사업과 상환능력에 직접 노출되는 구조다.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은 이 가운데 약 90억달러(약 12조3000억원)를 이미 투자하기로 했으며 나머지 물량의 신디케이션에도 참여한다.
그러나 다른 은행과 투자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FT는 일부 은행이 앤스로픽의 기업공개(IPO)가 이뤄질 때까지 후순위 대출의 시장 판매를 늦추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앤스로픽이 상장하면 실적과 현금흐름 등 재무정보가 보다 상세하게 공개돼 투자자들이 신용위험을 평가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180억달러 후순위 부채가 어떤 조건과 금리로 소화되느냐가 AI 산업에 대한 채권시장의 위험선호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AI 호황, 주식 투자 넘어 ‘부채시장’으로
그동안 AI 투자 열풍은 주로 엔비디아 등 반도체 기업 주가나 오픈AI, 앤스로픽 같은 비상장 기업의 기업가치 상승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 규모가 급증하면서 이제는 채권과 대출시장에서도 AI가 거대한 자금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AI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건설뿐 아니라 고성능 반도체를 확보하는 데도 수백억달러씩 필요하다.
FT는 이번 600억달러 거래를 AI 부채에 대한 투자자 수요를 가늠할 대표적 거래로 평가했다.
최근 투자자들은 AI 관련 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 이전보다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다.
AI 기업들이 수조달러 규모의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막대한 투자액이 장기적으로 충분한 수익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AI 산업의 경쟁이 기술과 칩 확보에서 이를 감당할 금융능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수개월 전 350억달러 이어 또 600억달러
이번 거래는 브로드컴이 AI 칩 금융에 처음 나선 사례도 아니다.
브로드컴은 불과 몇 달 전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블랙스톤과 함께 약 350억달러(약 47조8000억원) 규모의 금융 거래를 성사시켰다.
당시에도 앤스로픽 등이 AI 컴퓨팅 능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대규모 자금을 제공하는 구조가 사용됐다.
이후 브로드컴은 20기가와트(GW) 규모의 ‘AI XPV’ 플랫폼을 공개하면서 앤스로픽, 오픈AI 등 대형 AI 기업이 막대한 컴퓨팅 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금융과 반도체 공급을 결합하는 전략을 확대했다.
브로드컴 입장에서는 고객이 자사와 구글이 개발한 칩을 대규모로 임차할 수 있도록 자금조달까지 지원하면 장기간 안정적인 반도체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
앤스로픽은 한꺼번에 수백억달러를 지출하지 않고도 필요한 AI 연산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 공급업체가 고객의 자금조달까지 지원하는 구조가 커질수록 AI 산업 내부에서 공급자와 고객, 금융기관의 위험이 서로 연결되는 정도도 커진다.
◇420억달러 전환증권 가능성까지
앤스로픽과 브로드컴의 금융 관계는 대출 패키지에만 그치지 않는다.
브로드컴의 최근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앤스로픽은 반도체 임차료 지급을 위해 브로드컴에 최대 420억달러(약 57조3000억원) 규모의 전환형 채무증권을 발행할 수도 있다.
투자자들에게 제시된 거래 조건에도 이 같은 방식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구조가 실행되면 브로드컴은 칩 공급업체이면서 대출 보증 제공자, 동시에 앤스로픽의 채권자가 될 수 있다.
앤스로픽 입장에서는 대규모 현금을 즉시 투입하지 않고 미래 지급의무를 활용해 AI 인프라를 빠르게 확대할 수 있다.
반대로 AI 사업의 수익성이 예상보다 늦게 개선될 경우 막대한 리스료와 부채 상환 부담이 동시에 커질 위험도 있다.
◇사상 최대 AI 칩 부채, 이제 시장이 가격 매긴다
이번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금액 자체보다 자금조달이 ‘계획’에서 실제 시장 판매 단계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브로드컴이 지원하는 선순위 부채는 높은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비교적 폭넓은 투자자층에 판매할 수 있다.
그러나 브로드컴 보증이 없는 180억달러 후순위 부채는 앤스로픽의 성장성과 미래 현금흐름을 투자자가 직접 평가해야 한다.
AI 서비스 수요가 계속 빠르게 증가한다면 높은 이자수익을 제공하는 대규모 AI 부채에 투자자들이 몰릴 수 있다.
반대로 막대한 설비투자와 리스 계약이 향후 수익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 투자자들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거나 금융 제공 규모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
FT는 최근 AI 관련 대출에 대한 투자자들의 위험 프리미엄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이번 600억달러 금융이 AI 부채시장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수조달러의 AI 설비투자 경쟁을 뒷받침해온 월가가 이제 사상 최대 규모의 칩 금융을 실제 투자자들에게 넘기기 시작하면서 AI 투자 열풍의 다음 시험장은 주식시장이 아니라 부채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