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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남북전쟁과 링컨 모릴관세법(Morrill Act) … 트럼프 관세폭탄 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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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미국 역사에서 가장 아픈 상처는 단연 남북전쟁일 것이다. 같은 나라 국민들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죽고 죽이는 참극을 벌였으니 그 참상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남북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수는 62만 명이다. 이 사망자 수는 미국이 건국 이후 관여한 모든 전쟁의 전사자 수를 다 합한 것보다도 많다. 남북전쟁이 노예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전쟁에서 승리한 북군 측이 뒤늦게 만들어낸 그럴듯한 명분이었을 뿐이다. 노예해방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전쟁의 원인은 아니었다. 남북전쟁의 실질적 원인은 바로 관세를 둘러싼 남과 북의 갈등이었다.
1812년 영미전쟁 이후 미국 연방정부는 영국에 대한 보복으로 영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관세로 영국산 수입품을 막은 다음 미국의 제조업을 키우자는 구상이었다. 이 관세를 둘러싸고 남과 북 사이에 갈등이 야기됐다. 제조업 비중이 높았던 북쪽은 관세 폭탄에 쌍수를 들어 환호했다. 농업이 주를 이루었던 남쪽의 생각은 달랐다. 영국에서 농기계를 수입해 면화를 수출하는 남부 입장에서는 고율의 관세가 큰 부담이었다. 1860년 대선에서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관세에 대한 남부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링컨 당선자가 관세 인상을 추진하자 남부는 연방을 탈퇴했다. 남부 출신 의원들이 의사당을 떠난 가운데 상·하원은 고율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1861년 3월 2일자로 효력을 갖게 된 이 법의 골자는 관세를 기존보다 2~3배 인상하는 것이었다. 이 법안은 링컨과 같은 공화당 소속이던 저스틴 모릴 의원이 발의했다. 그 이름을 따 지금도 '모릴 관세법'으로 불리고 있다. 모릴 관세법이 발효된 지 한 달 열흘 만에 남부동맹은 관세 관청이 있던 섬터 요새를 공격했다. 모릴 관세법은 남북 간 조세 갈등의 정점이자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모릴 관세법으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49%까지 치솟았다.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도 1차 대전 직전인 1913년까지 고율 관세를 유지하며 국내 제조업을 키웠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의 관세율은 32%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1860년 남북전쟁이 터질 때 노예해방은 큰 이슈가 아니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은 전쟁이 터진 후 3년이 지난 1863년 1월 1일이다. 당시 노예는 거의 대부분 남쪽에 치우쳐 있었다. 노예해방 선언으로 노예들의 대규모 이탈을 유도함으로써 남쪽의 경제력과 군사적 기반을 뒤흔들겠다는 전략적 조치였던 것이다. 링컨의 노예해방은 오로지 남부 주(州)의 노예에만 적용됐다. 델라웨어, 켄터키, 메릴랜드, 미주리의 경계 4주와 테네시, 버지니아, 루이지애나 등 북군이 점령한 여러 주의 노예는 해방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링컨의 노예해방은 흑인의 인권보다는 남북전쟁에서 승리에 역점을 둔 일종의 군사작전이었다. 링컨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노예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지도 않았다. 더구나 남북전쟁 당시에는 링컨 해방 선언에 해당되는 남부 지방이 독립해 있었다. 그런 만큼 법적 강제력도 없었다. 북부의 남부 재통일 이후에도 한동안 남부에서는 노예제도가 합법적으로 유지되었다.
그럼에도 이 선언은 대부분의 북부 사람들에게 전쟁 참여에 대한 도덕적 명분을 부여했다. 당시 많은 남부 사람들은 노예제도 찬성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 고향을 지키고,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북부의 부당한 탄압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반면 북부 사람들은 꼭 전쟁을 해야만 하는 절박한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그런 북부 사람들에게 자유와 인권을 지키고자 한 미국 독립전쟁 때와 같은 전쟁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했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에서 제외된 몇몇 지역에서는 지방관의 선언에 의해 따로 노예가 해방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선언은 북부가 승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노예해방의 본질적 실현은 종전 후 1865년에 미국 헌법 수정 제13조가 비준됨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졌다. 남북전쟁은 이처럼 노예해방이 아닌 링컨의 모릴 관세법 강행이 부른 경제적 내전이다. 그만큼 미국 사람들은 관세에 민감하다.

요즈음 세계는 트럼프 관세 폭탄으로 그야말로 혼돈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취임 후 100일도 채 되지 않아 수십 년간 이어져온 세계 무역질서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동맹과 우방국에도 예외를 두지 않은 자의적인 고강도 관세 정책은 글로벌 경기침체를 야기할 것이란 우려와 함께 뉴욕 증시, 국채 금리 등 국제 금융시장에 즉각적인 충격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의 유예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다가 상호관세 발효 13시간 만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가별 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깜짝 발표하는 변덕스러운 행보를 보이면서 혼란과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켰다. 관세 유예 대상에서 제외된 중국은 미국의 145% '폭탄 관세' 부과에 125%의 보복 관세로 맞서며 긴장이 고조됐다. 세계 1·2위 경제대국 간 관세 협상은 현재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다.

미국을 외국의 약탈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관세가 미국 내 물가를 올리고 고용을 위축시켜 미국 경제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경고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세계 각국은 전후 세계 경제질서의 중심축이 돼온 달러화 패권 지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이른바 '해방의 날'에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했다. 외국의 '무역 약탈'로부터 벗어나 미국의 제조업을 살리고 번영을 이루겠다며 대부분 무역상대국에 10% 기본관세를 책정하고, 한국을 포함한 57개 경제주체에는 추가 관세를 적용했다. 한국은 25% 관세율이 책정됐고, 유럽연합은 20%, 일본은 24%, 인도는 27% 세율이 적용됐다. 10%의 기본관세는 4월 5일 발효됐고, 9일 발효됐던 국가별 개별 추가 관세는 중국을 제외하고 90일간 유예된 상태다. 상호관세 외 품목별 관세도 이미 발효됐거나 추가로 발표될 예정이다.

예상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고강도 관세 정책은 글로벌 경기침체를 야기할 것이란 우려와 함께 국제 금융시장에 즉각적인 충격을 가했다. 처음엔 관세 정책을 협상 수단 정도로 인식했던 월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혼돈에 휩싸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중국이 즉각 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4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상호관세 발표 직전 대비 12% 폭락했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2020년 '팬데믹 쇼크' 이후 최악의 충격을 입었고, 주식시장 공포지수는 팬데믹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주식시장이 급락한 데 이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미국 국채시장마저 투매가 이어지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글로벌 금융위기 공포도 확산되고 있다. 링컨의 모릴 관세법이 남북전쟁의 도화선이었다면 트럼프 관세 폭탄은 대공황과 세계대전의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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