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고객 주문 줄고 투자 '관망세'…거시경제 불확실성 탓
시간외 주가 8% 급락…"공장 증설 투자, 단기 수익성엔 부담"
시간외 주가 8% 급락…"공장 증설 투자, 단기 수익성엔 부담"

세계 최대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4분기 실적 전망을 내놓았다. 2년간의 침체에서 벗어나던 반도체 산업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과 미·중 무역 긴장 속에서, 특히 산업용 고객의 주문이 줄고 투자가 미뤄진 탓이 큰 결과로 풀이한다.
21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성명을 통해 4분기 매출 전망치로 42억 2000만 달러(약 6조 358억 원)에서 45억 8000만 달러(약 6조 5507억 원) 사이를 제시했다. 이 전망치는 월스트리트 분석가들의 평균 추정치인 45억 달러(약 6조 4363억 원)를 밑도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주당 순이익(EPS) 전망치 역시 약 1.26달러로, 시장 예상치 1.39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시장 기대치보다 낮은 지침이 나오면서 반도체 업황 둔화 우려가 다시 불거졌다.
한편, 3분기(7~9월) 실적 자체는 비교적 괜찮았다. 3분기 매출은 47억 4000만 달러(약 6조 7786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증가하며, 시장 예상치(46억 5000만 달러)를 소폭 웃돌았다. 주당 순이익은 1.48달러로, 예상치(1.49달러)와 거의 같았다.
그렇지만 괜찮은 3분기 실적에도 4분기 전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약 8% 급락했다. 올해 반도체 업계 전반의 주가 상승 흐름에서도 비교적 부진했던 주가 흐름에 또다시 충격이 가해진 것이다.
둔화된 산업 수요…'관망세'로 돌아선 고객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하비브 일란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발표 전화 회의에서 "전반적인 반도체 시장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전 상승 국면에 비해서는 속도가 더디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이는 광범위한 거시 경제 역학과 지정학적 요인을 포함한 전반적인 불확실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산업 부문 고객들이 공장 투자나 설비 확장을 '관망하는(wait and see)'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국 정부의 관세 정책과 무역 제재 가능성이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불과 3개월 전인 2025년 7월에도 부진한 전망을 제시하며 주가가 17년 만에 최악의 일일 하락률을 기록하는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당시 회사는 일부 중국 고객들이 앞으로 관세 인상에 따른 비용 상승을 우려해 재고를 미리 축적하는 '수요 선취(pull-forward demand)' 움직임을 언급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전체 매출의 약 20%를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일란 CEO는 전화 회의에서 "7월에 보였던 수요 선취 움직임은 (3분기 전체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 시장에서는 현지 아날로그 반도체 업체들의 부상으로 가격 경쟁 압력 또한 커지고 있다.
'경제 풍향계'의 대규모 투자…단기 수익성보다 공급망 안정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소리, 압력, 온도 등 실제 물리적 현상(센서 신호)을 전자 신호로 변환하는 아날로그 칩(Analog IC)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이다. 제품 구성이 다양하고 고객 범위가 넓어, 이 회사의 실적은 전 세계 산업 수요, 특히 경제 전반의 수요를 보여주는 중요한 선행 지표로 여겨진다. 이번 발표는 반도체 업황의 회복 속도가 과거 주기에 비해 둔화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신호로 풀이된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고 공급망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신규 생산 시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왔다. 이 회사는 중국 내 1곳을 포함해 미국 외 지역에 4개의 공장을 운영 중이며, 본사가 있는 댈러스 인근 지역과 유타주에도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이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라파엘 리자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인터뷰를 통해 "공장 및 설비 투자(CAPEX) 지출이 올해(2025년) 약 50억 달러(약 7조 1570억 원)에 이를 것"이라며, "내년(2026년 이후)에는 이 규모가 약 20억~30억 달러(약 2조 8618억~4조 2927억 원) 수준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계획이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이러한 대규모 증설이 완료된 이후에는 재무 전략의 중심을 주주 환원 정책으로 다시 돌리겠다고 약속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경영진은 현재 재고가 "적정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도한 재고 축적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 공장의 가동 속도를 일부러 늦추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경영진은 이러한 생산 속도 조절이 단기적으로는 이익률 하락 요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조치는 장기적으로 재고 누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전략 관리 조치로 평가한다.
시장 투자자들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대규모 생산 설비 투자가 단기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번 TI의 보수 지침은 산업용 반도체 수요 둔화, 거시경제의 불확실성, 그리고 지정학적 위험이 복합 작용한 결과로 풀이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