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통제가 강화되면서 세계 최대 AI 반도체 제조업체 엔비디아가 일부 중국 고객들에게 사전 경고 없이 규제 내용을 공개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같은 조치는 화웨이 등 중국 내 반도체 업체에 반사이익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6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지난 9일 미국 당국으로부터 중국향 H20 AI 반도체에 대해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이를 고객들에게 곧바로 알리지 않았다. 회사 측은 16일이 돼서야 이같은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의 주요 클라우드 기업들은 연말까지 H20 반도체 납품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고 엔비디아 중국 지사 영업팀조차 수출규제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H20은 미국 정부가 2023년 10월부터 시행한 대중 수출제한 조치 이후 중국에서 판매가 가능한 엔비디아의 주요 AI 반도체로 지난 2022년 이후 고성능 GPU 제품의 수출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유일하게 허용된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H20까지 수출이 제한되면서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올해 초부터 중국에서만 약 180억달러(약 25조원)의 H20 주문을 받은 상태였다. 중국은 엔비디아 전체 매출의 13%에 해당하는 170억달러(약 24조원)를 지난 회계연도에 기록한 핵심 시장이다.
엔비디아는 이같은 규제로 인해 오는 27일 종료되는 1분기에 최대 55억달러(약 7조8000억원) 규모의 비용을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H20 관련 재고와 구매계약, 충당금 등에 따른 것이다. 이 발표 직후 엔비디아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6% 하락했다.
중국 내 주요 고객사였던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등은 이미 H20 수요를 대폭 늘려왔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조치로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들 기업은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날 홍콩 증시에서 알리바바 주가는 4.1%, 텐센트는 1.8% 하락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중국 내 대체 반도체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노리 치우 싱가포르 화이트오크캐피털 파트너스 투자이사는 “미국 규제는 사실상 중국 고객을 화웨이의 AI 반도체 쪽으로 몰아주는 셈”이라며 “화웨이는 고객 확대와 기술 축적을 통해 설계·소프트웨어 역량을 빠르게 키워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