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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트럼프 황제 "250달러 지폐"

트럼프 달러 /사진=AI 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달러 /사진=AI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인 1866년 미국에서는 5센트 짜리 지폐를 새로 발행했다. 전쟁 때 구리 동전을 녹여 총알로 만들어 쓰는 바람에 소액 거래 수단이 급감한 데 따른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한 응급조치였다. 1달러의 20분에 1에 해당하는 적은 단위의 돈을 지폐로 만든 것은 이때가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미세 가치의 지폐를 프랙션 통화, 영어로는 Fractional currency라고 부른다.
당시 미국 의회는 새로운 5센트 지폐의 도안으로 미국의 유명한 서부 탐험가인 '윌리엄 클라크(William Clark)'를 기리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재무부에 하달된 지시문에는 퍼스트 네임인 William)이 누락된 채 라스트 네임인 "클라크(Clark)의 초상을 넣을 것"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때 재무부 산하 인쇄국(National Currency Bureau) 책임자의 이름이 스펜서 M. 클라크(Spencer M. Clark)였다. 그는 이 모호한 지시를 교묘하게 악용했다. 의회의 본래 의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단지 성(Last Name)이 같다는 이유를 들어 탐험가 윌리엄 클라크 대신 자기 자신의 얼굴을 5센트 지폐에 인쇄하여 발행한 것이다. .

일개 관료인 스펜서 클라크의 얼굴이 박힌 화폐가 유통되자 미국 의회는 격노했다. 국가의 화폐를 개인의 명예욕을 위해 사유화한 행태에 반발한 의회는 즉각 5센트 지폐의 발행을 중단시켰다. 나아가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마틴 세이어(Martin Thayer) 하원의원 주도로 "어떤 살아있는 사람도 미국 화폐에 들어갈 수 없다"는 법안을 만장일치에 가깝게 통과시켰다. 결과적으로 한 관료의 일탈에서 촉발된 해프닝은 '공화국의 화폐에는 살아있는 권력이 등장할 수 없다'는 미국 민주주의의 강력한 상징적 법률로 굳어지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이 발행하는 250달러 신권에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을 새겨 넣는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 구상을 실천에 옮기기위해서는 1866년에 제정된 연방 법전(31 U.S.C. § 5114)를 개정해야 한다. 이 법을 고치겠다는 것이 트럼프 전부의 입장이다. 의
화폐는 단순한 교환 수단을 넘어 한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최고의 상징물이다. 지폐의 도안으로 누구를 선택하느냐는 그 나라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인물을 위인으로 추앙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그렇기에 화폐에 얼굴을 올리는 일은 역사적 평가가 끝난 영웅이나 건국의 아버지들에게만 허락된 성역(聖域)과도 같았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이 견고한 성역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연방법을 뜯어고쳐서라도 살아있는 현직 대통령의 얼굴을 지폐에 박아 넣겠다는 이 전대미문의 시도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건국 250주년을 축하하는 파격적인 이벤트인가, 아니면 민주 공화국 미국에서 ‘황제’가 탄생하고 있음을 알리는 서막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

전 세계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미국의 역사적 위인들로 채워져 있다. 1달러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2달러는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5달러는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10달러는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 20달러는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50달러는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S. 그랜트 그리고 100달러는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가 각각 들어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고인(故人)'이라는 점이다.

