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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어 EU도 '메이드인EU' 칼날…K배터리·철강 초비상

철강 무관세 쿼터 46% 싹둑, 7월부터 관세 50% 직격
전기차 부품 70% 'EU산' 의무화…현대차·K배터리 비상등
EU는 새 철강 수입관리제도를 7월 1일 시행되면서, 30개 품목에 적용하던 무관세 수입 쿼터가 기존 3382만톤에서 1835만톤으로 46%가량 줄어든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EU는 새 철강 수입관리제도를 7월 1일 시행되면서, 30개 품목에 적용하던 무관세 수입 쿼터가 기존 3382만톤에서 1835만톤으로 46%가량 줄어든다. 사진=연합뉴스

유럽이 그어 놓은 '메이드 인 EU' 선이 한국 철강·배터리·자동차 업계의 다음 행보를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4일(현지시각) 역내 제조업 비중을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0%로 끌어올리겠다며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IAA) 제정안을 내놓았다.

싱크탱크 브뤼겔(Bruegel)이 지난 17일(현지시각) 수정한 정책보고서는 산업가속화법안이 해마다 수백억유로 규모 보조금과 공공조달 예산에 조건을 붙이는 만큼 파급력이 크다고 분석했다.
법안은 지금 유럽의회와 이사회 심의 단계에 있어 최종 조문은 달라질 수 있다.

공공조달·보조금에 '저탄소·역내산' 조건


브뤼겔 보고서를 보면 법안은 크게 네 갈래로 짜였다. 정부 조달과 보조금 지급 때 '유럽연합 원산지'나 이에 준하는 제품에 우선권을 주고, 2029년까지 철강·알루미늄 조달 물량의 25%, 콘크리트의 5%를 저탄소 제품으로 채우도록 했다.

재생에너지 경매에서는 비가격 기준 적용 비율을 기존 30%에서 40%로 올리되, 연간 8기가와트(GW)를 넘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적용하도록 상한을 뒀다.

전기차는 배터리와 비(非)배터리 부품의 70%를 EU산이거나 동등 인정 제품으로 채우거나, 배터리 핵심부품 3개를 EU 안에서 생산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만 충족해도 보조금 우대(슈퍼크레딧)를 받는다.

외국인직접투자(FDI)에도 제동이 걸렸다. 단일 국가가 세계 생산 능력의 40%를 넘는 분야에서 1억유로(약 1757억원) 이상을 투자하면 유럽 인력 50% 이상 고용이나 자산수익의 1% 연구개발(R&D) 투입 등 6개 조건 가운데 4개를 충족해야 한다.

이 기준에 실제로 걸리는 나라는 배터리·태양광·일부 핵심광물에서 사실상 중국 한 곳뿐이라고 브뤼겔은 분석했다.

韓 배터리·자동차엔 '양날의 검'


한국에는 유리한 대목과 부담스러운 대목이 함께 있다. 법률계의 통상법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자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가입국이어서, 별도 지정 절차 없이 한국산 철강·자동차·배터리 부품이 EU 원산지와 동등하게 인정된다.
앞서 유출된 초안에 있던 '신뢰 파트너' 별도 지정 방식보다 한국에 유리한 쪽으로 바뀐 셈이다. 다만 전기차 배터리의 EU 원산지 요건은 법 시행 3년 뒤부터 적용돼 유예기간을 둔 점, 집행위가 위임입법으로 동등 인정 대상국을 배제할 권한을 쥔 점은 계속 지켜봐야 할 변수로 꼽힌다.

배터리 업계는 이미 유럽 현지 생산을 늘려둔 만큼 직접 타격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SDI는 2017년 헝가리 괴드에, LG에너지솔루션은 같은 해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공장을 지었고 SK온도 헝가리에 공장 3곳을 운영하고 있다.

브뤼겔 보고서는 올해 1분기 기준 EU 역내 가동 중인 배터리 셀 생산능력의 4분의 3 이상을 한국기업이 차지하고 있다고 집계했다.

자동차 업계는 결이 다르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 3월 5일 산업통상부가 자동차·철강·배터리 업계를 불러 연 간담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에 포함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EU 역내 조립 조건을 더 완화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산업통상부는 업계 의견을 모아 벨기에에서 열리는 한·EU 신통상 과장급 회의에서 우리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철강은 산업가속화법 너머 '쿼터 절벽'까지


철강 업계는 산업가속화법과 별도로 더 급한 불을 마주하고 있다. EU가 2018년부터 운영해 온 세이프가드를 대체하는 새 철강 수입관리제도가 7월 1일 시행되면서, 30개 품목에 적용하던 무관세 수입 쿼터가 기존 3382만톤에서 1835만톤으로 46%가량 줄어든다.

쿼터를 넘는 물량에는 50% 관세가 매겨진다. EU는 한국의 두 번째 철강 수출 시장이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한국철강협회와 주요 철강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수출과 투자, 고용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쿼터 협상에 가용한 채널을 모두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국가별 무관세 쿼터 배정은 EU 전체 평균치와 별개로 진행되는 협상이다. 한국은 그동안 연간 285만톤 규모의 국가별 쿼터를 배정받아 자동차·조선·기계·에너지 등 유럽 공급망에 철강재를 공급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만나 한국산 철강에 우호적인 쿼터 배정을 요청했고, EU 측은 이를 최대한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철강 쿼터 협상 기간 브뤼셀을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가 한국"이라며 "여타국 대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가별 최종 쿼터는 이르면 다음달 말 공개될 예정이어서, 46% 축소라는 EU 전체 평균치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발효까지 최소 2년…'위임입법 변수'가 진짜 리스크


브뤼겔 보고서는 산업가속화법의 제조업 비중 20% 목표는 경제적 근거가 약하고, 원산지 기준 조달 규정은 세계무역기구 제소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며, 기존 탄소중립산업법(NZIA)의 지속가능성·회복력 기준으로 대체하라고 제안했다.

법안은 유럽의회와 이사회 협상을 더 거쳐야 해 최종 발효까지는 2027년 중반 이후로 예상된다는 게 현지 법률 자문기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EU 내부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독일에서는 보호무역 회귀가 교역 상대국의 보복을 부를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반면, 프랑스는 미국과 중국이 이미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선 만큼 EU도 비슷한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유럽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보쉬·셰플러 등 부품업체들은 법안을 지지하지만, 완성차업체는 공급망 훼손과 비용 상승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사이 위임입법으로 동등 인정 대상국이나 저탄소 세부 기준이 바뀔 가능성이 남아 있어, 국내 철강·배터리·자동차 업계와 산업통상부의 모니터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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