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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가지) 寶(석)로 만든 나비 보셨나요?

보석 나비 12마리 여의도에서 훨훨 납니다


칠보는 금속, 유약, 불의 삼박자가 만드는 ‘불의 예술’

“예술성과 대중성으로 세계에 한국의 칠보 알리겠다”


▲ 칠보작가 박수경 금하칠보 대표. 사진=홍정수 기자

■ 인터뷰-칠보작가 박수경 금하칠보 대표


금, 은, 구리, 유리, 점토 등의 바탕 위에 유약을 올려 약 800℃의 불에 구워내는 공예, 칠보(七寶). 금속과 유약과 불의 삼박자가 만드는 불의 예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반들이 노리개, 가락지, 비녀와 같은 장신구에 주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칠보를 활용해 장신구뿐만 아니라 다용도 꽂이, 동(銅)화병, 나비탁상시계, 칠보약함, 나비촛대, 은액자, 필함, 실크스카프, 꽃 원목 보석함, 연필꽂이, 화장대, 나비 머릿장, 화동 경대, 은수저, 디저트 접시, 구절판, 찻잔세트, 유리냄비, 나비브로치, 훈민정음 보타이, 트로피, 상패 등 일상 생활용품과 문화상품을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

예술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칠보공예를 3대째 만들고 있는 작가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칠보작가 박수경 금하칠보 대표(40)다. 금(金)이 물(河)처럼 흘러서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최고의 기업으로 기억되길 꿈꾸는 금하칠보에서 박수경 대표를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칠보란 무엇입니까?


“칠보는 말 그대로, 일곱 가지 보석을 뜻하지요. 어원은 불교에서 말하는 7가지 진귀한 보배(금·은·청옥·마노·수정·호박·진주)를 일컫는 말로써 칠보공예는 보석과 사람과 자연과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도자기가 흙과 불이 만나는 예술이라면, 칠보는 흙 대신 금속에 색상을 입혀 불에 구워 완성하는 예술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불이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전혀 예상 못하는 디자인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용재료 자체가 금·은·동이 가장 기본을 이루고 있어 대중화되기는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지요.”

-칠보의 기원은 어떻게 되는지요?


“전통공예인 칠보는 삼국시대 무덤 안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원래 칠보는 기원전 3세기 경 이집트에서 발생해 기독교 문화를 타고 서양으로 전해졌고, 불교 문화를 타고 동양으로 전파되었어요. 무엇보다 비잔틴 문화에서 칠보가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웠는데,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금속칠보로 갑옷이나 팔찌 등에 멋을 내는 귀족예술이었어요. 한국에서는 1970~80년대에 집집마다 주전부리 그릇으로 칠보를 사용하거나 기업에서 은그릇에 칠보를 예쁘게 입히는 등 대단히 유행했어요.”
말하자면 칠보는 역사적으로 볼 때 중상위층의 귀족예술이었다. 7가지 보석이라는 말처럼 재료 자체가 결코 싸지 않기 때문에 대중화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비녀, 노리개, 쌍가락지 등 화려한 장신구를 만드는데 그쳤다. 그러나 박수경 대표는 귀족예술 칠보를 대중화하기 위해 재료의 가격을 낮추고 제작공정을 최대한 간편하게 만들어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명함집, 데스크 용품, 볼마크, 상패, 인주함 등을 만든 것도 칠보공예를 대중화하기 위한 작품들이다. 이와 함께 도자기와 칠보를 결합한 칠보도자기, 섬유와 칠보를 결합한 칠보섬유, 자개와 칠보를 결합한 칠보자개 등을 만들어, 고부가가치를 지닌 칠보를 산업화 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칠보가 들어가면 일단 값이 상승해요.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하는데다가 유약을 발라 불에 구워내는 작업이어서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예전에는 대량생산 하지 않으면 단가(單價)가 맞지 않아 기업에 납품조차 할 수 없었지만, 요즘에는 하나밖에 없는 제품이라 더 각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칠보의 제작 공정을 소개해주시죠?

“칠보의 제작공정은 기법(알갱이기법과 긁어내기기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칠보작품 용도 및 디자인구상→금속 프레임 처리(유산에 희석 처리한 후 세척하고 열처리)→유약 물 세척→금속 바탕재료(소지) 세척→프레임 뒷면 유약 올리기→실온건조→프레임 앞면 필요한 유약으로 디자인→실온건조→소성→마무리 과정을 거칩니다.”

원래는 유약 만들기가 칠보공예의 시작이지만, 요즘에는 유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디자인 구상으로부터 제작공정이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바탕재료로 금‧은‧동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를 고른다. 금은 순도가 높은 24K, 은은 순도 99%가 나올 때 아름다운 칠보공예가 나오며, 동은 붉은색을 띤 적동을 주로 사용한다. 대부분 가격이 저렴한 동판을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칠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있다면?


“외삼촌인 김이두 선생이 한국 최초 칠보 기업인 ‘금하 칠보’를 창립했고, 어머니인 김선경 금하칠보 대표가 그 뒤를 이었고, 제가 그 맥을 잇고 있지요.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미국에서 체류 하던 중 한국인은 붉은 티셔츠를 입고 열광하는데 반해 미국인은 월드컵이 그저 스포츠 경기 중 하나라며 반응이 없었어요. 그때 월드컵을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 귀국하면서 한국 문화를 미국에 침투시켜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저는 일주일만에 칠보 작품 완성도가 높은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당시 일본에서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칠보도 뛰어난데다가 가격도 제대로 받고 있었고, 중국은 관광상품으로 대량 뿌려지고 있었어요. 일본에서 칠보의 권위자인 하세가와 요시코 상에게 ‘한국에서 3대째 칠보를 하고 있으니 무조건 도와달라’고 떼를 썼지요. 저의 열정에 감동하신 나머지 그분은 일부러 친구들과 관광패키지로 한국에 와서 세미나를 열어주셨어요. 칠보에 큰 관심이 없었던 저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칠보의 세계에 뛰어들었고, 칠보의 산업화와 세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어요.”

