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전쟁'이 아닌 '시간의 전쟁'… 중동 소모전이 대만·한반도 방어 잠식
이미지 확대보기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미 의회 브리핑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추산을 종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군은 지난 2월 말 공격 개시 이후 5주간 190억~310억 달러(약 28조4700억~46조4400억 원)를 전비로 지출했다. 보수적 추산치가 190억 달러, 장비 손실과 운용비를 모두 포함한 상단이 310억 달러다. 일부 방산 분석가들은 항공기 출격 횟수와 정밀유도탄 소모량을 감안하면 실제 일일 지출이 10억 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고 본다. 파괴된 장비 교체 비용만 36억 달러(약 5조3900억 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이란의 표적이 된 전략 자산 상당수는 예산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즉각 보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대전은 이미 '자금력' 싸움에서 '생산 속도' 싸움으로 넘어갔다.
'눈과 귀' 상실… AN/TPY-2 레이더 1기 복구에 3년, 현재 증설 라인도 '포화'
이란군은 미군의 감시·탐지 체계를 최우선 타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핵심 피해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두뇌에 해당하는 AN/TPY-2 레이더다. 요르단 주둔 미군 기지에서 이 레이더가 파괴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 국방부 내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
AN/TPY-2 1기의 가격은 4억8500만 달러(약 7260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가격이 아니다. 제작사 레이시온(RTX)의 생산 공정상 단 1기를 완성하는 데 최소 3년이 소요된다. 레이시온은 미 국방부의 증산 요구에 따라 생산 라인 확장 계약을 체결했으나, 현재 팔라딘 자주포·PAC-3 미사일·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등 복수의 긴급 물량을 동시에 소화 중이어서 AN/TPY-2 생산 병목은 단기간 해소가 불가능한 상태다.
톰 카라코 CSIS 미사일방어 프로젝트 책임자는 "AN/TPY-2는 아마존에서 주문할 수 있는 일반 레이더가 아니다"라며 "재고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손실은 결국 다른 지역 자산을 끌어다 메우는 방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레이더만이 아니다. E-3 조기경보통제기(AWACS) 손실도 공식 확인됐다. E-3은 괌·오키나와·한반도 상공을 커버하는 인도·태평양(인태) 감시망의 핵심 플랫폼이다. 중동에서의 손실은 유사시 북한 장거리 미사일과 중국 탄도미사일의 추적·식별 지연으로 직결된다. 미군의 '하늘 위 감시망'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가성비 드론'에 무너지는 첨단 전력… 걸프전 악몽 되살리는 소모전
마크 칸시안 CSIS 선임 고문은 "1991년 걸프전 당시 5주간 미군 항공기 손실이 14대였던 것과 비교할 때, 현재 이란전의 소모 속도는 그 수준을 크게 웃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하루에만 5억 달러(약 7490억 원) 이상을 공중에 날리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미 국방부는 전비 충당을 위해 의회에 2000억 달러(약 299조 6000억 원)의 추가 예산을 요청한 상태다.
록히드마틴과 보잉, 레이시온 등 주요 방산업체는 백악관의 '생산 2~4배 확대' 요구에 따라 순항미사일·정밀유도탄 증산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고 있다. 미국은 자금과 산업 기반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진 배치 자산을 재건하는 '시간'은 살 수 없다. 이 비대칭이 전략적 공백을 낳는 구조다.
'중동의 늪'이 파놓는 대만·한반도 방어 공백… 중국의 '전략적 유혹' 커진다
군사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이 전쟁이 미국의 대중국 억제력을 직접 잠식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중동의 방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국에 배치된 미사일 방어 시스템 일부를 중동으로 전환 배치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비안 호프만 오슬로핵프로젝트 연구원은 "사드 레이더와 E-3 조기경보기는 유사시 대중국 작전의 필수 자산"이라며 "중동에서의 출혈이 길어질수록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기에 유리한 안보 환경이 형성되는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중국이 이를 즉각적인 침공 시그널로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국 지도부의 결정은 미 인태 전력 잔존 수준뿐 아니라 자국의 경제 상황, 내부 정치 변수, 동맹 구조 등 복합적 요인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것은 "억제력의 탄력성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오판 가능성이 높아지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안보 리스크… '주한미군 자산 차출'에 맞설 독자 방어망 구축 시급
한국 입장에서 주시해야 할 핵심 변수는 주한미군 전략 자산의 역외 차출 현실화다. 중동 소모전이 장기화할수록 한반도 방어의 기둥인 사드와 조기경보 자산에 대한 추가 전환 배치 압력은 높아진다. 이는 북한 탄도미사일 탐지 거리의 실질적 축소를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서둘러야 할 과제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L밴드·엑스밴드 장거리 레이더 증설을 통한 독자 조기경보 역량 확충이다. 둘째, 한·미·일 통합 조기경보 체계 고도화다. 지휘·통제 데이터 연동을 강화하면 미군 자산 일부가 빠져도 탐지 공백을 줄일 수 있다. 셋째, 상용 소형 레이더 위성을 포함한 민간 우주 자산 활용 확대다. 특정 플랫폼 손실에 대한 의존도를 분산시키는 구조적 전략이다.
미중 갈등과 중동 전쟁이 교차하는 복합 위기 속에서 한국의 선택지는 좁아지고 있다. 미국이 '눈과 귀'를 소모하는 동안, 한반도의 전략적 여유 공간 역시 조용히 줄어들고 있다. 지금 당장 독자 방어체계의 다변화를 서두르지 않으면, 공백은 통보 없이 찾아온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