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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27조원 그록 거래, 주주 소송 휘말려

전직 엔지니어 2명, 그록 이사회 상대 소송…‘라이선스+인재 영입’ AI 우회 인수 관행 시험대
엔비디아의 ‘그록 3’ 칩이 지난 3월 17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행사장에 전시돼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엔비디아의 ‘그록 3’ 칩이 지난 3월 17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행사장에 전시돼 있다. 사진=로이터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그록(Groq)의 기술과 핵심 인력을 확보한 200억달러(약 27조2880억원) 규모 거래가 주주 소송에 휘말렸다.

정식 기업 인수가 아니라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뒤 핵심 인력을 대거 채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거래가 일부 주주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미 법무부가 이미 이 거래가 반독점 심사를 우회하기 위한 ‘사실상 인수’였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거래구조가 기존 주주에게 공정했는지를 놓고 법적 분쟁까지 시작됐다.

5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그록의 전직 엔지니어이자 주주인 벤저민 세레브린과 조슈아 루빈은 지난 2일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그록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은 그록 이사회가 지난해 엔비디아와 거래하면서 회사의 핵심 기술과 주요 인력을 넘기고도 전체 주주에게 최선의 가격과 거래구조를 확보해야 할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70억달러 라이선스+30억달러 인력 보너스

논란의 중심에는 거래의 독특한 구조가 있다.

엔비디아와 그록은 지난해 12월 24일 그록의 AI 추론 기술에 대한 ‘비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록 법인 자체를 인수한 것은 아니며 회사도 독립기업으로 계속 운영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FT에 따르면 전체 200억달러 가운데 170억달러(약 23조1948억원)는 기술 라이선스 대금으로 지급돼 그록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이와 별도로 엔비디아로 옮긴 일부 엔지니어를 위해 약 30억달러(약 4조932억원) 규모의 엔비디아 주식 보너스가 마련됐다.

여기에는 그록 창업자이자 이사인 조너선 로스도 포함됐다.

로스는 구글 재직 당시 텐서처리장치(TPU) 개발에 핵심적으로 참여한 인물로 이후 그록을 창업해 AI 추론에 특화한 언어처리장치(LPU)를 개발했다.

소송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거래와 동시에 그록 엔지니어 ‘거의 전부’를 영입했으며 그 규모는 최대 약 200명에 달한다.

원고들은 이 때문에 겉으로는 그록이 독립기업으로 남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핵심 기술과 이를 개발한 인력이 엔비디아로 넘어갔다고 주장한다.

◇“일반주주는 싸게 정리하고 핵심 인력은 별도 보상”

이번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200억달러라는 거래 총액 자체보다 이 돈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돌아갔느냐다.

원고 측은 그록의 일반주주들이 낮은 가격에 지분을 정리하도록 요구받은 반면 로스 등 엔비디아로 이동한 핵심 인력들은 주식 매각 대금 외에 별도의 엔비디아 주식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그록 이사회가 이해상충 상태에서 거래를 추진했고 모든 주주를 위해 가장 유리한 가격과 구조를 확보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일부 주주는 거래에 대해 표결할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이 원고 측 주장이다.

원고 측 변호인들은 소장에서 그록의 가치 있는 기술과 이를 개발한 엔지니어들이 엔비디아로 넘어갔지만 그에 따른 수십억달러 규모의 혜택이 다른 그록 주주들과 공정하게 공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아직 법원의 판단을 받은 사실이 아니라 원고 측의 소송 주장이다.

◇‘인수 아닌 인수’…AI 업계 확산한 어콰이어

엔비디아·그록 거래가 주목되는 이유는 최근 미국 기술업계에서 확산한 이른바 ‘어콰이어(acqui-hire)’ 거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대신 핵심 기술에 대한 라이선스를 확보하고 이를 개발한 주요 인력을 채용하는 방식이다.

정식 인수합병에 비해 신속하게 기술과 인재를 확보할 수 있고 기업 자체는 독립 법인으로 남는다.

