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월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단 한 번도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인하를 강력하게 압박했음에도 관세의 물가 영향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동결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런 파월이 정책 변경의 신중 검토를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파월은 잭슨홀 연설에서 금리인하라는 표현은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시장은 정책 변경 신중 검토라는 파월의 발언에 대해 그동안 요지부동의 동결에서 금리인하 쪽으로 성큼 다가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파월 연설 직후 뉴욕증시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나스닥 기술주가 큰 폭으로 올랐다.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암호화폐도 한때 폭발했다. 지니어스법과 스테이블코인 수혜주로 분류된 이더리움은 사상 최고치 기록을 돌파하기도 했다.

미국 와이오밍 잭슨홀에서 열리는 잭슨홀 심포지음은 미국 Fed 주최하는 통화정책 회의다. 여기에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 전 세계의 수많은 통화정책 책임자들이 함께한다. 올해도 200여 명의 중앙은행 총재와 저명한 이코노미스트, 금융 전문가들이 나서 주제발표 또는 통화정책 방향 연설을 했다. 파월의 정책 변경 메시지 연설이 워낙 크게 조명을 받는 바람에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앞으로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메가톤급 선언이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의 연설이었다.
우에다 총재는 일본의 금리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일본 내에서 임금 상승세가 확산하고 있다고 언급해 추가 금리인상을 위한 조건이 갖춰지고 있다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우에다 총재는 일본의 노동인구 감소에도 임금 상승이 지난 수십 년간 정체된 것은 "굳어진 디플레이션 기대감 때문"이라며 이런 인식이 그간 기업들의 상품 가격과 임금 인상을 꺼리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외부 충격으로 작용해 일본을 디플레이션 늪에서 벗어나게 했고, 최근에는 "노동력 부족이 우리의 가장 시급한 경제 문제 중 하나가 됐다"고 진단했다.
우에다 총재는 "특히 임금 상승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면서 "상당한 부정적인 수요 충격이 없는 한, 노동시장은 타이트한 상태를 유지하며 임금 상승 압력을 계속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러한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공급 측면의 변화에 대한 평가를 통화정책 결정에 계속 반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을 국제사회에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3월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다. 이어 7월에는 기준금리를 종전 0∼0.1%에서 0.25%로 올렸다. 2025년 1월에는 0.5%로 인상한 바 있다. 이를 조만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뜻이다. 우에다 총재는 최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현재의 실질금리는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강조한 뒤 "경제·물가 정세의 개선에 따라 계속 정책금리를 올려 금융완화 정도를 조절할 것"이라며 향후 금리인상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한 바 있다. 로이터는 우에다 총재의 이번 잭슨홀 발언이 미국 관세 정책의 충격을 우려해 중단했던 일본은행의 금리인상 사이클 재개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BOJ의 인플레이션 대응이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고위 당국자가 해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노골적으로 평가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일본에 대한 미국의 노골적인 금리인상 압박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주요 물가지표는 3년 넘게 BOJ의 목표치인 2%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BOJ는 주요국 중 가장 낮은 정책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낮은 금리는 달러 약세를 추진하는 미국의 'MAGA 전략'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베선트 장관의 발언 이후 BOJ의 금리인상 기대감에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상승했고, 일본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상승했다.

미국이 금리인하를 시사한 가운데 일본이 인상을 단행하면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줄어든다. 이는 곧 엔캐리 청산의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글로벌 시장을 지탱해온 1조 달러 이상의 엔화라는 '거대한 둑'에 균열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엔캐리 트레이드'란 초저금리인 엔화로 자금을 조달해 금리가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을 뜻한다. 일본은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수십 년간 제로 금리를 유지해왔다. 최근까지도 기준금리가 0%에 묶여 있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일본 엔화를 빌려 미국 달러 등 고금리 통화나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을 오랫동안 구사해왔다. 예를 들면 일본 엔이나 스위스 프랑과 같이 금리가 낮은 통화로 자금을 조달해 멕시코 국채나 미국 기술주 같은 높은 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식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일본 내 은행에서 발생해 해외로 나간 엔화 표시 대출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157조 엔에 이르렀다. 미국 돈으로 1조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는 자산운용사 등 중장기 투자자들이 활용하는 자금이다. 단기 투기성 선물 포지션이나 파악이 어려운 장외 파생상품 시장의 자금을 합하면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규모는 더 늘어난다. 1조 달러가 넘는 자금이 전 세계 주식, 채권, 원자재, 신흥국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며 글로벌 자산 가격을 부양하는 숨은 유동성 공급원 역할을 해왔다. 이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글로벌 금융시장에 발작 현상이 올 수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엔캐리 청산에 따른 후폭풍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