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차기 총리로 유력한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가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완화적 통화정책을 예고하면서 시장이 ‘아베노믹스 2.0’의 재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다카이치 총재는 이달 말 정식 취임을 앞두고 경기 둔화와 물가 압력, 그리고 대미 통상 부담이라는 삼중 과제 속에서 재정확대 중심의 성장전략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대규모 지출로 경기부양…국채 발행 급증 가능성
FT에 따르면 다카이치 신임 정부가 취임 직후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내년 상반기까지 경기 부양책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일본 재무성 관계자들은 20조 엔(약 255조6800억 원) 규모의 부양 패키지를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이치는 지난 선거 과정에서 “기업투자 활성화와 가계소득 지원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공공투자와 감세를 병행하는 복합형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이 경우 국채 발행이 다시 급증하면서 장기금리 상승과 엔화 약세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미즈호증권의 쇼키 오모리 수석전략가는 FT와 인터뷰에서 “재정 확장 신호가 명확해지면 30년물 일본국채(JGB)에 매도세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BOJ, 금리 동결 전망 우세…완화정책 유지 압박
다카이치가 일본은행(BOJ)에 완화정책 유지를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달 중 예정된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동결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는 지난해 BOJ의 금리 인상을 “성급했다”고 비판했으나 최근엔 “시장 불안을 피하기 위한 점진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다소 완화된 입장을 보였다.
FT는 “다카이치의 발언은 정치적 개입보다는 경기 방어에 초점을 맞춘 신호로 해석된다”며 “단기적으로 엔화 약세가 심화하더라도 완화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엔·달러 환율은 1달러당 약 153엔 수준으로 연초 대비 7% 이상 하락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다카이치 정부 출범 후 추가 재정지출과 금리 동결이 병행될 경우, 엔화가 160엔대까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 주식시장 호조세…“단기 랠리 후 변동성 확대”
다카이치 정책에 대한 시장의 초기 반응은 긍정적이다. 닛케이225지수는 최근 3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4만1000선을 돌파했고 일본 증시 시가총액은 8조 달러(약 1경880조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FT는 “정부 지출이 늘어나면 국채 금리 상승과 엔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 결국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단기화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 소재 대형 증권사 브로커는 “다카이치 트레이드는 단기적으로 주식에는 호재지만 외환과 채권시장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FT는 전했다.
◇ 수출 기업엔 호재, 내수엔 압박
엔화 약세는 수출 대기업에는 긍정적이지만 에너지·식품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내수 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닛산·도요타 등 주요 수출 기업의 영업이익이 1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식품·의약품 업체들은 원자재 수입단가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정부가 내수 보조금과 감세를 병행하지 않으면 실질 가계소득이 감소해 소비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 ‘아베노믹스 2.0’의 실험…지속 가능성은 불투명
다카이치의 정책 방향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의 ‘세 가지 화살(통화 완화·재정 확대·성장 전략)’을 계승하지만 물가가 이미 3%대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부양책의 지속 가능성은 의문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FT는 “다카이치가 단기 경기 부양과 장기 재정건전성 사이에서 시험대에 올랐다”며 “부양책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일본의 국가부채(국내총생산 대비 260%)가 한층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금융시장은 오는 10일 열릴 BOJ 회의와 다카이치 내각의 예산 발표 일정을 주시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부양책의 규모와 조달 방식을 통해 다카이치 경제정책의 현실성이 가늠될 것”이라며 “정책의 첫 발은 주가를 끌어올리겠지만 장기적으로 엔화 안정이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FT는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