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일본영화가 잇달은 한국 흥행 성공에 고무되어 클래식 영화가 빛을 발한다. 50년대 일본 영화사의 삼거장으로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 1903~1963),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감독이 꼽힌다. 그 가운데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안녕하세요'(お早よう, 1959, 94분)가 개봉되었다. ‘일본 영화의 잔잔한 이야기꾼’이라고 평가받는 오즈 감독은 ‘안녕하세요'를 통해 인간관계와 소통의 본질, 현대 사회와 가족 관계를 담론으로 설정한다.
'안녕하세요'는 서민들이 살아가면서 벌이는 오해와 화해의 과정을 섬세하게 다룬다. 사소한 일상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갈등 증폭을 예리하게 묘사한다. 세대 간의 대화와 침묵이 가져오는 거리감과 소통도 부각된다. 오즈 감독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인간 본연의 관계와 사회적 맥락을 환기한다. 미노루와 이사무 형제는 부모에게 TV를 사달라고 조르지만 거절당한다. 이후, 학교에서 선생님은 물론 모든 사람과의 대화를 단절하는 ‘침묵 시위’를 벌인다.
오즈는 '안녕하세요'에서조차 정적이고 섬세한 화면구성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견지한다. 오즈 특유의 낮은 카메라 앵글과 움직임이 거의 없는 정적 구성은 일상의 순간을 관찰자의 시선에서 포착한다. 급변하는 일본 사회의 균열에서 인간성의 결합으로 웃음을 유발하며 아이들의 순수한 반항과 어른들의 소소한 인간적 놀이로 삶의 유머와 따뜻함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오즈의 정교한 연출 방식 안에 사회적 변화와 소통의 문제가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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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고레에다 감독의 말처럼 오즈의 영화는 정적인 잔잔함 속에 역동적 감정이 흐른다. 올망졸망한 도쿄 변두리 마을에서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 속에 '안녕하세요'는 “이제 말 안 할 거예요”라는 선언과 함께 시작된 두 형제의 침묵이 말 많은 어른들의 세상을 전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침묵시위는 더없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펼쳐진다. 말은 많지만, 가짜 소통에 대한 저항으로 침묵의 어린이들이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음을 몸의 움직임으로 가시화한다.
오즈의 냉소적 시선, TV는 새로운 ‘가족’이 되어 가족을 한 방향으로 앉게 만들고 대화를 줄이고 공동체의 중심을 화면으로 이동시킨다. 어른들은 TV를 경시하면서도 쉽게 TV에 경사된다. 문명화는 아이들의 욕망보다 어른들이 더 취약하다. TV는 전통적 사회 질서를 해체하는 조용한 침입자이다. 공동체의 불안정성은 아이들의 침묵이 낳은 소문과 오해의 구조로서 공동체는 형식적인 언어로만 유지되는 집합체다. 침묵은 이미 존재하던 균열을 드러내었을 뿐이다.
오즈는 후기작에서 코미디를 선택한다. '안녕하세요'는 웃음과 회복으로 끝난다. 비극조차 일어나지 않는 세상은 무의미한 말로 살아갈 뿐이다. 코미디야말로 시대의 공허함을 정확히 드러내는 형식이다. '안녕하세요'는 언어, 근대성,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정밀한 사회 고발작이다. 이 영화 속에는 어느 누구도 악하지 않다. 모두 예의 바르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이지만, 아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즈는 진심으로 서로가 안부를 묻는지를 질문한다.
'안녕하세요'는 오즈 야스지로가 가장 조용하게 수행한 정치적 영화에 가깝다. 겉으로는 무해한 코미디 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권력, 규율, 순응에 대한 날카로운 우화로 보인다. 아이들은 체제의 외부자로서 정치적 주체자이며, 침묵으로 체제를 멈추고 무력화 한다. 교육은 순응하는 시민을 길러내는 정치적 훈련이다. 공동체는 말과 체면으로 겨우 유지되는 구조물이다. TV를 원하는 아이들의 욕망은 단지 다른 세상과 연결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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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TV가 들어오자 침묵은 끝나고 일상은 회복된다. 아이들은 틀렸다고 벌을 받지 않는다. 침묵은 범죄가 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혁명을 그리지 않았지만 저항이 가능했음을 기록한다. 오즈의 가장 온건한 급진적 '안녕하세요'는 아이들을 통해 폭력과 선언 없이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오즈는 순간 멈춤을 통해 미시 권력의 해부도처럼이 사회가 흔들릴 정도로 안정적임을 밝혀낸다. 가장 조용하고도 정치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오즈의 '안녕하세요'는 공동체와 일상을 통해 인간 본연의 관계와 사회적 맥락을 환기시킨다. 오즈는 주택가 안에서 권력을 작동시킨다. 아이들이 말하게 되는 순간, 규율의 장이 돌아온다. TV는 바로 규율 시스템에 흡수되고, 체제는 무너지지 않는다. 더 세련되어진다. 규율은 흔들렸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규율 권력은 아이들을 인정하고 비폭력으로 조용히 재가동된다. 권력은 거창하지 않다. 진정한 인사 한마디, 침묵 하나, 이웃의 시선 속에 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