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랍 에미리트·카타르, 미국 반도체·AI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
중동 나흘 순방으로 2조2000억 달러 유치, AI 칩 수출 규제 전면 해제
중동 나흘 순방으로 2조2000억 달러 유치, AI 칩 수출 규제 전면 해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기자들과 만나 "중동 순방국들이 4년간 미국 기업들에 1조 달러를 내야 할 것"이라며 "2017년 방문 때는 4500억 달러를 약속받았는데, 이번엔 그들이 더 부유해졌다"고 말했다.
◇ 걸프, AI 칩 '빅딜'로 실리콘밸리 넘본다
최종 합의한 투자 규모는 트럼프의 목표를 훨씬 넘었다. UAE는 앞으로 10년간 1조4000억 달러(약 1952조3000억 원), 사우디아라비아는 4년간 6000억 달러(약 836조7000억 원), 카타르는 2000억 달러(약 278조9000억 원) 투자를 약속했다. 이 투자는 인공지능 기반시설, 반도체, 국방, 에너지 사업 등 첨단산업 전반에 걸쳐 집행될 예정이다.
특히 UAE는 2025년부터 연간 최대 50만 개의 엔비디아(Nvidia) 첨단 AI 칩을 수입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이 중 10만 개는 현지 AI 기업 G42에, 나머지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UAE 내 데이터센터 구축에 활용한다. 해당 계약은 2027년까지 3년간 지속되며, 총 150만 개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단일 국가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AI 칩 도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우디 역시 국부펀드가 지원하는 AI 스타트업 '휴메인(Humain)'을 통해 엔비디아와 협력, 최첨단 블랙웰(GB300) 칩 1만8000개를 즉시 공급받기로 했다. AMD도 휴메인과 100억 달러(약 13조9000억 원) 규모의 협력을 발표했다. 이와 별도로 퀄컴, 시스코, IBM, 구글, 오라클, 세일즈포스 등 미국 IT 대기업들이 걸프 지역에 총 800억 달러(약 111조5000억 원)을 공동 투자하기로 했다.
◇ AI 칩 수출 규제 해제...중동, 美 기술의 '새 우방' 부상
이번 순방의 핵심은 미국의 첨단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 정책 변화다. 트럼프는 전임 바이든 대통령이 시행한 '인공지능 확산 규제'를 거두고, 걸프 국가들에 최첨단 미국산 칩을 무제한 공급하는 정책 전환을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미국 기술로 걸프 국가의 충성도를 확보하고,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중국의 화웨이와 알리바바 같은 클라우드 기업들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가운데, 트럼프는 미국 기술을 중동에 집중 공급해 이들 국가를 중국에서 멀어지게 하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이로써 UAE와 사우디 등은 미국산 칩을 기반으로 대규모 AI 데이터센터와 인프라를 신속하게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아부다비에는 5GW(기가와트) 규모의 세계 최대 AI 데이터센터 단지가 들어서며, 미국 상무부는 "미국 외 최대 규모의 AI 인프라"라고 평가했다. 미국 기업들은 걸프 현지 데이터센터 구축과 동시에, 걸프 자본으로 미국 내 AI·반도체·에너지 시설에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다. 사우디 데이터볼트(DataVolt)는 미국에 200억 달러(약 27조9000억 원)를 투자해 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인프라를 조성한다.
방위·항공 분야에서도 대형 계약이 이어졌다. 사우디는 1420억 달러(약 198조2000억 원) 규모의 미국산 첨단 무기 구매 계약을 맺었고, 카타르는 보잉과 960억 달러(약 133조9000억 원) 규모의 항공기 구매, 100억 달러(약 13조9000억 원) 규모의 미군기지 투자 및 드론 도입을 약속했다.
◇ AI 패권, 실리콘밸리 넘어 아부다비·리야드로
중동 산유국들에 이번 협약은 탈석유 경제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실리콘밸리에 맞먹는 인공지능 중심지로 자리 잡으려는 목표를, UAE는 2031년까지 세계 인공지능 선두가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이런 꿈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걸프 지역이 미국·중국과 함께 세계 3대 AI 허브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 내에서는 첨단 AI 칩의 대량 수출이 국가안보와 기술패권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걸프 국가들은 "탈석유 시대를 대비해 AI와 첨단산업으로 경제 구조를 전환하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
UAE는 2031년까지 글로벌 AI 리더로 도약하겠다는 국가전략을 추진 중이며, 사우디 역시 '비전 2030'의 핵심 축으로 AI 허브 구축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기술과 걸프의 자본·에너지·신속한 의사결정이 결합해, AI 산업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순방 기간 중 시리아 제재 해제, 이란과의 원전 협상, 페르시아만을 아라비아만으로 이름 바꾸는 방안 논의 등 파격적 외교 행보도 병행했다. 이번 걸프 순방은 미국과 중동의 전략적 동맹이 첨단기술 분야로 확장되는 분기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라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