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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오월의 숲에서 들리는 은종소리-때죽나무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기사입력 : 2018-05-3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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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올봄에는 유난히 맑은 하늘을 보기가 영 쉽지 않다. 미세먼지 때문이다. 일 년 중 햇살이 가장 아름다운 달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자욱한 미세먼지와 함께 오월이 저물어간다. 어느새 담장을 타고 오른 선홍빛 넝쿨장미가 눈을 찔러 오고 한낮의 햇살 아래 서 있으면 금세 등줄기로 땀이 흐를 만큼 철 이른 더위가 나무 그늘로 우리의 등을 떠민다.

이즈음 숲에 들면 유난히 순백의 꽃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중에도 넓게 퍼진 새 가지마다 긴 꽃자루에 대롱대롱 매달린 순백의 꽃들을 가득 달고 있는 때죽나무의 눈부신 자태는 단숨에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들바람이 지날 때마다 꽃들이 은종처럼 흔들리며 종소리 대신 허공에 풀어놓는 향기는 연한 레몬향처럼 코를 벌름이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때죽나무 꽃에는 꿀도 많아 벌들의 날갯짓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때죽나무는 때죽나무과에 속하는 잎이 지는 소교목으로 4~10m까지 자란다. 꽃이 피기 전엔 평범해 보이는 나무지만 5월이 되어 순백의 꽃과 함께 두각을 나타낸다. 층층나무처럼 층이 진 가지마다 마치 은종을 매달아 놓은 듯 수많은 흰 꽃이 다소곳이 아래를 향해 일제히 피어나면 눈이 부실 지경이다. 때죽나무란 독특한 이름에 대해 설이 분분하지만 그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과피에 독성이 있어 이를 빻아 물에 풀면 물고기가 떼로 죽는다 하여 떼죽나무로 불리다가 때죽나무가 되었다는 설과 열매를 짓찧은 물에 빨래를 하면 때가 쭉 빠져서 때죽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봐선 열매와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종을 닮은 예쁜 꽃 모양을 잘 묘사한 스노벨(Snowbell)이란 영어 이름이 더 마음에 든다.

때죽나무의 꽃은 5월에 새로 난 가지 끝에 총상화서로 4~6개가 대롱대롱 매달려 핀다. 합판화이지만 5개 꽃잎이 깊게 갈라져 있어 얼핏 보면 5장의 꽃잎처럼 보인다. 꽃 속엔 10개의 수술과 노란 꽃밥이 매력적이다. 이 때죽나무 꽃향기 속엔 안식향이 배출되어 나무 밑에서면 인후통, 치통, 풍습이 사라지며 머리가 맑아진다. 때죽나무와 비슷한 꽃을 피우는 나무로 쪽동백나무가 있는데 스무 송이 정도의 꽃들이 한데 모여서 꽃차례를 이루며 오동잎처럼 큼직하고 둥근 이파리가 다르다.

꽃이 진 뒤엔 도토리와 비슷한 열매가 가득 달리는데 때죽나무의 어린 열매껍질 속엔 에고사포닌이라는 독성물질이 들어 있다. 옛날부터 이 성분을 이용하여 기름때를 없애는 세제로 이용하거나 덜 익은 열매를 찧어 물에 풀어 물고기를 잡기도 하였다. 목재의 질이 견고하여 장기 알이나 지팡이 등 여러 목제품의 재료로 쓰인다.

최근에는 가까운 공원이나 정원에서도 어렵지 않게 때죽나무를 만날 수 있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때죽나무가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공해에 강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도심의 나무들이 산성비와 대기 오염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는 중에도 때죽나무 만큼은 꿋꿋하게 어린 나무들을 키워낸다. 뿐만 아니라 내한성과 산성토양에도 강하고 꽃과 열매, 잎까지 아름다워 공원이나 가정의 소규모 정원에도 잘 어울리는 우리나무다. 요즘은 분홍색 꽃을 피우거나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원예종도 많이 개발되어 보급되는 추세다.

살다 보면 종종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원대한 꿈을 품었다가도 현실의 삶이 버거워 꿈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때죽나무를 생각한다. 하늘 가득 황사가 몰려와도,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는 미세먼지에도 굴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꽃송이를 가득 피워 달고 오월의 숲속으로 은은한 향기를 풀어 놓는 그 꿋꿋함을 떠올린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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