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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아시아 제조업, 트럼프 관세율 확정에 안도…반도체·의약품은 '시계 제로'

일본 15%, 동남아 19%대 관세율 '뉴 노멀'로…中과는 대화 국면
반도체·의약품, 무역확장법 232조 근거 추가 관세 '뇌관' 여전
미국의 새로운 관세 부과를 앞두고 아시아 국가들의 '선적 밀어내기'가 이어진 항구의 모습. 새 관세율이 적용되면 이러한 물동량은 둔화될 전망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의 새로운 관세 부과를 앞두고 아시아 국가들의 '선적 밀어내기'가 이어진 항구의 모습. 새 관세율이 적용되면 이러한 물동량은 둔화될 전망이다. 사진=로이터
수개월간 이어진 불확실성 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쇄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세계 최대 제조업 기지인 아시아의 새로운 무역 지형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관세율을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반도체와 의약품 등 핵심 산업은 여전히 잠재적인 관세 부과 가능성에 노출되어 불확실성은 여전하다고 비즈니스 타임스 인터내셔널이 23일(현지시각)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일본과의 협상 타결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합의로 양국 간 무역 적자의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를 포함한 일본산 수입품에 15%의 관세가 적용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협상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필리핀과는 19%의 관세율에 합의했는데, 이는 인도네시아가 앞서 합의한 세율과 같다. 베트남의 기준선인 20%보다 1%포인트 낮은 수준으로, 동남아 주요국에 적용되는 19~20%대 관세율이 사실상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인 미중 관계도 안정되는 모양새다. 미 재무부의 스콧 베선트 장관은 다음 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중국 측과 3차 회담을 갖고 관세 휴전 연장과 논의 확대를 모색할 예정이다. 최근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규제를 완화하고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재개한 데 이은 긍정적인 신호로 풀이된다. 하지만 중국산 원료의약품(API) 등 일부 품목에는 최대 245%에 이르는 높은 관세가 여전히 적용되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중국과 매우 잘 지내고 있다"며 좋은 관계를 강조했다.

한때 중국에 145%, 일부 아시아 국가에 50%에 육박하는 관세 위협을 가했던 지난 6개월과 비교하면 상당한 예측 가능성을 확보한 셈이다. 시장은 즉각 환호했다. 아시아 증시는 한 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으며, 일본 니케이 225 지수는 토요타 등 자동차주 주도로 3.2% 급등했다.

◇ 안도 속 남은 불확실성…반도체·의약품 '태풍의 눈'


그러나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앨버트 박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식 시장이 변화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인 점이 흥미롭다"면서도 "높은 관세율이 부를 모든 파급 효과를 시장이 가격에 완전히 반영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안도하기엔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까지 관세가 면제되었던 반도체, 의약품 같은 핵심 품목에 대한 부문별 관세가 여전히 검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Section 232)에 따른 국가안보 조사 결과에 따라 언제든 관세 부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의약품에 대한 단계적인 관세 부과 계획을 언급한 바 있어 정책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은 아직 최종 관세 합의를 이루지 못한 대만과 인도 경제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등 핵심 산업이 집중 겨냥될 위험이 있어 추가적인 불확실성에 노출됐다.

◇ 공급망 재편 가속화…아시아 성장률 하방 압력


관세 수준이 명확해지면서 아시아에 복잡한 공급망을 둔 기업들은 이제 본격적인 손익 계산에 들어갔다. 관세 위협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물량을 출하하던 '선적 밀어내기(front-loading)' 흐름은 새 관세율이 적용된 뒤 속도가 줄어들 전망이다. 대신 미국 내 생산을 늘리거나 공급망을 재조정하는 '관세 최적화'를 모색하며, 2018년 1차 무역전쟁 때처럼 중국 등 높은 관세를 무는 나라에서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로 생산기지를 옮기려는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바클레이스의 브라이언 탄을 비롯한 분석가들은 보고서에서 "최근 합의는 관세율이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수준으로 알려진 15~20%대로 수렴하는 추세를 보여준다"며 "이는 아시아의 GDP 성장률 전망에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 역시 미국의 기준 '상호' 관세율이 10%에서 15%로 오를 경우, 미국 내 소비자 가격 상승과 경제 성장 둔화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은 관세의 최종 수준과 그 경제적 파급 효과를 지켜본 뒤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며 "모두에게 훌륭한 협정"이라고 자평했다. 다만 미국이 다음 단계로 약 150개 중소국에 10~15%의 일괄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무역 갈등의 전선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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