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물 국채금리 5% 육박·獨과 격차 1.5%p 넘어…“ECB 아닌 재정개혁이 안전망”
이미지 확대보기유로존 2위 경제대국인 프랑스가 재정적자를 줄이지 못할 경우 치솟는 국채금리로 재정 운용의 여지가 갈수록 좁아질 수 있다는 경고가 프랑스 중앙은행 수장에게서 나왔다.
에마뉘엘 물랭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의 프랑스 국채시장 움직임을 “심각하고 우려스럽다”고 평가하면서 재정건전성 회복에 실패하면 국가가 점차 ‘금리에 목 졸리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5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물랭 총재는 이날 프랑스가 지출을 줄이고 재정적자를 축소하는 예산안을 통과시킨다면 투자자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며 의회에 재정개혁을 촉구했다.
그는 “프랑스는 유로존 위기 당시의 그리스가 아니다”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금리 상승에 점차 목 졸릴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운명은 우리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10년물 5% 육박…G7서 가장 가파르게 올라
프랑스의 재정 불안은 이미 국채시장에 직접 반영되고 있다.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 2일 장중 5%에 근접했고 지난 4일에는 4.86%로 소폭 내려왔다.
프랑스 국채와 유로존의 대표적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의 10년물 금리차도 최근 한때 1.5%포인트를 넘어섰다.
이 격차는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를 독일 국채보다 얼마나 위험하게 평가하는지를 나타내는 주요 지표다.
FT는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주요 7개국(G7) 가운데 프랑스 국채금리가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 가운데 정부가 재정적자를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적 불확실성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다.
글로벌 국채시장 전체도 압박받고 있다.
이란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다시 뛰면서 미국과 유럽 국채금리가 동반 상승했고 각국 정부와 기업의 대규모 채권 발행도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높은 재정적자와 정치적 교착까지 겹치면서 다른 주요국보다 더 큰 매도 압력을 받고 있다.
◇ 재정적자 GDP 5.4%…430억유로 긴축안
프랑스 정부는 재정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난주 지출 삭감과 증세를 합쳐 430억유로(약 66조2000억원) 규모의 재정개선 방안을 담은 예산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올해 말 GDP의 5.4%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가 의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예산안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야당은 연금액을 물가 상승률에 맞춰 자동 인상하는 제도를 제한하고 공무원 임금을 일부 동결하는 등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재정적자 감축 계획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예산안 통과로 실행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물랭 총재의 판단이다.
그는 정부가 지출을 줄이고 적자를 축소하는 예산안을 통과시킨다면 “구체적인 재정건전화 조치”로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 “ECB 얘기할 때 아니다…안전망은 프랑스 안에”
프랑스 국채금리 급등으로 금융시장에서는 ECB가 개입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특정 유로존 국가의 국채금리가 지나치게 상승하면 회원국 간 금융 여건이 크게 벌어지는 이른바 ‘분절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의 국채금리 격차가 확대되면서 ECB가 이를 억제하기 위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놓고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물랭 총재는 지금은 ECB 개입을 논의할 시점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안전망은 훨씬 가까운 곳에 있다”며 프랑스 국민과 선출된 정치인들이 공공재정을 복구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외부 지원이나 중앙은행 개입에 기대기 전에 프랑스 스스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다.
◇ 고유가에 ECB도 두 차례 금리 인상
프랑스가 재정긴축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강해지면서 ECB는 최근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미 연방준비제도도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ECB와 연준 모두 이달 말 다시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금리가 더 오르면 프랑스 정부의 국채 차환 비용도 커진다.
국채는 만기가 돌아올 때 새로운 채권을 발행해 갚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장금리가 높은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기존 저금리 부채가 점차 고금리 부채로 바뀌면서 정부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해야 하는 신규 국채의 이자 비용도 동시에 높아진다.
물랭 총재가 ‘금리에 목 졸릴 위험’을 경고한 배경이다.
다만 그는 장기금리 상승과 금융여건 긴축, 두 번째 에너지 충격이 경제 수요를 약화할 경우 중앙은행들이 추가로 금리를 올릴 필요성은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 ‘그리스는 아니다’…그러나 시장 신뢰 회복이 관건
물랭 총재는 현재 프랑스 상황을 유로존 재정위기 당시 그리스와 동일시하는 데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프랑스 경제의 규모와 자금조달 능력, 금융시장 기반 등을 감안하면 당시 그리스와 같은 위기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신뢰가 계속 약화하면 높은 금리가 재정적자를 더욱 악화시키고 악화한 재정이 다시 금리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은 경계했다.
프랑스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10년물 국채금리가 5%에 접근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재정적자가 큰 상황에서 금리까지 높아지면 이자비용 증가로 정부가 다른 정책에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줄고 이를 막기 위해 더 큰 지출 삭감이나 증세가 필요해질 수 있다.
FT는 최근 채권시장 움직임이 프랑스 정부에 재정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있는지를 투자자들이 시험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물랭 총재의 경고도 결국 시장 불안을 ECB가 해결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프랑스가 먼저 재정적자를 줄여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