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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엔비디아, AI 앞세워 워싱턴 장악...애플·테슬라 시대 저물다

젠슨 황, 트럼프와 밀착해 H20칩 中수출 빗장 풀어...정치 영향력 입증
팀 쿡, 中리스크·투자 압박에 고전...머스크는 트럼프와 갈등에 '찬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며 워싱턴의 새로운 기술 권력자로 부상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황 CEO는 AI칩을 고리로 트럼프 행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경쟁자인 팀 쿡 애플 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시대를 저물게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며 워싱턴의 새로운 기술 권력자로 부상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황 CEO는 AI칩을 고리로 트럼프 행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경쟁자인 팀 쿡 애플 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시대를 저물게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로이터
인공지능(AI) 혁명이 세계를 강타하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 워싱턴 정가의 기술 권력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한때 미·중 관계의 노련한 항해사로 이름난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 시대가 저물고, AI 반도체 선두 주자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미국에서 정치 영향력이 가장 큰 기술 기업가로 떠올랐다고 미 경제방송 CNBC가 지난 2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쿡 CEO는 특유의 매력 공세로 미·중 무역 전쟁의 파고를 넘었다. 그는 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했고, 애플의 중국 내 성장을 이끌며 '워싱턴의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특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여러 기술 전문가들은 트럼프 2.0 시대의 정치 영향력 면에서 황 CEO가 쿡 CEO를 멀찌감치 따돌렸다고 평가한다. 투자회사 웨드부시의 댄 아이브스 전문가는 "젠슨 황은 AI 혁명에서 성공하며 세계적인 인물이 됐고, 정치 무대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면서 "엔비디아 AI 칩의 중요성이 그를 쿡보다 앞서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엔비디아의 AI 칩이 핵심 역할을 하면서 그는 AI 칩 공급의 독점 위치 덕분에 정치권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갖췄다. 아이브스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AI 혁명을 이끄는 칩은 세상에 단 하나, 바로 엔비디아의 칩이어서 황은 정치 지형을 헤쳐나갈 매우 강력한 위치에 섰다는 것이다.

◇ AI칩, '정치무기'로...백악관 마음 얻다


황 CEO의 막강해진 영향력은 최근 행보에서 뚜렷하다. 엔비디아는 올해 초 수출이 제한됐던 저사양 AI 칩 'H20'의 중국 수출을 곧 재개할 것이라고 지난주 밝혔다. 황 CEO가 공개적으로 (수출 제한) 반대 로비를 벌여온 것으로, 그의 '역사적인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황의 정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황 CEO가 중국 방문 직전 워싱턴D.C.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차례 만나 미국의 반도체와 AI 산업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H20 수출 제한 조치의 번복이 미·중 무역 협상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전문가 다수는 황 CEO의 집요한 로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DGA-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의 폴 트리올로 수석 부사장은 황의 논리가 백악관 내 실력자인 데이비드 색스 AI·암호화폐 차르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면서 행정부의 결정에 힘을 실었다고 분석했다. 그가 전하길 "'미국의 특정 기술 수출 제한이 오히려 중국 기업들의 자국 기술 개발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둘 다 주장한다'는 논리가 H20 문제에서 주효했다"는 것이다.

황 CEO는 미국 기술의 세계 리더십을 주창하며 올해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차례 회동으로 신뢰를 쌓았다. 지난 5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동행해 중동 아랍에미리트(UAE)와 대규모 AI 칩 공급 계약을 맺는 등 세계 시장 확장도 추진하고 있다. 이 계약은 미국의 기술력을 새로운 시장에 확산시켜 경쟁자인 중국 화웨이를 견제하고 세계 기술 리더십을 다지는 상징적인 성과로 평가받았다. 이후 황 CEO는 "미국의 칩 수출 규제가 자국 기술 리더십을 잠식하고 중국 기업들만 이롭게 할 것"이라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펼쳤고, 뉴욕타임스는 그가 막후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관료들에게 같은 논리를 설파했다고 보도했다.

◇ 자리 잃는 쿡·머스크...엇갈린 거물들의 희비


반면 한때 워싱턴을 주름잡았던 다른 기술 거물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당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가교 역할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가 맡으리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정치 영향력이 크게 떨어졌다. 특히 청정에너지 세액공제 폐지 위협과 정부 계약 문제로 회사 경영이 나쁜 영향을 받았고, 트럼프 행정부 안에서 입지 약화가 두드러진다.
팀 쿡 CEO 역시 강한 압박에 직면했다. 2기 들어 애플은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자리도 엔비디아에 내줬고, 트럼프 정부의 제조업 투자 요구와 중국 외 생산 이전 압박 때문에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애플이 5000억 달러(약 689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에도 인도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두고 "팀 쿡에게 약간의 불만이 있다"고 직접 표현했다. 이달 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문인 피터 나바로가 "쿡이 중국에서 생산 시설을 충분히 빨리 옮기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황 CEO의 앞날에 위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그의 영향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트리올로 부사장은 "지금까지 황이 미국 정부와 중국 시장 사이에서 능숙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지만, 행정부가 언제든 칩 규제의 목표를 바꿀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로디엄 그룹의 레바 구존 이사는 "현재 엔비디아는 칩 통제의 주요 대상에서 주요 영향력 행사자로 변모했다. 문제는 그 순간이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다"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정부가 진행 중인 반도체 산업 조사가 새로운 관세로 이어질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와 엔비디아의 사업이 다시 한번 부딪칠 수 있다. 또한 엔비디아 제조 시설 대부분이 여전히 대만에 있다는 점도 지정학적 변수로 남아있다. 팀 쿡의 사례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핵심 시장을 모두 상대해야 하는 기술기업 운영의 어려움을 상징한다.

AI 혁명은 워싱턴의 권력 지도를 다시 그리며 기술 기업가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있다. 젠슨 황이 기술과 무역 정책의 중심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이끄는 동안, 팀 쿡은 변화한 환경 속에서 생존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이제 기업가들은 단순한 경제주체를 넘어 국가 안보와 미래 전략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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