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 공격

1878년 난파선 한 척이 미국 플로리다주 남동쪽 해안가로 떠밀려 왔다. 배에는 야자수 열매가 잔뜩 실려 있었다. 이 열매들이 해안가의 땅바닥에 닿아 자라면서 야자수가 우거졌다. 팜비치(Palm Beach)라는 도시의 이름은 바로 이 난파선의 야자수에서 따왔다. 1880년 ‘팜시티’로 불렸다가 1887년에 오늘날의 ‘팜비치’로 바뀌었다. 팜비치를 세계적인 휴양도시로 키운 인물은 헨리 M. 플래글러다. 곡물상 출신의 플래글러는 존 D. 록펠러와 함께 1872년 스탠더드오일을 공동 설립했다. 엑손모빌·콘티넨털오일 등의 전신이다. 플래글러는 휴양차 잠시 팜비치에 들렀다가 그곳의 풍광에 반해 도시개발에 나섰다. 최고 수준의 병원과 학교를 지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도’라는 플로리다 동해안 철도를 웨스트팜비치까지 연장했다. 이 철도는 전 세계 부자들을 팜비치로 끌어들이는 교두보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팜비치를 자주 찾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자기 집이 있기 때문이다. 집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궁전 리조트 단지다. 트럼프 소유의 회원 전용 호화 리조트다. 이 리조트의 이름이 바로 마러라고다. ‘마러라고(Mar-a-Lago)’라는 명칭은 ‘바다에서 호수까지’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마러라고는 1927년에 건설되었다. 미국 유명 시리얼 회사인 포스트사의 상속인 마저리 메리웨더의 휴양용 주택이었다. 메리워더는 1973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러라고를 미국 대통령들의 겨울 휴양지로 사용해 달라면서 정부에 기탁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은 플로리다 키 비스케인에 위치한 겨울 백악관 별장을 더 선호했다. 그 이후 지미 카터 대통령 역시 마러라고에 관심이 없어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이 50년이 넘은 노후된 리조트의 엄청난 유지보수비를 부담스럽게 여겼다. 그러다가 1981년 포스트재단에 사용권을 반납했다. 포스트재단은 2000만 달러에 매물로 내놨다. 사업가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1500만 달러에 인수를 제안했다. 포스트 가문은 헐값이라며 거절했다. 트럼프는 마러라고 집과 대서양 바다 사이의 땅을 KFC 소유주 잭 C. 매시로부터 200만 달러에 구매해 마러라고의 오션 뷰를 가로막는 집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우여곡절 끝에 1985년 트럼프는 700만 달러에 마러라고를 인수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후 마러라고 리조트를 겨울 별장이라고 이름 짓고 귀빈을 초청하기도 했다. 2019년 이후 도널드 트럼프 부부의 거주지로 사용해왔다. 트럼프가 재선에 패한 뒤에는 이곳을 거주지 겸 집무실로 사용했다. 지금은 '제2의 백악관'으로 불린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트럼프 타워가 위치한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에 거주해 왔으나 2016년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당이 장악한 뉴욕 주/시의회가 자신을 부당 대우한다면서 이곳으로 거주지를 아예 옮겨버렸다. 2022년 11월 12일 트럼프의 둘째 딸인 티파니 트럼프가 기업인 마이클 불로스와 이곳에서 결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끝내 관세 폭탄을 터뜨렸다. 트럼프 관세 폭탄으로 뉴욕 증시는 물론 달러환율, 국채금리, 금값, 국제유가 등이 흔들리고 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솔라나, 카르다노 등 암호 가상화폐 시세도 요동치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 경제의 기본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엄청난 폭탄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혁명적 조치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터지면서 미란 보고서가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관세 정책이 미란 보고서의 내용과 너무도 닮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미란 보고서가 시키는 대로 관세 정책을 펴나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한마디로 미란 보고서는 트럼프의 성경인 셈이다.
미란 보고서는 하버드대 출신 경제학자 스티븐 미란이 작성했다. 그는 지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트럼프가 발탁한 인물이다. 미란 보고서는 41쪽짜리 아주 짧은 논문이다. 원래 제목은 ‘글로벌 무역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다. 원래 제목은 온데간데없고 요즘에는 아예 미란 보고서로 불린다. 그 내용이 자못 도발적이다. 관세와 기타 정책을 결합해 새로운 무역체제를 도입하자는 구상을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하의 국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엎으려는 엄청난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에 수출하는 외국 기업들에 엄청난 관세 폭탄을 터뜨려야 한다는 주장이 미란 보고서의 핵심이다.
미란 보고서는 또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미국 달러화 가치를 약세로 몰고 가야 한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마러라고 구상' 또는 '마러라고 합의'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미국·일본·독일·영국 등 주요 선진국 정상들을 마러라고 리조트에 불러 국제 외환시장에서 환율을 통한 공동의 달러 약세에 강제로 합의하도록 종용한다는 것이 바로 마러라고 구상 또는 마러라고 합의의 핵심이다. 미란 보고서에 마러라고라는 표현은 없다. 달러 약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뉴욕 증시의 전문가들은 선진국 공동 개입으로 달러 약세를 실현한 1985년의 플라자 합의에 빗대 이번에는 트럼프가 그의 사저 별장이자 제2의 백악관에서 달러 약세 합의를 종용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마러라고 합의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미란 보고서에 따르면 달러 강세 때문에 미국 제조업이 무너졌다고 되어있다. 이 보고서는 달러 강세의 근본적인 이유를 달러 기축통화 제도에서 찾고 있다. 세계 각국이 지구촌의 유일한 리저브 통화인 달러를 보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달러 강세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세계 각국이 달러 리저브를 충분히 보유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역수지 흑자를 쌓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미국에는 필연적으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누적된다. 이런 쌍둥이 적자가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달러 가치가 급격히 붕괴하면서 달러 자산에 대한 수요마저 붕락하는 위기 상태가 올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트리핀 위기(the Triffin Crisis)다. “미란 보고서는 이 사태를 막기 위해 달러 가치가 적절하게 약세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란 보고서는 달러 기축통화 체제가 유지되려면 미국의 무역적자가 해소되어야 하고, 동시에 과도한 달러 강세는 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미란의 논문에는 그러나 달러 약세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없다. 1985년 플라자 합의 때 있었던 G5 중앙은행 및 재무장관 사이의 구체적인 협조 개입과 같은 내용도 포함돼 있지 않다. 뉴욕증시 전문가들은 플라자 합의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국제 연대를 통한 달러 약세 합의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관세 폭탄 다음에는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마러라고 환율 폭탄이 대기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