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60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선술집 골목은 온 동네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내로라하는 대지주와 거상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빵집 주인, 대장장이, 심지어 하녀들까지 저마다 쌈짓돈을 들고 줄을 섰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대양 너머 신대륙으로 떠날 범선에 투자할 사람들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당시 목숨을 걸고 거친 바다를 건너 후추와 계피 같은 향신료를 한 가득 싣고 돌아오면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 가능했다. 문제는 사고였다. 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하거나 해적을 만나면 전 재산을 날리는 무시무시한 도박이었다. 동인도회사는 아주 기발한 묘수를 냈다. 배 한 척의 위험을 한 사람이 다 지지 말고, 수많은 사람이 조금씩 돈을 보태어 위험을 나누자는 것이었다. 그 대가로 종이 한 장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주식'이었다. 평범한 대중의 푼돈까지 싹 쓸어 모은 자본의 힘은 거대했다. 이 자본을 먹고 자란 범선들은 바다의 경계를 넓히며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이 1602년 암스테르담 골목길의 풍경을 뉴욕 증시와 실리콘밸리에서 똑같이 목격하고 있다. 다만 바다를 건너던 범선이 하늘을 뚫고 날아가는 '우주 로켓'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를 필두로 한 '우주 비즈니스'는 더 이상 영화 속 공상과학이나 국가 기관의 안보 과제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지갑 전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가장 뜨거운 상업적 전쟁터이자, 이른바 '우주 자본주의'와 '궤도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돈의 질서다.많은 사람이 "우주 비즈니스"라고 하면 화성에 이주하거나 달에 기지를 짓는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기 일쑤다. 하지만 우주 경제는 이미 우리의 매달 나가는 통신비와 소비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일론 머스크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Starlink)'다.
기존의 인터넷은 땅속에 광케이블을 묻고 동네마다 기지국을 세워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보니 산간오지나 바다 한가운데, 비행기 안에서는 인터넷이 뚝뚝 끊기거나 아예 터지지 않았다. 스타링크는 이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해결했다. 땅에 기지국을 세우는 대신, 지구에서 아주 가까운 저궤도(고도 300~500km)에 수만 개의 소형 위성을 촘촘하게 띄워 하늘에서 인터넷 신호를 쏴주는 방식이다.
이게 왜 돈이 되는 비즈니스일까. 당장 먼바다를 항해하는 거대한 화물선이나 크루즈선, 오지를 달리는 캠핑카, 전 세계를 누비는 항공사들이 가장 먼저 스타링크의 단골 고객이 되었다. 과거에는 배 위에서 무선 인터넷을 쓰려면 한 달에 수백만 원을 내고도 거북이 속도를 감지덕지해야 했으나, 이제는 단돈 10만~20만 원대에 안방 안 부러운 초고속 인터넷을 즐긴다. 심지어 전쟁으로 통신망이 완전히 파괴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도 이 스타링크 덕분에 드론을 날리고 작전을 지시할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자동차와 도심 위를 날아다니는 플라잉 카(UAM)가 안전하게 움직이려면 단 0.1초의 끊김도 없는 완벽한 통신망이 필수적이다. 깊은 터널 속이든, 시골 산길이든 상관없이 하늘에서 직통으로 연결되는 우주 통신망이 없다면 미래 기술은 작동할 수 없다. 1602년의 동인도회사가 향신료 무역로를 독점해 막대한 부를 쌓았듯이, 지금의 우주 기업들은 전 세계 모든 데이터가 오가는 '우주 고속도로'를 깔고 통행세를 받을 준비를 마친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전력'과 '열'이다. 챗GPT 같은 초거대 AI를 24시간 가동하는 데이터센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기를 잡아먹는 '하마'다. 게다가 수만 대의 컴퓨터가 동시에 돌아가다 보니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 이 열을 식히기 위해 에어컨을 틀고 엄청난 양의 냉각수를 들이붓느라 기업들은 매달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오죽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데이터센터 옆에 멈춰 섰던 원자력 발전소까지 다시 돌리겠다고 선언했겠는가. 궤도 경제학은 이 골치 아픈 문제를 지구 밖에서 해결하려는 아주 기발한 대안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바로 컴퓨터를 우주 공간에 띄워버리는 '우주 데이터센터'다. 우주 공간은 기본적으로 온도가 영하 270도에 달하는 천연의 초대형 냉동고다. 뜨겁게 달아오른 데이터센터 장비를 식히기 위해 비싼 에어컨을 틀 필요가 전혀 없다. 그냥 우주 공간에 내놓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열이 식는다. 게다가 우주에는 구름도 없고 대기도 없어서 태양빛이 지상보다 훨씬 강력하다. 24시간 내내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무한한 태양광 에너지를 공짜로 모아서 컴퓨터를 돌릴 수 있다.