엔비디아도 그록 거래 당시 지분이나 고객 계약, 기존 제품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LPU 기술에 대한 비독점적 라이선스를 확보하고 특정 직원을 채용하는 거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고들은 형식보다 실질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심 기술과 이를 개발한 인력 대부분이 한꺼번에 다른 회사로 이동했다면 사실상 기업 인수와 다를 바 없으며 주주 보호를 위한 기존 M&A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FT에 따르면 원고 측도 이 같은 어콰이어 거래에 기존 기업 인수 관련 법리를 직접 적용한 델라웨어주 판례는 아직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소송 결과는 AI 업계에서 빠르게 확산한 ‘라이선스+인재 영입’ 방식의 거래를 법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지에 선례가 될 가능성이 있다.

◇남은 그록 몸값 4조8000억원…“미래가치 빠졌다” 주장

엔비디아와의 거래 이후에도 그록은 법인으로 존속했다.

핵심 반도체 개발 인력 상당수가 엔비디아로 이동한 뒤 그록은 AI 추론 클라우드 사업에 무게를 두고 사업을 재편했다.

그록은 지난 8월 3억5000만달러(약 4775억원)의 신규 투자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 35억달러(약 4조7754억원)로 평가받았다.

엔비디아도 이 투자 라운드에 참여할 계획을 밝혔다.

원고들은 이 같은 후속 기업가치가 당시 일반주주들이 지분을 정리할 때 적용받았던 가치보다 높다는 점도 문제 삼고 있다.

엔비디아와 그록 기술을 결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미래 성장 가능성과 시너지 효과가 일반주주에게 지급된 금액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록은 엔비디아와의 거래 전인 지난해 중반 투자 유치에서 기업가치를 69억달러로 평가받은 바 있다.

◇주주 소송에 반독점 조사까지…거래구조 ‘이중 시험대’

이번 주주 소송은 엔비디아·그록 거래를 둘러싼 법적 문제의 한 축이다.

별도로 미 법무부는 이 거래가 정식 기업결합 심사를 피하기 위한 방식으로 설계됐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는 지난달 미 법무부가 지난해 12월 거래 발표 직후부터 관련 자료를 요구하며 엔비디아·그록 거래를 조사해왔다고 보도했다.

미 당국의 관심은 엔비디아가 그록의 지분을 인수하지 않으면서도 기술과 핵심 인력을 확보한 구조가 반독점법상 기업결합 심사를 우회하기 위한 것이었는지에 맞춰져 있다.

이번 델라웨어 소송의 쟁점은 다르다.

반독점 당국이 시장 경쟁과 기업결합 심사 회피 여부를 보는 반면 전직 그록 엔지니어들이 제기한 소송은 이사회가 기존 주주를 공정하게 대우했는지를 따진다.

하나의 거래가 반독점 규제와 기업 지배구조라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검증받게 된 셈이다.

◇엔비디아는 이미 그록 기술 제품화

법적 논란과 별개로 엔비디아의 그록 기술 활용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3월 그록 기술을 기반으로 한 첫 제품을 공개했고 지난 8월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그록이 개발한 LPU는 AI 모델의 학습보다 실제 사용 단계인 추론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특화한 반도체다.

엔비디아는 자사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그록의 LPU 기술을 결합해 AI 추론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200억달러 규모 거래는 엔비디아가 그록의 법인 지분을 사들이지 않고도 경쟁력 있는 AI 칩 기술과 핵심 엔지니어를 한꺼번에 확보했다는 점에서 당시부터 주목받았다.

그러나 바로 그 거래구조가 이제 법적 위험의 원인이 되고 있다.

FT는 이번 소송이 전통적인 기업 인수와 기술 라이선스·인재 영입의 경계가 갈수록 흐려지는 AI 업계에서 기업 이사회가 주주들에게 어떤 의무를 부담하는지를 시험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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