중국(China)은 소문자로 쓰면 도자기(china)가 되고, 일본(Japan)은 소문자로 쓰면 옻칠(japan)이 된다. 그런데 한국(Korea)은 소문자로 쓰면 고려(korea)가 될 뿐 뚜렷한 전통문화와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박 대표는 소문자 코리아가 칠보와 동의어가 되도록 하는 게 꿈이다.

9월 30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 설치될

파이프 오르간 블루오르겔에 칠보나비 들어가

-오는 9월 30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 설치될 파이프 오르간 블루오르겔에 칠보나비 12마리가 들어간다는데….


“칠보나비는 12마리의 다채로운 색으로 꾸며집니다. 그리스 신화와 성경, 1년 12달, 오전‧오후 12시간, 한 옥타브가 12개의 반음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건반이 있고, 우리 문화 속에는 십이지신상이 있는 등 12라는 숫자는 특별해요. 이처럼 12는 완전함을 넘어서 종교적 의미로 까지 해석되고 있으며, 나비는 자유로움과 사랑, 희망을 상징하지요. 서로 다른 모습의 12마리의 나비가 아름다운 선율을 따라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희망하는 작품이지요. 따라서 블루오르겔은 하나의 아름다움이 아닌 마음과 정신이 담긴 영혼의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악보가 놓이는 보면대는 파란 느낌을 시원하게 표현하고, 나비는 파란 나비, 노란 나비, 빨간 나비 등 예쁜 칠보의 12가지 색깔을 다보여줄 작정입니다.”

-칠보가 전통공예에서 문화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한국에서 만드는 유약은 한국의 색이 분명히 있고, 미국에서는 미국의 색이, 일본에서는 일본의 색이, 중국에서는 중국의 색이 있어요. 금하칠보는 유약은 물론, 재료와 가마를 공급하고, 칠보를 보다 대중화시키기 위해 집중교육도 함께 합니다. 특히 칠보는 수공예 작업을 통해 다양한 기법과 색상의 조화로 인한 독창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동시에 불에 의해 탄생되는 작업과정은 우연성과 독특성을 지닌 희소적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문화산업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플로리다 ELI대에서 공부한 것으로 아는데, 외국에서의 경험을 하고 난 후 칠보공예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았는지요?


“어릴 때부터 칠보를 늘 봐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음에 끌리지 않았어요. 외국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후 칠보를 대하면서 일상생활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장식용 칠보가 너무 안타까웠지요. 칠보가 예쁘기는 한데 사용할 수 없는 거예요. 칠보로 단장한 노리개는 몸에 지닐 수 없어 외출할 때는 집에 모셔놓아야 하고, 쌍가락지는 너무 답답해 손가락에 낄 수 없는 등 실용적이지 못했지요. 그래서 저는 칠보의 예술성에다가 실용성을 가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대중화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박 대표는 2005년도에 대학원에 진학, 제대로 된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통해 디자인은 모양이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가르치는 교육생에게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오방색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칠보로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를 가르친다고 한다. 국민대 박사과정에서 칠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도 한번쯤 칠보를 객관화시킨 채 한층 성숙된 칠보예술을 펼쳐가기 위해서다.



-칠보공예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다양한 색을 내는 유약이에요. 색상은 200여 가지가 개발돼 있어요. 세부적으로 따지면 연한 빨강, 중간 빨강 등 약간씩 변화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유약은 다른 업체에서도 만들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옛날 유약을 지금까지 사용하는 입장인데, 저는 시대에 맞게 색에도 변화를 주고 싶어요. 사단법인 한국칠보공예협회의 구호가 ‘미래의 전통을 창조하자(Creating Future Traditions!)’인 것도 한국의 전통을 기반으로 미래의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내자는 그런 의미입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외국에서 동양인을 만나면, 첫 마디가 일본인인지를 묻고, 두 번째는 중국인인지를 묻고, 세 번째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물어요. 전 그때마다 큰 충격을 받았어요. 세 번째도 서러울 판에 대부분의 외국인은 아예 한국을 모르고 있는 것이예요. 그래서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칠보를 통해 한국을 알리는 작업이지요. 칠보가 지상에 있는 아름답고 진귀한 보석을 뜻하는 것처럼 우리나라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진귀한 보석 같은 나라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



박수경 작가는 어머니(김선경 여사)와 금하칠보 공동대표로 취임한 후 칠보의 대중화와 고급화라는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래의 전통을 창조하는 기업’, ‘칠보교육과 칠보상품의 대중화’, ‘칠보의 세계화’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으며, 지난 2011년 상해에 금하칠보 단독 샵을 오픈하기도 했다. 오는 10월 상하이에서 한‧일 칠보작가의 전시회를 기획한 것도 칠보의 세계화를 위한 박 대표의 전략 가운데 하나다. 한국이 주체가 되어 동양의 칠보문화를 세계화시키겠다는 박수경 대표의 꿈이 한걸음 한걸음 실현되기를 기원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노정용 기자/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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