지상에서는 땅값 비싸고, 전기세 많이 나오고, 환경 규제 때문에 지을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빅테크 기업들이 이제는 데이터센터를 저궤도 위성 위로 올려 보내기 위해 지갑을 열고 있다. 땅 위에서 벌이던 부동산과 인프라 싸움이 하늘 위 공간 선점 싸움으로 바뀐 것이다. 영리한 월스트리트의 자본은 이미 이 우주 데이터센터와 우주 태양광 발전 장비를 만드는 핵심 기술 기업들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우리가 매일 쓰는 스마트폰, 전기차 배터리, 컴퓨터 반도체를 만들려면 리튬, 코발트, 니켈, 그리고 희토류 같은 핵심 광물이 꼭 필요하다. 지구에 묻힌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도 특정 국가들이 독점하고 있어서 조금만 지정학적 위기가 터져도 원자재 가격이 춤을 춘다. 석유를 쥔 OPEC 국가들이 공급을 줄이면 전 세계 주유소 기름값이 치솟는 것처럼 말이다. 우주 자본주의의 핵심은 바로 지구 밖 하늘에 떠다니는 소행성에서 이 귀한 자원들을 캐오는 '우주 광업(Space Mining)'이다.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돌덩어리인 소행성 중에는 지구 전체에 묻힌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백금, 금, 니켈이 통째로 매장된 것들이 널려 있다. 예를 들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정밀 탐사 중인 '16프시케'라는 소행성 하나에만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나누어 가져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자원이 들어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그 먼 곳까지 가서 자원을 어떻게 가져오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코방귀를 꼈으나 스페이스X 덕분에 로켓을 한 번 쏘아 올리는 비용이 100분의 1로 줄어들면서 이야기가 180도 달라졌다. 로봇을 보내 소행성에서 필요한 광물을 채굴하고, 이를 지구로 안전하게 떨어뜨리는 기술이 상업화 궤도에 진입했다.
우주에서 백금과 희귀 광물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자원을 무기 삼아 큰소리치던 국가들의 권력은 하루아침에 추락할 것이고, 반대로 우주 자본을 선점한 기업들이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화폐 가치가 떨어질 때 내 재산을 지켜주던 마지막 보루인 금(Gold)의 몸값마저 우주 공급량에 따라 요동칠 수 있다는 뜻이다. 돈의 질서가 뿌리째 흔들리는 대격변이 멀지 않았다. 우주 경제의 팽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떻게 내 소중한 자산을 지키고 불릴 수 있을까.
대항해 시대에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돈을 번 사람은 미지의 바다로 떠난 개별 범선이 아니라, 그 배들이 무조건 거쳐 가야 했던 '항구'와 '조선소'를 쥔 사람들이었다. 우주 재테크도 마찬가지다. 아직 어떤 우주 기업이 끝까지 살아남을지 모를 때는, 우주로 가기 위해 무조건 거쳐 가야 하는 관문 기업의 주주가 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로켓을 가장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쏘아 올리는 글로벌 탑티어 발사체 기업이나, 전 세계 우주 통신망을 독점하고 있는 스타링크의 지분을 간접적으로 보유한 지주회사, 또는 우주 관련 핵심 기업들을 한 바구니에 담아놓은 상장지수펀드(ETF)에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전략이다. 대박을 노리는 위험한 도박 대신 우주 시대로 가는 고속도로 요금소를 선점하는 것이 핵심이다.
로켓이 대기권을 뚫고 날아갈 때 가해지는 엄청난 마찰열, 그리고 공기가 전혀 없고 방사능이 쏟아지는 혹독한 우주 환경에서 인공위성이 고장 나지 않고 버티려면 지상에서 쓰던 부품으로는 택도 없다. 우주선에 들어가는 초경량 탄소섬유 복합재를 만들거나, 극단적인 고온을 견디는 특수 합금 기술을 가진 회사, 그리고 방사능을 맞아도 오작동하지 않는 '우주용 특수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술 기업들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완제품 로켓 회사가 어디든 상관없이 우주 산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주문이 폭주해 무조건 돈을 버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이 커질 때 부품을 대던 카메라 모듈 회사나 기판 회사가 엄청난 부를 쌓았던 것과 똑같은 이치다.
우주 기술은 단순히 돈을 버는 상업용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 위에서 적국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과 직결되기 때문에, 국가의 안보와 직결되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금리가 올라 경기가 침체되더라도, 국가가 매년 꼬박꼬박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기술을 개발하고 물건을 사주는 든든한 고객이 확보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주 항공 기술력과 국가 방위산업(방산) 체제를 동시에 갖춘 대형 우량 기업들을 포트폴리오에 단단히 편입시켜야 한다. 이들은 불황기에도 내 자산을 든든하게 지켜주면서 안정적인 배당을 꼬박꼬박 챙겨주는 훌륭한 '안전마진' 자산이 되어줄 수 있다.
1602년 암스테르담 골목길에서 전 재산을 털어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샀던 평범한 사람들이 향후 수백 년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신흥 자본가 계급으로 성장했듯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우주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부의 리밸런싱 즉 재배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재테크의 시야를 동네 아파트나 눈앞의 정형화된 국내 주식 시장에만 가둬두어서는 안 된다. 돈은 이미 중력을 거슬러 우리의 머리 위로, 궤도 위로 무섭게 흘러가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와 우주 패권 세력이 하늘 위에 깔고 있는 인프라의 과실을 내 지갑 안으로 강제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지구 밖으로 흐르는 돈의 질서를 하루라도 먼저 선점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다가오는 시대의 준엄한 재테크 법칙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