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인사이츠 분석 결과, 中 반도체 자립의 현주소 드러나
제재 이전 비축 물량으로 생산…"연말 HBM 공급 병목 불가피" 전망
제재 이전 비축 물량으로 생산…"연말 HBM 공급 병목 불가피" 전망

반도체 분석 전문기관인 테크인사이츠는 3일(현지시각), 화웨이의 3세대 AI 프로세서 '어센드 910C'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밝혔다고 발표했다. 테크인사이츠는 여러 칩 샘플을 정밀 분해해, AI 연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로직 칩은 대만 TSMC가, 데이터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만든 HBM2E 제품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어센드 910C는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다빈치(DaVinci)' 아키텍처로 설계했으며, TSMC의 7나노 공정으로 생산한 반도체 다이(die) 2개를 하나의 칩으로 패키징했다. 이 칩은 32개 코어로 FP16(16비트 부동소수점) 연산에서 256테라플롭스(TFLOPS), INT8(8비트 정수) 연산에서는 512테라옵스(TOPS)의 높은 성능을 낸다. 또한 ARM 호환 CPU 코어 16개를 내장해 따로 호스트 프로세서 없이 시스템을 독립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이러한 발견이 주목받는 이유는 화웨이가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수년간 이어진 미국의 강력한 제재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를 수출 통제 명단(entity list)에 올려 사실상 미국 기술을 쓴 반도체, 부품, 장비의 공급을 막아왔다. 특히 AI 칩과 HBM은 중국의 군사 기술력 증강을 막기 위한 핵심 통제 품목이었다. 미국은 화웨이 칩을 판매하거나 사용하다 적발되면 수출 통제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까지 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첨단 AI 기술의 중국 유입을 막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美 봉쇄망 뚫은 '재고 비축' 전략
이번 분석 결과는 화웨이가 미국의 전방위 봉쇄망을 우회해 핵심 부품을 구했거나, 제재 이전에 비축한 재고에 의존해 생산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 분석기관 세미애널리시스는 화웨이가 제재 발효 전후로 상당량의 재고를 비축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화웨이는 '소프고(Sophgo)'라는 중개업체를 통해 TSMC 칩 다이 약 290만 개를 확보했으며, 이 물량으로 2025년 연말까지 어센드 910C 생산을 유지할 전망이다. 이 문제로 TSMC는 소프고와 계약을 끊고 미국 정부에 해당 사실을 알렸다.
부품 공급사로 지목받은 기업들은 즉각 선을 그으며 규제 준수를 강조했다. TSMC는 성명에서 "테크인사이츠가 이번에 분석한 칩은 2024년 10월에 분석했던 칩으로 보이며, 더 최신 기술로 만든 것이 아니다"라며 "해당 칩의 제조와 출하는 그 이전에 이미 멈췄다"고 밝혔다. 이어 "2020년 9월 중순 이후 화웨이에 어떤 제품도 공급하지 않았으며, 모든 수출 통제 규정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역시 "2020년 미국의 제재가 시작된 뒤 화웨이와 모든 거래를 공식으로 중단했다"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재고 소진 이후가 진짜 위기…HBM 국산화는 '아직'
화웨이는 제재 이전에 확보한 '실탄'으로 버티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 재고가 바닥난 다음이다. 특히 AI 성능을 좌우하는 HBM의 안정된 수급이 최대 관건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중국은 자체 AI 칩 설계 역량을 갖췄지만, 이를 구현할 첨단 공정 기술과 대량 생산 능력은 여전히 모자란다. HBM 국산화가 더뎌지면서 올해 연말부터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심각한 병목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의 제재를 뚫고 확보한 재고가 한동안 생산을 떠받치겠지만, 길게 보면 기술 자립과 부품 국산화 없이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