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미시시피대 연구진이 해삼에서 추출한 당류 성분이 암세포 전이를 유도하는 효소를 억제해 항암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9일(현지시각) 미국 과학 전문매체 스터디파인즈에 따르면 비토르 포민 미시시피대 생체분자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해삼에서 얻은 복잡한 당 구조의 성분이 ‘설파타제-2(Sulf-2)’라는 효소를 효과적으로 차단해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 암 전이 돕는 설파타제-2 효소, 해삼 당류가 억제
설파타제-2는 정상 세포 간의 신호 전달을 조절하는 효소로 암세포가 이 시스템을 탈취해 전이와 성장을 촉진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유방암, 폐암, 췌장암, 두경부암 등 여러 공격적인 암에서 과활성화돼 있으며 기존 항암 치료의 저항성을 높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플로리다 해역에서 채취한 해삼에서 분리한 ‘후코실화 글리코사미노글리칸(HfFucCS)’이 설파타제-2의 작용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특히 이 물질은 기존 억제제보다 뛰어난 효능을 보였으며 크기를 7분의 1 수준으로 쪼갠 단편에서도 유사한 효과가 유지되면서도 부작용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포민 교수는 “이번 연구는 그동안 육상 생물에 치우쳐온 천연물 항암제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며 “해양 생물 자원은 아직 충분히 탐색되지 않은 약물 후보군이며, 해삼은 대표적인 저독성 해양성 항암 물질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기존 항암제 대비 부작용 낮고, 건강 세포엔 영향 미미
연구에 따르면 해삼 유래 물질은 설파타제-2의 작용을 직접 차단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 효소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켜 암세포가 성장에 유리하도록 신호를 조작하는 능력을 무력화한다. 이런 작용 방식은 기존 화학항암제처럼 건강한 세포까지 공격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질량분석법을 활용한 실험에서는 해삼 성분이 설파타제-2의 특정 부위에 결합해 효소 작용을 방해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포민 교수는 “해삼에서 추출한 당 구조는 암세포 내에서 설파타제-2가 작동하는 경로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미세한 화학적 차이를 보여 효소의 경쟁적 저해제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해삼 유래 물질은 출혈 위험을 높일 수 있는 다른 해양성 물질과 달리 혈액 응고에 미치는 영향도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중간 크기의 단편(분자량 약 7500)에서 항암 효과가 유지되면서도 출혈 위험이 낮아 실제 임상에 적용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 사람 대상 임상 전, 동물 실험 등 후속 연구 필요
이번 연구는 암세포 배양 및 효소 분석을 통한 실험실 수준에서 이뤄졌으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는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포민 교수는 “향후 동물 모델을 통한 전임상 실험을 거쳐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한 뒤 사람 대상 임상시험으로 이어질 계획”이라며 “자연 추출물의 낮은 수율을 극복하기 위한 화학 합성 경로도 함께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글라이코바이올로지(Glycobiology) 35권에 게재됐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