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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목련의 전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기사입력 : 2018-04-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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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벌써 백목련이 지고 있다.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순결함으로 우리의 눈을 부시게 하던 백목련이 지는 모습은 짧은 봄날을 더욱 서럽게 만든다. 순결의 상징 같은 하얀 꽃잎이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커피색으로 시들어가는 백목련 꽃잎을 보면 인생무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필 때나 질 때나 그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은 작은 들꽃에게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가장 눈부시게 피어난 꽃이라서 지는 모습이 참혹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는 모습이 지저분하다는 것은 피어날 때 그만큼 아름답고 눈부셨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바람도 없는데 꽃잎을 지상으로 내려놓는 백목련 꽃나무 아래를 서성이면서 꽃의 시간을 생각해 본다.

목련은 목련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보통 키가 10m 정도로 크는 봄을 대표하는 꽃이다. 꽃 모양이 연꽃을 닮아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는 뜻으로 목련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외에도 겨울눈이 붓을 닮아 나무 붓이라는 뜻의 목필화(木筆花), 봄을 맞이한다는 뜻에서 영춘화(迎春花)로도 불린다. 많은 꽃들이 해를 향해 피어나지만 목련이 꽃필 무렵 눈여겨보면 꽃봉오리들이 북쪽을 향해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옛사람들은 늘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피어나는 꽃이라 하여 북향화(北向花)로 부르며 충절의 꽃으로 귀히 여겼다. 목련이 북쪽을 향해 피는 까닭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목련의 꽃눈이 워낙 크다 보니 남쪽과 북쪽의 일조량이 달라져서 성장속도가 다르다보니 더 많이 자란 남쪽에서 북쪽으로 휘어지게 된 것이다.

‘북향화’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한 나라에 공주가 살았는데 차가운 북쪽바다를 지키는 해신을 연모하게 되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주는 궁을 빠져나와 무작정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힘들고 고된 나날이 이어졌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일념으로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해신이 있는 북쪽 바다에 도착했다. 그러나 해신은 이미 결혼하여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공주는 평생의 꿈이 물거품이 되자 절망하여 차가운 북쪽 바다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바다의 신은 공주의 애달픈 죽음을 애통해 하며 그녀를 바다가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 묻어주었다. 그날 밤 해신은 공주 문제로 아내와 부부 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해신은 공주와 무관함을 주장했으나 아내는 믿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심한 몸싸움을 하다가 해신이 아내를 숨지게 하였다. 훗날 공주와 해신의 아내를 불쌍하게 여긴 신이 공주를 백목련으로, 해신의 아내는 자목련으로 환생시켜 주었다는 이야기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35종의 목련 종류가 있다고 한다. 백악기의 지층에서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는 목련은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고대식물에 속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에 분포하며 습기가 적당하고 비옥한 땅을 좋아하며,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꽃을 잘 피우지 않는다. 꽃봉오리는 신이(辛夷)라고 해 약 2000년 전부터 한약재로 사용해왔다. 꽃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에 따서 그늘에 말렸다가 고혈압, 두통이나 축농증, 비염 등의 치료에 썼으며 특히 비염에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련꽃은 차로 마시기도 하는데 따뜻하고 매운맛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여름철 찬 음식으로 불편해진 속을 다스리는데 좋다. 여름 장마철에 목련 장작으로 불을 때면 집안에 나쁜 냄새가 없어지고 습기를 잡을 수 있다. 목재로서도 조직이 치밀하고 재질이 연해서 상이나 칠기를 만드는 등 목공예 재료로 많이 쓰인다.

모든 꽃들이 그러하듯 목련은 말없이 피었다 소리 없이 진다. 처음부터 사람들의 시선쯤은 관심도 없다. 다만 제 안의 생체시계가 짚어주는 시간에 맞춰 꽃 피우고 질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쁜 꽃에 환호하고 나무 그늘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가 지닌 특징들을 눈여겨보는 착한 호기심이 자연의 품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끝으로 ‘뉴 에이지 저널’ 편집장이었던 조안 던컨 올리버의 시 한 구절을 지는 목련 꽃잎 위에 적어본다.

“나는 내 아이에게/나무를 껴안고 동물과 대화하는 법을/먼저 가르치리라. //숫자 계산이나 맞춤법보다는/첫 목련의 기쁨과 나비의 이름들을/먼저 가르치리라.”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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