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입도선매' 전쟁…월 단위 계약 깨지고 6개월 장기 계약
SK하이닉스는 2026년 물량 매진, 삼성은 40% 인상…2027년까지 '공급자 전성시대'
SK하이닉스는 2026년 물량 매진, 삼성은 40% 인상…2027년까지 '공급자 전성시대'
이미지 확대보기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권력 지형이 뒤집혔다. 철저한 '수요자 우위'였던 D램 시장이 인공지능(AI) 투자 붐을 타고 강력한 '공급자 우위'로 재편됐다. 통상 1개월 단위로 이뤄지던 가격 협상 관행은 붕괴됐고, 다급해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2년 뒤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읍소'하는 형국이다.
20일(현지시각)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와 업계에 따르면 미·중 주요 테크 기업들은 2026년 D램 공급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잇따라 6개월 이상의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요 증가를 넘어, 향후 수년간 이어질 '메모리 가뭄'에 대비한 생존 차원의 물량 확보전이다. D램 시장에서 전례 없는 '공급망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HBM 나비효과…범용 D램도 '동났다'
이번 '공급 쇼크'의 진앙은 단연 AI다. 엔비디아 GPU 등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하면서 주요 제조사들은 생산 라인을 HBM 위주로 전격 재편했다. 한정된 생산능력(CAPA) 내에서 HBM 비중을 늘리자, 자연스럽게 범용(레거시) D램 생산 여력이 줄어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와 각국 정부가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에 뛰어들며 상황은 악화일로다. 서버 가동에 필수적인 DDR, GDDR, LPDDR 등 일반 D램 수요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폭증했다. 외신은 "AI 붐이 HBM뿐만 아니라 범용 D램 시장의 공급난까지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급은 줄어드는데 수요는 폭발하는 전형적인 '수급 불균형'이 시장을 강타했다.
전통적으로 D램 시장은 매달 시장 수급에 따라 가격을 정하는 단기 계약 중심이었다. 그러나 2025년 하반기부터 이 공식은 깨졌다.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린 고객사들은 웃돈을 제시하는 건 기본이고,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6개월 이상의 장기 계약을 먼저 제안하고 있다. 시장의 룰이 '분기 계약'에서 '장기 계약' 체제로 급변한 것이다.
SK는 '매진', 삼성은 '40% 인상'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국내 양대 반도체 기업의 수주 장부(Order Book)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미 2026년 생산될 D램 물량에 대한 공급 계약을 모두 마무리 지었다. 내후년 제품까지 주인이 다 정해졌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2027년 공급 물량에 대한 협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에서 물량을 구하지 못한 빅테크들은 삼성전자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역시 2026년 생산 물량 상당 부분이 이미 계약된 상태다. 콧대가 높아진 삼성전자는 남은 물량에 대해 기존 대비 40% 이상의 파격적인 인상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D램 시장의 가격 결정권이 철저히 공급자에게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先)계약' 체제 전환…2027년까지 호황
전문가들은 이번 호황이 과거의 단기 반등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분석한다. 메모리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개발 후 판매'에서 '선(先)계약 후(後)공급' 방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장기 공급 계약 확산은 제조사에 막대한 이점이다. 2027년까지 안정적인 물량이 확보돼 생산 원가와 설비 투자 계획을 정교하게 짤 수 있어 수익성이 극대화된다. 반면 고객사는 장기 계약에 따른 비용 상승 부담을 떠안게 됐다. 외신은 "장기 계약은 더 높은 가격에 체결되고 있어 가격 상승세는 지속될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최소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바야흐로 메모리 기업들이 시장을 호령하는 '공급자의 전성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