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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HBM이 모든 D램 빨아들였다"…AI 붐에 스마트폰·PC '가격 도미노'

삼성·SK, HBM '올인' 전략…압도적 수익성 이면의 '범용 D램 리스크' 부상
D램 폭등에 DS는 '환호', DX는 '비명'…갤S26 원가 압박, '삼성의 딜레마'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전 세계를 강타한 인공지능(AI) 붐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생산 비용을 밀어 올리는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메모리 공급사들이 AI 가속기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에 집중하면서 PC와 모바일 기기용 D램(DRAM) 공급량이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 기업들이 HBM 생산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PC·모바일 D램 생산량을 꾸준히 감축하면서, 중국의 저가 스마트폰 브랜드를 포함한 아시아 전역의 기기 제조사들은 가격 인상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D램 가격 폭등세는 시장 데이터를 통해 명확히 확인된다. 14일(현지시각)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와 국내외 보도를 종합하면, 한국의 가격 비교 사이트 다나와 기준 PC용 DDR4 가격은 2025년 6월 이후 두 배 이상 급등했다. 삼성전자의 'DDR4-3200 8GB' 모듈은 6월 1만7600원에서 현재 5만8900원으로 234% 폭등했다.

차세대 D램인 DDR5 가격은 상승 폭이 더욱 가파르다. 삼성 'DDR5-5600 16GB' 모듈은 6월 6만9400원에서 21만7000원으로 213% 치솟았다. D램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업계에서는 "오늘의 가격이 가장 싼 가격"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중국 현물 시장 역시 비슷한 압박에 직면해 있으며, 공급 부족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 선전 화창베이(華强北) 지구의 보급형 DDR4 가격은 두 배 이상 뛰었다. 16GB DDR4 모듈은 지난달 약 200위안(약 28달러)에서 520위안까지 올랐다. 중국 전자 산업의 핵심 바로미터로 통하는 화창베이는 장기 계약 가격보다 시장 변화를 더 민감하게 반영한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DR4 8Gb(1Gx8 2133MHz)의 평균 계약 가격은 7달러를 기록하며 7개월 연속 상승했다. 2024년 10월 1.7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311.8%나 폭증한 수치다. D램 계약 가격이 7달러를 넘어선 것은 2018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HBM '올인' 전략…'달콤한 수익'과 '점유율 리스크'


구형 D램에서 시작된 가격 압박은 DDR5 및 LPDDR5 등 D램 라인업 전체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공급사들이 HBM에 자원을 집중하면서 전통적인 D램 공급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업계가 이처럼 HBM에 '올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압도적인 수익성 때문이다. HBM은 일반 D램 대비 5배에서 많게는 10배에 달하는 수익성을 보장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AI 서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D램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HBM을 한 개 더 생산하는 것이 기업 이익 극대화에 훨씬 유리한 구조가 됐다.

시장에 '패닉 바잉(공포 구매)' 현상이 확산하자 D램 공급사들은 2025년 DDR5 가격 협상 일정을 연기하는 등 '판매자 우위' 시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협상을 일시 중단했으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도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협상을 미루고 있다. 안희정 중국전문가포럼(CSF) 전문위원은 "D램 시장이 명백한 판매자 우위 환경으로 전환되면서 협상이 이달 중순으로 연기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전략적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수반한다. 30년 가까이 메모리 시장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PC 및 모바일 D램 생산라인을 HBM으로 전환하면서, 범용 D램 시장의 주도권을 경쟁사에 내줄 위험이 상존한다. 당장의 막대한 이익에 집중하느라 장기적인 시장 점유율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이크론은 물론, 중국 CXMT 같은 후발 주자들이 이 틈을 파고들 경우, AI 붐 이후 시장 재편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의 딜레마…D램 폭등에 엇갈린 DS와 DX


D램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스마트폰 부문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제조사들은 투입 비용(Input costs) 상승에 직면했으며, '가성비'를 중시하던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조차 가격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 상황은 특히 삼성전자에게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D램 가격 폭등은 동일한 현상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내부 사업부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부품을 담당하는 DS(반도체) 부문은 막대한 이익을 거두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천문학적인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반면, 스마트폰 완제품을 만드는 DX(디바이스경험) 부문은 심각한 원가 압박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다.

2026년 초 출시 예정인 삼성전자의 갤럭시 S26 시리즈는 이전 세대보다 공장 출고가가 20%가량 높게 책정될 가능성이 크다. 직전 모델인 갤럭시 S25 가격이 사실상 동결됐던 점을 고려하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실제 소매 가격 인상 폭은 더욱 클 수 있다.

삼성전자가 비용 관리를 위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조달 전략을 재편하는 것도 이러한 내부 모순과 무관하지 않다. 삼성 DX 부문은 2025년 상반기에만 모바일 AP 구매에 약 7조 8000억 원(53억 4000만 달러)을 지출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9.2% 증가한 수치다.

이 비용의 상당 부분은 DS 부문과의 '내부 거래'로 추정된다. 공급망 다변화와 원가 절감 차원에서 갤럭시 S26 일부 모델에 시스템 LSI 사업부가 개발하고 파운드리 부문이 생산하는 자체 AP '엑시노스 2600' 탑재를 결정한 배경이다. DS의 이익이 DX의 비용으로 전가되는 구조적 모순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삼성전자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애플 역시 부품 비용 상승에 직면해 한국과 중국의 공급업체들을 상대로 더욱 공격적인 가격 경쟁을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2025년 아이폰 17 시리즈에서 이미 가격을 인상했으며, 2026년 아이폰 18 라인업에서는 가격 인상 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중국 현지 매체 '내셔널 비즈니스 데일리(National Business Daily)'에 따르면, 중국 DDR4 현물 시장의 급등세는 단기적인 재고 변동이 아닌 '구조적 부족'을 시사한다. 현물 가격과 계약 가격이 동반 상승하고, 패닉 바잉이 구형 D램에서 DDR5, LPDDR5로 번지면서 장기적인 공급 불균형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서버, 고성능 스마트폰, 엣지-AI 기기 수요에 힘입어 D램 수요 증가율이 2024년 10% 후반대에서 2025년 20%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AI 모델이 더 높은 밀도의 메모리를 요구함에 따라 공급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김형준 서울대 교수는 "AI가 주도하는 HBM으로의 전환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피지컬 AI 시스템과 온디바이스 AI가 확산하면서 D램 수요는 더욱 늘어날 수 있으며, 내년까지 이어질 슈퍼사이클 전망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시장의 동향을 종합해 보면, AI 수요가 D램 공급을 흡수하며 PC DDR4부터 DDR5, LPDDR5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서 부족 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이라는 '달콤한 과실'에 집중하는 동안, 전통적인 메모리 시장의 리스크와 내부 사업부 간의 갈등이라는 복합적인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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