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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실리콘밸리, '우월한 유전자' 찾아 수만 달러 투자

기술과 자본의 결합, '맞춤형 아기' 시대를 열다
과학계 "효과 미미", 윤리계 "위험한 발상"…뜨거운 논쟁
더 나은 아이를 얻기 위한 유전자 검사 붐이 일고 있다. 이미지=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더 나은 아이를 얻기 위한 유전자 검사 붐이 일고 있다. 이미지=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실리콘밸리에서 '더 똑똑한 아기'를 갖기 위한 열풍이 거세다. 성공과 능력을 유전자의 힘으로 설명하려는 이곳 특유의 신념은 자녀의 '유전적 최적화'로 이어지며, '유전적 슈퍼 카스트(계급)' 탄생이라는 심각한 생명윤리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2일(현지시각) 심층 보도했다.

◇ '유전적 최적화', 새로운 부의 상징


실리콘밸리의 부모들은 이제 태아의 IQ까지 선별하는 새로운 유전자 검사 서비스에 최고 5만 달러(약 6900만 원)를 지불한다. 일론 머스크 같은 기술 미래학자들은 지적 재능을 가진 이들의 다산을 촉구하고, 상류층 전문 중매 업체들은 명석한 자손을 전제로 기술 임원과 파트너를 연결한다. 상류층 전문 중매인 제니퍼 도널리는 "현재 고객 중 기술 CEO 세 명 모두 아이비리그 출신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유전적 최적화'의 중심에는 스타트업들이 있다. '뉴클리어스 제노믹스'와 '헤라사이트' 같은 스타트업은 배아 단계에서 IQ 예측 유전자 검사를 제공하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수요가 높다. 비용은 약 6000달러(약 830만 원)부터 최고 5만 달러(약 6900만 원)까지 다양하다.

뉴클리어스 제노믹스의 키안 사데기 창립자는 "실리콘밸리는 IQ를 사랑한다"며 "'내 아이가 하버드 학자가 되길 바란다'는 식의 열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평범한 부모들은 '르브론 제임스 같은 아이'를 원할 수도 있다"며 지역 특성을 짚었다.

이런 현상은 실리콘밸리의 뿌리 깊은 믿음과 관련이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사샤 구세프 통계 유전학자는 "그들은 자신이 똑똑하고 성공한 이유가 '좋은 유전자' 덕분이라 여기며, 이제 그 도구를 자녀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분석했다. 사랑 이상으로 자녀의 유전적 잠재력 강화에 집중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

◇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로 본 현주소


출생장려주의 운동을 이끄는 시몬과 맬컴 콜린스 부부는 이 기술의 적극적인 사용자다. 기술·벤처 캐피털 업계 출신인 이들은 헤라사이트를 통해 배아를 분석했다. 시몬 콜린스는 현재 임신 중인 태아가 암 위험이 낮을 뿐 아니라 "다중유전자 점수 상 지능이 매우 뛰어날 가능성이 99번째 백분위수"에 속해 "정말 멋진 일”이라며 반겼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들의 이름을 공상과학 소설 속 군함의 아바타 이름을 따 '텍스 데마이센'으로 지을 계획이다. 콜린스는 "만약 기개, 야망, 호기심에 대한 유전자 점수가 있었다면 훨씬 더 관심 있었을 것"이라며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냈다.

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부부의 사례는 이런 흐름을 뚜렷이 보여준다. 가족력에 있는 알츠하이머와 암을 피하는 동시에, 자녀가 '세상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다. 그들은 헤라사이트에서 받은 배아 분석 결과를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하고, 각 특성에 가중치를 두어 순위를 매겼다. "알츠하이머 평생 발병 위험이 몇 퍼센트 증가해야 양극성 장애 위험 1% 감소와 균형을 이룰까?", "ADHD 추가 위험이 얼마나 되어야 IQ 10점 상승을 상쇄할 수 있을까?" 같은 복잡한 계산 끝에, 총점이 가장 높은 배아를 선택했다. 이 배아의 예측 IQ 순위는 3위였다. 이렇듯 이들은 미래 자녀의 설계를 염두에 두고 관계를 맺는다.

◇ "신동 제조는 불가능"…과학계 경고와 윤리적 딜레마


하지만 과학계는 이런 IQ 예측의 정확성을 회의적으로 본다. 관련 모델을 개척한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샤이 카르미 부교수는 예측력이 "썩 좋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 모델은 인지 능력 차이의 5~10% 정도만 설명할 수 있으며, 배아 선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평균 IQ 상승분은 3~4점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신동 제조' 수준의 영향력은 제한된다는 것이다.

의도치 않은 부작용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하버드의 구세프 박사는 "가장 높은 IQ의 배아를 선택하는 것이 동시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위험이 가장 높은 배아를 선택하는 것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윤리 비판은 더욱 거세다. 스탠퍼드 대학교 법률·생명과학 센터의 행크 그릴리 소장은 "부자들이 유전적으로 우월한 계급을 만들어 나머지를 하층민으로 만드는 공상 과학 소설의 줄거리가 현실이 될 수 있다"며 사회 불평등 확대를 우려했다.

◇ "AI 위협 막기 위해"…더 똑똑한 인류를 꿈꾸는 합리주의자들

가장 극단적인 동기는 버클리의 '합리주의자'로 불리는 컴퓨터 과학자 그룹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은 인공지능(AI)이 인류에 가하는 위협을 막으려면 '더 똑똑한 인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제노믹 프레딕션의 스티븐 쉬 공동 창립자는 "그들 중 일부는 더 똑똑한 인간이 안전한 AI를 만들어야 한다는 장기 우생학 프로그램에 전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운동을 이끄는 츠비 벤슨-틸슨은 자신의 목표가 "부모가 자녀의 예상 IQ를 높이는 것을 포함해 유전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는 정부 주도의 강제 우생학이었던 나치 독일의 사례와 달리, 이는 '개인의 선택'과 '기회의 확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리콘밸리의 이런 움직임은 기술을 향한 믿음과 유전자에 대한 자기 결정권, 사회 윤리 논쟁이 뒤섞인 현상으로 풀이된다. 과학의 한계와 윤리의 도전에도 '지능 최적화'를 향한 관심과 압박은 앞으로 기술·문화·정책 토론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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