세계 역사상 살아있는 지도자가 지폐에 등장한 사례는 거의 없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살아있는 지도자가 지폐에 오른 사례는 왕조 국가의 군주이거나, 권위주의 국가의 독재자인 경우다. 군주국에서는 살아있는 왕이나 여왕의 얼굴을 화폐에 새기는 것이 당연시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나 현재의 찰스 3세 국왕, 태국의 국왕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국가의 주권이 군주에게서 나온다는 전통적인 상징 행위다. 철권통치를 휘두르는 독재 국가들에서더 살아있는 지도자 얼굴이 지폐에 들어간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집권 기간 내내 디나르화 지폐에 자신의 미소 짓는 얼굴을 새겨 우상화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는 스스로를 '투르크멘바시(투르크멘인의 아버지)'라 칭하며 모든 지폐에 자신의 초상을 넣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모부투 세세 세코는 지폐는 물론 국가의 모든 상징물에 자신의 얼굴을 도배했다. 북한의 김일성, 중국의 마오쩌둥 등 종신 집권이나 그에 준하는 권력을 누린 이들의 얼굴이 지폐를 장식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을 250달러 지폐에 새기려는 시도는 단순한 기념사업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다. 조 윌슨 하원의원 등 공화당 일각에서는 전·현직 대통령에 한해 예외를 두자는 법안을 발의하며 바람잡이에 나섰고, 재무부와 조폐국은 이미 물밑에서 시안 제작을 마친 상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 건국 250주년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든 트럼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250주년과 250달러라는 숫자의 상징성 또한 매력적인 마케팅 요소다.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비판적 시각에서 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황제 등극'의 상징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사법부의 보수화, 공화당 내 절대적인 장악력, 열성 지지층을 바탕으로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제왕적인 권력을 누리고 있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룰을 깨고 자신을 조지 워싱턴이나 에이브러햄 링컨과 같은 반열, 혹은 그 이상의 무결한 존재로 격상시키려는 시도인 셈이다. 화폐에 자신의 얼굴을 새기는 행위는 "국가가 곧 나(L'Etat, c'est moi)"라는 절대왕정의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국가의 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브랜딩과 자아도취를 위한 도구로 사유화(私有化)하는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군주제의 폭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헌법을 만들고 권력을 분산시켰다. 1866년의 선조들 역시 살아있는 자의 오만을 경계하며 지폐에서 그들의 흔적을 지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소가 담긴 250달러 신권이 우리 지갑 속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것은 단지 새로운 화폐의 탄생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공화국이 권위주의적 '황제'를 용인하는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영수증이 될 것이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돈에 새겨진 얼굴이 곧 그 시대의 초상(肖像)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달러 /사진=AI 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달러 /사진=AI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인 1866년 미국에서는 5센트 짜리 지폐를 새로 발행했다. 전쟁 때 구리 동전을 녹여 총알로 만들어 쓰는 바람에 소액 거래 수단이 급감한 데 따른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한 응급조치였다. 1달러의 20분에 1에 해당하는 적은 단위의 돈을 지폐로 만든 것은 이때가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미세 가치의 지폐를 프랙션 통화, 영어로는 Fractional currency라고 부른다.

당시 미국 의회는 새로운 5센트 지폐의 도안으로 미국의 유명한 서부 탐험가인 '윌리엄 클라크(William Clark)'를 기리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재무부에 하달된 지시문에는 퍼스트 네임인 William)이 누락된 채 라스트 네임인 "클라크(Clark)의 초상을 넣을 것"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때 재무부 산하 인쇄국(National Currency Bureau) 책임자의 이름이 스펜서 M. 클라크(Spencer M. Clark)였다. 그는 이 모호한 지시를 교묘하게 악용했다. 의회의 본래 의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단지 성(Last Name)이 같다는 이유를 들어 탐험가 윌리엄 클라크 대신 자기 자신의 얼굴을 5센트 지폐에 인쇄하여 발행한 것이다. .

일개 관료인 스펜서 클라크의 얼굴이 박힌 화폐가 유통되자 미국 의회는 격노했다. 국가의 화폐를 개인의 명예욕을 위해 사유화한 행태에 반발한 의회는 즉각 5센트 지폐의 발행을 중단시켰다. 나아가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마틴 세이어(Martin Thayer) 하원의원 주도로 "어떤 살아있는 사람도 미국 화폐에 들어갈 수 없다"는 법안을 만장일치에 가깝게 통과시켰다. 결과적으로 한 관료의 일탈에서 촉발된 해프닝은 '공화국의 화폐에는 살아있는 권력이 등장할 수 없다'는 미국 민주주의의 강력한 상징적 법률로 굳어지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이 발행하는 250달러 신권에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을 새겨 넣는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 구상을 실천에 옮기기위해서는 1866년에 제정된 연방 법전(31 U.S.C. § 5114)를 개정해야 한다. 이 법을 고치겠다는 것이 트럼프 전부의 입장이다. 의

