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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현대-LG 공사 현장 韓 기술자 "쇠사슬 찼을 때 알았다, 단순 검문 아니란 걸"

317명 중 316명 전세기 귀국…한국 사회 '분노와 환영' 교차
"범죄자 취급 충격"…"소주·삼겹살 그리웠다" 귀국 후 첫 소감
미국 조지아주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붙잡혔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 한국인 근로자들이 12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AP통신/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조지아주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붙잡혔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 한국인 근로자들이 12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AP통신/연합뉴스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붙잡혔던 우리 국민 317명 가운데 316명이 12일 전세기를 통해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왔다. 총기와 장갑차까지 동원한 강압적인 연행과 범죄자 취급에 가까운 구금 생활을 두고 충격과 분노, 무사 귀환에 대한 안도가 교차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사태는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에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구금됐다가 풀려난 LG에너지솔루션 소속 조영희(44) 기술자는 귀국 직후 "미 이민 당국이 들이닥쳤을 때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고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영문도 모른 채 총과 장갑차를 앞세운 요원들이 현장에 나타났지만, 한국어 통역사조차 없어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는 단순한 현장 점검일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은 곧 무참히 깨졌다. 조 씨는 "단순히 다른 곳으로 옮겨 추가 질문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수갑을 채우고 몸에 쇠사슬까지 묶었다"며 "그 순간 이것이 단순한 조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참담함과 공포가 밀려온 순간이었다.

그 시각, 한국에 있던 조 씨의 아내 이슬비 씨는 남편이 구금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지난 7월 중순 단기 상용(B-1) 비자로 합법 출국했기에, 처음엔 사기 전화라고 생각했다. 이 비자는 업무 협의나 교육, 특정 산업 장비 관련 업무 등을 허용하지만 모든 종류의 업무를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뉴스를 통해 남편의 소식은 사실로 확인됐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던 현장에서 한국인 약 300명이 구금됐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구금된 이들이 "불법으로 미국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남편을 중범죄자처럼 취급하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총기·쇠사슬 동원 '날벼락'…구치소선 '범죄자 취급'


구치소 경험은 끔찍했다. 조 씨는 수감복을 받고 다른 한 명과 함께 방을 썼다. 식사와 수면, 용변까지 한 공간에서 해결해야 했다. 구금 사유를 거의 설명받지 못했고, 이민 당국자들조차 혼란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조 씨는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미 당국은 이번 단속에서 체포된 이들의 혐의로 국경 불법 월경, 취업이 금지된 비자 면제 프로그램 이용, 비자 체류 기간 초과 등을 거론했지만, 구금된 한국인들에게 어떤 혐의를 적용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며칠 뒤 분위기는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조 씨는 "처음에는 매우 공격적이던 그들 태도가 시간이 흐르면서 부드러워졌다"며 "우리가 중대한 불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들도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민 담당관들이 "점차 '뭔가 잘못됐다, 이들에게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고 덧붙였다.

밖에서는 이번 사태가 국제 문제로 번졌다. 우리 정부는 즉각 유감을 표하고 구금자들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국내에서는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시민 홍정식 씨는 '공장 짓고 투자해달라더니 체포·구금하는 게 동맹이 할 일인가?'라는 손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당초 석방 예정일은 수요일이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인들이 석방된 뒤 미국에 남아 계속 일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지연됐다고 알려졌다.

목요일 새벽, 317명 가운데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전세기를 타고 애틀랜타에서 귀국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우리 외교부에 따르면 조 씨와 동료들은 족쇄에서 풀려났으며, 미 국무부로부터 앞으로 미국에 다시 들어올 때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보장을 받았다. 그들은 수갑 없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정부 항의·외교적 해법…전세기편으로 '눈물의 귀국'


12일 인천공항 입국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두 자녀와 함께 남편을 기다린 조 씨의 아내 이 씨는 성조기, 비행기 그림, 태극기를 붙인 '사랑하는 남편, 정말 고생 많았어요'라는 글귀가 적힌 머리띠를 하고 남편을 기다렸다. 가족과 친구들은 귀국자들이 나오기로 한 공항 주차 타워 4층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남편을 포함한 귀국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리던 가족과 친구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 씨는 울면서 남편에게 달려가 부둥켜안았고, 조 씨의 어머니 역시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꽃다발을 건븄다.

앞으로 업무 복귀를 둘러싼 우려는 남는다. 조 씨는 미국 재입국과 관련한 자신의 법적 지위를 두고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구금자들의 귀국을 돕고자 조지아를 방문했던 LG에너지솔루션 김동명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이 미국에 다시 들어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공사 일정에 큰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내 이 씨는 "남편이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귀국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조 씨는 짧지만 진심 어린 대답을 남겼다. "소주 한 잔에 삼겹살을 먹고 싶습니다." 일주일간의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한 가장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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