화폐는 단순한 교환 수단을 넘어 한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최고의 상징물이다. 지폐의 도안으로 누구를 선택하느냐는 그 나라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인물을 위인으로 추앙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그렇기에 화폐에 얼굴을 올리는 일은 역사적 평가가 끝난 영웅이나 건국의 아버지들에게만 허락된 성역(聖域)과도 같았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이 견고한 성역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연방법을 뜯어고쳐서라도 살아있는 현직 대통령의 얼굴을 지폐에 박아 넣겠다는 이 전대미문의 시도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건국 250주년을 축하하는 파격적인 이벤트인가, 아니면 민주 공화국 미국에서 ‘황제’가 탄생하고 있음을 알리는 서막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

전 세계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미국의 역사적 위인들로 채워져 있다. 1달러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2달러는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5달러는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10달러는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 20달러는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50달러는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S. 그랜트 그리고 100달러는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가 각각 들어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고인(故人)'이라는 점이다.

세계 역사상 살아있는 지도자가 지폐에 등장한 사례는 거의 없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살아있는 지도자가 지폐에 오른 사례는 왕조 국가의 군주이거나, 권위주의 국가의 독재자인 경우다. 군주국에서는 살아있는 왕이나 여왕의 얼굴을 화폐에 새기는 것이 당연시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나 현재의 찰스 3세 국왕, 태국의 국왕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국가의 주권이 군주에게서 나온다는 전통적인 상징 행위다. 철권통치를 휘두르는 독재 국가들에서더 살아있는 지도자 얼굴이 지폐에 들어간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집권 기간 내내 디나르화 지폐에 자신의 미소 짓는 얼굴을 새겨 우상화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는 스스로를 '투르크멘바시(투르크멘인의 아버지)'라 칭하며 모든 지폐에 자신의 초상을 넣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모부투 세세 세코는 지폐는 물론 국가의 모든 상징물에 자신의 얼굴을 도배했다. 북한의 김일성, 중국의 마오쩌둥 등 종신 집권이나 그에 준하는 권력을 누린 이들의 얼굴이 지폐를 장식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을 250달러 지폐에 새기려는 시도는 단순한 기념사업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다. 조 윌슨 하원의원 등 공화당 일각에서는 전·현직 대통령에 한해 예외를 두자는 법안을 발의하며 바람잡이에 나섰고, 재무부와 조폐국은 이미 물밑에서 시안 제작을 마친 상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 건국 250주년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든 트럼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250주년과 250달러라는 숫자의 상징성 또한 매력적인 마케팅 요소다.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비판적 시각에서 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황제 등극'의 상징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사법부의 보수화, 공화당 내 절대적인 장악력, 열성 지지층을 바탕으로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제왕적인 권력을 누리고 있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룰을 깨고 자신을 조지 워싱턴이나 에이브러햄 링컨과 같은 반열, 혹은 그 이상의 무결한 존재로 격상시키려는 시도인 셈이다. 화폐에 자신의 얼굴을 새기는 행위는 "국가가 곧 나(L'Etat, c'est moi)"라는 절대왕정의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국가의 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브랜딩과 자아도취를 위한 도구로 사유화(私有化)하는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군주제의 폭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헌법을 만들고 권력을 분산시켰다. 1866년의 선조들 역시 살아있는 자의 오만을 경계하며 지폐에서 그들의 흔적을 지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소가 담긴 250달러 신권이 우리 지갑 속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것은 단지 새로운 화폐의 탄생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공화국이 권위주의적 '황제'를 용인하는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영수증이 될 것이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돈에 새겨진 얼굴이 곧 그 시대의 초상(肖像)이기 때문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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